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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거는 더이상 정교할수 없는 과학
2008년 오바마 캠프 유권자 성향 분석 · 생활밀착형 ‘버스 광고’ 전략까지…선거캠페인에 숨은 행동심리학 해부
2010 미국 콜로라도 주 상원의원 선거가 종반에 가까워진 무렵, 콜로라도 100만명의 주민에게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평범한 하얀 봉투에 담겨진 내용은 어떤 정치적인 메시지도 없다. 그저 부드러운 투로 ‘이번 선거에서 투표하기로 약속했으며, 그 약속을 지킬 때가 왔으니 언제 투표를 할지, 그리고 어떻게 투표소에 갈지 생각해 놓으라’는 내용이었다.

단순한 이 편지는 전체 투표율을 2.5% 끌어올렸다. 미미해 보이지만 이는 선거 내내 고전한 민주당 신인 정치인 마이클 베넷에게 승리를 안겨줬다.

이 편지를 고안해낸 인물은 정치전문 컨설턴트인 핼 말쇼우. 그는 3년여에 걸쳐 편지봉투의 종류부터 편지 내용까지 여러 번의 실험을 반복했다. 평범한 봉투, 친근한 어투의 편지글, 민주당에 표를 던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 등 신중한 선택의 결과였다.

말쇼우의 편지 발송 전략은 유권자 맞춤 전략, 즉 마이크로타기팅(microtargeting)의 첫 사례다. 선거는 후보자의 카리스마나 성격, 전략적인 행동이나 정치적 상황, 시대정신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었던 기존의 정치 관념을 뒤엎은 것이다.

정치전문 저널리스트인 사샤 아이센버그는 저서 ‘빅토리 랩’(RHK)을 통해 마이클 베넷의 성공사례처럼 갈수록 세밀해지고 진화하는 다양한 선거전략을 보여준다. 행동심리학으로 무장하거나 설득실험 등을 활용, 유권자의 1% 표라도 얻으려는 세심한 노력들을 하나하나 쫓아간다. 과거 미국선거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선거전략뿐만 아니라 정치학자들의 다양한 실험, 광고와 마케팅 등 방대한 정치사의 한축을 새롭게 보여준다.

이 중 혀를 내두를 정도의 정교함을 보여주는 전략은 오바마 선거 캠프의 블랙박스 알고리즘이다. 스트라스마는 소수 유권자를 대상으로 가상의 유권자의 행동패턴까지 읽어낼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 여론조사보다 여론을 더 빨리 알아냈다.

오바마의 ‘버스 광고 전략’ 역시 유권자들의 개별 데이터를 얼마나 전략적으로 잘 이용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 버스나 정류장, 지하철은 선거 캠프의 광고전략에서 늘 제외됐던 곳이지만 오바마 캠프는 대중교통 공간이야말로 유권자와 가장 밀착해 정치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0개 도시의 버스노선을 확대해 내건 버스 안 광고는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유권자를 개별자로 보고 접근하기 시작한 것은 젊은 정치학자 돈 그린과 앨런 거버의 실험덕이다. 1998년 선거일 직전, 그린과 거버는 가장 기본적인 선거 운동방식이 선거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뉴헤이븐 주민을 대상으로 현장실험을 벌였다. 우편으로 대형 엽서를 보내는 방식과 콜센터 직원이 전화로 스크립트를 읽는 방식, 선거 운동원이 직접 가정을 방문하는 방식 세 가지를 택해 서로 다른 내용으로 접근했다. 실험결과는 직접 방문 쪽으로 기울었다. 전화통화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며, 엽서는 한 장 보낼 때마다 투표율이 0.6%씩 증가했다. 직접 방문한 집단은 다른 집단보다 8.7%나 많은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했다.

투표하지 않고 투표했다고 말하는 10%를 가려내는 실험도 있다. 군의원 후보였던 그레브너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를 투표가 비밀이라는 사실에 있다고 보고, 가족과 이웃 등이 투표했는지 안 했는지 공개하겠다는 편지를 보내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대조군은 29.7%가 투표에 참여했고, ‘사회적 의무’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31.5%, 가족 구성원에게 다른 가족의 이력을 보여준 ‘가족’ 편지는 34.5%, ‘이웃’에게 공개한다는 편지는 37.8%로 큰 차이를 보였다.

이제 선거는 과학과 기술로 무장한 ‘정보의 군비 경쟁’ 시대로 치닫고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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