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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동치는 동북아 안보> ‘광해’가 21세기에 다시 나타난다면...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광해, 왕이 된 남자’가 1000만 관객 영화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성공 비결을 놓고 갖가지 해석이 쏟아지고 있다.

그 가운데 중국, 일본 등 주변국과 역사·영토 문제로 인한 잦은 갈등을 체험한 대중들이 임진왜란과 명·청 교체기를 겪은 광해군의 외교안보전략에서 매력 포인트를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 영화 속 가짜 광해가 쓰러져가는 명나라를 위해 조선의 군사를 파병해야한다고 주장하는 대신들을 질타하는 장면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역사 속이든, 영화 속이든 광해군의 외교안보전략이 옳다 그르다 평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광해군이 처했던 그때나 중국의 급부상으로 대변되는 오늘날이나 국제질서가 재편되는 전환점이라는 대목은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동북아정세, 폭풍 속으로=한반도의 외교안보전략이 간단치 않은 것은 무엇보다 지정학적 위치에서 기인하는 까닭이 크다. 대한민국은 정치·경제·외교·군사분야에서 세계 10위권의 중견국으로 발돋움했지만 주위에 어느 하나 만만한 나라가 없다.

최근 들어서는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속에서 동북아 정세가 더욱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어 가뜩이나 쉽지 않은 외교안보전략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중국은 급부상한 경제력을 발판으로 국익을 극대화하는 후진타오(胡錦濤) 시대의 대외정책이 다음 달 출범하는 시진핑(習近平) 시대에도 이어질 것이 확실시 된다. 이에 맞서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군사력을 증강시키면서 ‘아시아 회귀’로 불리는 사실상 대중국 봉쇄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중국의 부상을 빌미로 집단적 자위권 확보와 핵무장 가능성까지 열어두는 등 우경화를 노골화하고 있으며, 러시아 역시 블라드미르 푸틴의 재등장 이후 강한 러시아를 향한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전통적인 지역정세 구도도 흔들리고 있다. 미국은 한미일 협력을 통해 중국을 견제한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한일 정보보호협정 체결 무산이 보여주듯이 한일 양국 사이에는 미국도 어찌할 수 없는 거리감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독도 문제가 불거졌을 때에는 다오위다오(센카쿠 열도)문제와 엮여 한국과 중국이 공조해 일본을 압박하는 양상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한중관계가 외교적 수사 그대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궤도에 올라선 것도 아니다. 한중은 수교 20주년을 맞은 올해만도 탈북자, 이어도 관할권, 불법어업, 김영환씨 고문 의혹 등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마찰을 빚었다.

한 외교안보부처 당국자는 현재의 동북아정세에 대해 “이념이 우선시됐던 냉전이 종식된 뒤 그동안 억제됐던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특히 국가들간 영토·역사 문제가 부각되면서 마치 폭풍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안보=미국, 경제=중국, 한국의 딜레마”=한반도 외교안보전략이 복잡다단한 고차방정식이긴 하지만 핵심은 세계지배국가로서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미국과 이러한 미국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급부상한 중국과의 관계 설정이라 할 수 있다.

“전통적 안보동맹인 미국과 갈수록 경제영향이 커지는 중국과의 관계를 동시에 발전시켜야한다는 게 대한민국의 딜레마다.” 현 정부 고위당국자가 토로한 이 같은 말은 세계질서가 재편되는 과정 속에서 대한민국이 처한 외교안보전략상 어려움을 압축적으로 설명해준다.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역할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지만, 분단 60년 동안 강도 높게 이어진 한미 안보동맹이 한국의 중견국 발돋움의 결정적 발판이 됐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나오기 힘들다. 한미동맹은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경제동맹으로 확대됐으며 최근 들어서는 대량살상무기(WMD), 테러, 기후변화 등 범세계적 문제도 공동대처한다는 가치동맹의 개념까지 강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같은 인식은 최근 들어 중국의 급부상과 수교 20년을 지나는 동안 한중 경제적 상호의존이 심화되면서 도전받고 있다.

중국은 한국의 수출상대국 가운데 단연 1위이며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커졌다. 지난 1992년 63억7000만달러 수준이었던 한중 교역량도 2010년 1884억달러로 30배 늘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미국보다 중국의 영향이 더 커진 것이다.

현재 학계에서는 한미동맹과 한중관계의 상관성에 대해 두 가지 시각이 존재한다. 지금처럼 미국과의 동맹을 중심에 놓되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자는 것과 중장기적으로 미국과 중국을 동등하게 보고 중국과의 관계 강화를 중시해야한다는 것이다.

박창희 국방대 교수는 “우리 안보현실에서 미국과의 동맹은 절대적인 측면이 있다”며 “한미동맹 약화 없이 한중관계를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교수는 이어 “중국도 한미일 연합을 꺼리긴 하지만 한국이 중국을 직접 겨냥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며 “다각적인 접촉을 통해 중국을 안심시키고 한미동맹과 한중관계 발전이 상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신범철 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양자관계 병행이 가능하다는 견해는 미중관계가 협력관계로 유지될 때 가능하다”며 “미중관계가 대결구도로 가면 한국 외교는 어렵게 된다”고 지적했다. 신 실장은 “어느 한쪽에 편승해서는 안되고 한미동맹과 한중관계를 중첩적으로 봐야 한다”며 “그래야 미국과의 안보협력, 중국과의 경제협력 모두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중견국에 걸맞는 외교안보전략 찾아야=임진왜란이나 청일전쟁, 6·25전쟁에서 찾을 수 있는 역사적 교훈 중 하나는 한반도가 흔들릴 때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 전체가 비극을 겪었다는 점이다. 반면 지정학적 위치를 살려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교량역할을 수행할 때에는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 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 점에서 한반도 외교안보전략과 관련해 중견국에 걸맞은 역량을 발휘해야한다고 말한다.

박창희 교수는 “스스로 폄하하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는 이미 정치, 경제, 군사, 외교적 측면에서 나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범철 실장은 “강대국에 둘러쌓인 중견국이기 때문에 한미동맹과 한중관계를 모두 강조하고 주변국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 함께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국익에 따라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대원기자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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