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 방황·꿈 다룬 청춘드라마 프로듀서 명성
우리들의 천국·식객 제작…톱스타 제조기로 불려
사전제작·PD출신 영화감독 등 최초 꼬리표 수두룩
제2·제3 한류스타 나오려면 기본 스토리 탄탄해야


‘우리들의 천국’ ‘사랑을 그대 품안에’ ‘별은 내가슴에’…. 1970년대생, 1990년대 학번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슴을 콩닥거리며 봤을 드라마들이다. 고 최진실, 차인표, 안재욱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고, ‘드라마왕국’ MBC의 전성기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1990년대 최고의 히트작들. 이를 만든 주인공이 바로 ‘흥행 감각의 달인’ 이진석(54) JS픽쳐스 대표다. MBC 재직 시절엔 스타 프로듀서로 이름을 날렸고, 1999년 회사 설립 이후엔 PD 출신 1세대 드라마제작사 대표로서 외주제작 토양을 다져온 그를 서울 마포구 서교동 JS픽쳐스 사옥에서 만났다.

이 대표는 지난해 말 한류 확산 등 대중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표창’을 받았다. 2008년과 2010년에는 각각 드라마 ‘자이언트’ ‘식객’ 제작자로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드라마 한편이 뜨면 출연배우의 몸값과 작가의 고료는 뛰지만, 연출ㆍ기획자는 이렇게 명예만 얻는다. 그는 수상경력을 일일이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1990년대 청춘드라마의 르네상스 이끌다 =MBC에서 입봉작(연출 데뷔작)은 1987년 청소년 성장드라마 ‘푸른교실’이다. 1982년 입사 이후 5년 만이었다. 이어 ‘푸른계절’(1988년), 특집극 ‘두권의 일기’(1990년) ‘우리들의 천국’(1990년)까지 청소년기의 방황, 꿈, 대학생들의 우정과 사랑을 다루는 청춘물은 그의 전공 분야가 됐다. 최진실과 채시라가 사제지간으로 나와 1970, 80년대의 여고생 삶을 다룬 ‘두권의 일기’는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수작이었다. “회사에서 청춘물 하나를 기획하라고 해서 만든 게 ‘우리들의 천국’이었어요. 당시엔 PD가 기획도 했으니까. 1년3~4개월 정도 맡고 후배한테 넘겨줬는데 시청률이 높아서 3년은 한 거 같아요. 이전엔 그런 류의 드라마가 없어서 신선했던 거죠.” ‘우리들의 천국’은 모교인 서강대에서 촬영됐는데, 당시 즉석에서 단역으로 출연했던 학생들은 그 뒤 방송계에 진출하기도 했다.

그는 청춘드라마의 중흥기를 이끈 것으로 평가받는다. 처음이자 유일하게 영화 연출을 맡은 ‘체인지’(1997년) 역시 한창 성적 호기심이 충만할 때인 사춘기 남녀 고등학생의 영혼이 뒤바뀌는 내용이었다. 이 판타지 영화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엔 청소년들이 볼 게 없었어요. ‘진짜 진짜 미안해’ 등 옛날엔 많았던 청소년물이 한동안 없었는데, 그 세대(F세대)의 문화 갈증이 있었던 거죠.”
 

이진석 대표는 트렌디한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드라마, 영화 등을 본다. 요즘엔 발리우드(인도영화산업)에 주목하고 있다. 액션, 춤과 노래, 강렬한 스토리, 멜로 등 흥행요소를 버무리고 자국의 방대한 시장뿐 아니라 미국 할리우드도 겨냥한 기획이 돋보여서다. 그는 ‘불타는 인도’를 꼭 한번 보라고 추천했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계속된 새로움과 도전정신=새로운 트렌드를 짚어내는 그의 감각은 탁월했다. 첫 미니시리즈 연출작인 ‘사랑을 그대 품안에’(1994년)에선 당시 TV드라마 연출에선 잘 쓰지 않던 와이드로앵글(좁은 공간에서 커보이는 효과), 이동샷을 선보였다. “배우가 앉아 있을 때도 카메라를 계속 움직여준다던가 하는 게 연출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거죠. 영상이나 음악 등이 트렌디하다는 얘기를 많이 했던 거 같아요.” MBC 공채 신인 차인표를 주연으로 전격 발탁하는 모험도 걸어 성공시켰다. “남자 주인공을 모든 여성들이 꿈에 그리는 이미지로 만드는 전략이었죠. 색소폰, 오토바이, 몸짱, 태도 등 남성을 최대한 여성 로망의 집합체로 그렸는데 그게 먹혔죠. 어찌보면 차인표의 운이었죠.”

그는 시대보다 앞선 트렌드를 선보이기도 했다. ‘사랑’(1998년)은 연하남과 연상녀의 사랑을, ‘사랑해 당신을’(1999년)은 선생님과 여학생의 사랑이란 파격적 소재로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다. ‘아파트’(1995년), ‘별은 내가슴에’(1997년), ‘이브의 모든 것’(2000년) 등 그가 연출한 드라마에 출연했던 안재욱, 장동건, 채림, 채시라, 최진실 등이 톱스타로 성장했다.

최초라는 꼬리표도 여럿이다. 2004년 ‘러브스토리인하버드’는 국내 최초로 사전제작 드라마로 시도했다. 영화 ‘체인지’로는 드라마PD 출신 영화감독 1호란 별칭을 들었다. 그는 MBC 입사 전 영화 ‘애마부인1’의 조연출3으로 크레딧을 달았다. 영화 연출에 대한 미련에 사표까지 냈다가, 회사 측 배려로 자회사인 MBC프로덕션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명보극장 2관에 걸렸는데, 관객들이 길게 쭉 줄서 있는데 기분이 좋았죠. 영화는 그런 맛이 있더군요.”

JS픽쳐스를 설립한 뒤엔 공연 제작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2005년 당시 비주류이던 비보이 문화를 뮤지컬과 접목시킨 ‘프리즈’, 마술과 뮤지컬을 혼합한 ‘러브 이즈 매직’의 제작을 맡았다.

▶‘감동’에서 ‘재미’로 우선순위 바뀌어=JS픽쳐스에서 기획,제작한 드라마는 ‘피아노’(2001년), ‘내사랑 팥쥐’(2002년), ‘술의 나라’(2003년), ‘장미의 전쟁’(2004년), ‘뉴하트’(2007년), ‘경성스캔들’(2007년), ‘식객’(2008년), 수상한 삼형제(2009년), 자이언트(2010년), 마이더스(2011년), 샐러리맨 초한지(2012년) 등 의학, 가족, 요리 등 장르와 성격이 다양하다.

그는 시나리오를 볼 때 어떤 것에 주안점을 두느냐는 질문에 “과거엔 감동과 재미였는데, 지금은 재미와 감동”이라고 답했다. “감동이나 메시지를 주려면 일단 봐줘야 하는데, 지금 시청자는 재미없으면 끝까지 보지 않죠.” tvN에서 방송 중인 ‘로맨스가 필요해’에서 나오는 19금 수준의 아슬아슬한 대사나, ‘샐러리맨 초한지’의 탈장르적인 코믹함도 이런 원칙에서 나온 것이다. 출생의 비밀, 신데렐라 이야기, 의학드라마 등은 인기가 사그라들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이야기 소재라고 했다.

이 대표는 한류 드라마의 장래성에 대해 장기적으로 드라마의 기본인 스토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스토리 풀(pool)이 약하거든요. 그래서 죄다 일본 원작이잖아요. 일본에서 잘 팔리는 배우 몇 명으로 제작해선 안 되죠. 그건 어찌보면 소모성이에요. 제2, 제3의 한류스타가 나오려면 일단 스토리가 좋아야 하죠.”

<한지숙 기자>
/js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