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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스토리> 임금체불 피고석 앉은 韓변…수임 발로뛰는 金변 ‘영업사원’ 전락
2012년 대한민국 변호사들의 오늘
두 변호사가 있다. 명문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해 변호사가 된 엘리트다. 화려한 과거에 비해 그들의 2012년 현실은 초라하다. 68세의 노변(老辯)은 법률사무소 직원들의 임금 수천만원을 체불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불혹(不惑)을 넘긴 9년차 중견 변호사는 스스로 ‘영업사원’이라 부른다. 사건 수임을 위해 밤낮없이 뛰어다닌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연간 수임 사건은 20~30건 남짓. 한 달에 2건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대한민국 0.1% 엘리트 변호사, 2012년 그들의 현실을 들여다본다.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변호사


명문대 법대·사법고시 패스…고향마을·모교엔 플래카드 펄럭였는데…
야심차게 문연 로펌 적자에 허덕…결국 직원 퇴직금·월급 밀려 피소


지난 5월 21일 서울 중앙지방법원. 한동수(68ㆍ가명) 씨가 법정에 들어섰다. 변호사인 그에게 법정은 집만큼이나 익숙한 곳이지만 이날만큼은 낯설었다. 그의 발길이 향한 곳은 변호인석이 아닌 피고인석. 그는 이날 자신이 대표로 있는 법무법인 소속 직원들의 임금 및 퇴직금 7100여만원을 체불한 혐의(근로기준법위반)로 재판을 받았다.

한 씨는 서울 명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그의 고향 마을과 모교 정문에는 ‘○○의 아들 사법고시 합격’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릴 정도였다. 이후 그는 변호사가 됐다. 지난 2005년 서울 서초동에 법무법인을 세웠다. 소속 변호사와 직원이 15명에 달하는 중견급 로펌이었다. 5년이 지난 2009년 위기가 찾아왔다. 야심차게 시작했던 로펌 사업은 해가 갈수록 적자가 늘어났다. 결국 한 씨는 사업을 접었다. 직원을 15명에서 2명으로 줄였고 인근 빌딩에 작은 공간을 임대해 다시 법무법인을 세웠다. 하지만 경영난은 해소되지 않았다.

직원들에게 월급을 지급하지 못하는 일이 잦아졌다. 결국 지난 2010년 4월께 직원 두 명이 퇴직의사를 밝혔다. 한 명은 한 씨가 처음 법무법인 사무실을 세웠던 2005년부터 함께 일해왔던 직원이었다. 밀린 임금 5200여만원과 퇴직금 850여만원 등 김 씨에게 지급해야 할 금액이 6400만여원 정도였지만 한 씨는 지불할 여유가 없었다. 2009년부터 일해온 또 다른 직원에게도 밀린 임금 760만원 등 총 770만여원을 지급해야 했지만 불가능했다. 결국 직원들은 임금 체불 혐의로 한 씨를 고소했다. 법원은 한 씨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명문대 법학과를 졸업해 사법시험까지 통과하고 변호사가 된 그였다. 그러나 그가 최근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섰다. 개업한 변호사 사무실 직원들의 임금을 체불했기 때문이었다. 잘 나간다는 변호사였던 그는 왜 법정에 변호사 신분이 아닌 피고인 신분으로 서야 했을까. [헤럴드경제DB]


수십만원 수임료 국선변호 뛰는 이유?

“변호사 쇼핑시대…영업 못하면 망해” 수임보다 인맥쌓기에 더 열중
월 1000만원 우습게 벌었다던 선배들 무용담…그저 ‘그림의 떡’일뿐


경기도에서 활동 중인 9년차 변호사 김성민(44ㆍ가명) 씨는 명함이 두 개다. 하나는 ‘○○지방법원 국선변호사’ 나머지는 ‘법무법인 ○○ 소속 변호사’다.

지난해부터 국선변호인 활동을 시작했다. 법무법인에 속해 있으면서 국선변호까지 맡는 이유는 단 하나다. 일종의 영업이다. 국선변호는 수임료가 고작 수십만원 수준이라 수익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국선변호 활동을 통해 친분을 쌓고 인맥을 넓혀 이후에 굵직한 사건을 맡을 수 있는 기반을 다질 수 있다. 김 씨와 같은 법원에 소속된 국선변호인은 20여명. 전부는 아니지만 대다수가 그와 같은 이유로 이 활동을 하고 있다.

김 씨는 기업노무 전문으로 임금체불 등 민사소송을 맡고 있다. 고용주와 직원 간 소송을 주로 맡는다. 사건 특성상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 이상씩 이어진다. 수임료 200만원짜리 사건을 1년 잡고 있을 경우 한 달 수익은 20만여원이 채 되지 않는다. 성공보수도 많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건 처리와 별개로 새로운 사건 수임을 위한 ‘영업활동’이 불가피하다. 영업의 생명은 인맥이다. 그는 인맥쌓기용으로 시간이 허락하는 한 적극적으로 사교모임에 나간다. “아무런 인맥 없이 찾아온 의뢰인이 나에게 사건을 맡길 확률은 10%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7년 전 검사직을 그만두고 변호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연구회, 학술회 등 이른바 ‘폼나는 모임’에 자주 나갔지만 이젠 다 옛말이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매월 1000만원은 우습게 벌었다던 선배들의 술자리 무용담은 김 씨에게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뿐이다. ‘오전 재판-오후 업무-저녁 영업’으로 이어지는 빡빡한 스케줄로 하루하루를 보내도 매월 500만원 수입을 올리기 쉽지 않은 시대다. 김 씨는 “매년 변호사가 2000명씩 쏟아져 나온다. 동료들끼리 시쳇말로 ‘변호사 쇼핑 시대’라 부른다. 변호사는 이제 ‘속 빈 강정’일 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상범ㆍ김성훈 기자ㆍ고재영 인턴기자/ti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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