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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진래의 심중토크>장만기 인간개발연구원 회장 “MB 이렇게 된 것, 그 수준에 맞는 멘토가 주변에 없었기 때문”
대한민국 CEO들을 모조리 ‘아침형 인간’으로 만든 사람. 무려 37년 동안 매주 목요일마다 모두 1750회의 포럼을 거르지 않은, ‘조찬 포럼의 효시’. 장만기(75) 인간개발연구원 회장이다.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이명박, 황장엽, 안철수 등 대한민국의 내노라 하는 인물들이 모두 이 포럼을 거쳐갔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이 포럼에 나와 강연한 사람들만이 감히 우리사회 지도자 반열에 들 만한 분들이라고 할 정도다. 덕분에 장 회장은 그 흔한 정치적, 정무적 감투를 써 본 적이 없음에도 우리사회의 멘토이자 어른으로 존경받고 있다. 특히 한푼의 정부 예산지원도 받지 않고 이 만큼 해 냈다는 게 기적과 같다. 그의 조찬포럼의 주제는 정말 다양하고 깊다. 안팎으로 어지럽고 혼돈스러운 세상, 그를 만나 고견을 들어보았다.

- 1975년 2월5일 조선호텔에서의 첫 인간개발경영자연구회 조찬 이후 37년 동안 인간개발연구원은 CEO들과 함께 우리사회 문제의 답을 찾아 왔습니다. CEO, 그리고 인간개발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국경제를 짊어지고 갈 분들은 기업가, 경영자들입니다. 인재가 자산이라는 생각에, 사람에 과감히 투자하자는 산학협동의 정신으로 조찬을 시작했지요. 학계가 산업계를 멘토링해 주어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비정치, 비종교, 비영리의 ‘3비(非 )정신으로 끌고 온 조찬이 지난 주로 벌써 1750회를 넘겼습니다.


- 기억에 남는 강연이나 강연자가 있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 강연이 기억나네요. 1988년 정계 복귀 직전이었지요. 그쪽에서 조심스럽게 연락이 와, 한번 해 보자고 했지요. 예상대로 국정원 등에선 난리가 났어요. “연구원 문 닫으려 하느냐” 험한 말까지 나오고. 그러나 저는 이리저리 꼬인 김대중 문제를 풀지않고선 평화로운 88서울올림픽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고집 끝에 그의 복귀를 알리는 강연이 이뤄졌지요. 김 전 대통령이 제 ‘용기’에 진심으로 고마와 했던 것 같아요. 자택으로 새벽에 초대받기도 했으니... 이명박 대통령도 2차례나 강연에 참가했어요. 특히 정치 참여 문제로 등을 돌렸던 정주영 회장과의 ‘영혼의 화해’를 주선하기도 했어요. 정 회장 작고 직후인 2001년 6월에 정 회장의 리더십을 주제로 강연을 했지요.

- 요즘 이 대통령 측근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12월 대선 열기도 벌써부터 뜨겁습니다. 이 대통령이나 대통령이 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해 주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정치 지도자에게는 누구보다 훌륭한 멘토가 필요합니다. 이 대통령만 해도 그래요. 많은 멘토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대부분 범죄인으로 전락했잖아요. ‘영일만 친구’들이 MB를 바른 대통령으로 만들었어야 했는데, 대통령의 수준에 맞는 멘토가 없었던 것이지요. 자기 욕심만 갖고 있었던 겁니다. 국민의 신뢰를 받는 그런 멘토가 필요했어요. 이제라도 MB가 위기를 극복하려면 ‘정직’ 밖에는 없습니다.

박근혜 전 대표 문제만 해도 그래요. 대선 경선에서 지고 백의종군한다고 했을 때, 그를 포용하지 못했어요. 친박을 모두 몰아냈지요. 그 때 총리를 시켰더라면 지금 어땠을까요. 대통령 친형이 수사를 받고 있는데, 같은 당 친박계 원내대표가 “철저히 규명하라”고 재촉하는 상황입니다. 박근혜 씨 주변도 그래요. 굵고 큰 그림을 그려줄 멘토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모두들 박근혜 씨만 보고 무작정 따라가려는 것 처럼 보여요.

- 회장께선 큰 교회도 비판하셨지요. 올해 초 크리스찬 리더스 아카데미 강연에서 “기독교계 지도자들이 우리사회의 빛과 소금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요. 어떤 의미였나요.

▶우리 5000만 인구 가운데 개신교 신자만 1000만명에 이릅니다. 사회가 점점 혼란스러워지니 신도도 늘고 대형 교회도 많아지고 있지요. 그런데 이들 큰 교회 지도자에게 뭔가 결여되어 있어요. 교회 세습권 같은 것을 봐도 그렇고... 그런 것을 지적한 겁니다. 전국 방방곡곡 교회의 평신도와 장로들 가운데 ‘섬김의 리더십’이 가능한 사람들을 길러볼 생각입니다. 교회도 일류 기관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 기업 문제로 넘어가 보지요. 대기업들도 요즘 많은 기부와 사회공헌 활동을 합니다. 그런데도 국민들에게 제대로 평가받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1%에 대한 99%의 공격. 이것이 최근 자본주의에 대한 조류지요. 계열사의 모든 구매를 몰아 가져가고 대형 유통업체들이 골목상권을 점령해 가는 것을 보면서, ‘이런 것들은 자본주의 정신 이전에, 사회정서상 정부가 정리를 해 주어야 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것 때문에 결국 영세상인의 씨가 마르고, 대도시 중심의 경제체제가 되니 땅값 집값이 지역별로 크게 차이나는 역현상이 빚어졌지요. 교육도 서울로 몰리고 지방경제는 죽고... 경제활동하는 모든 사람들은 균등하게 부를 분배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 그렇다고 일부러 대기업이 크지 못하게 할 수도 없는 일이지요.

▶물론이지요. ‘멀리 가려거든 같이 가고,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는 말이 있잖아요? 우리는 너무 빨리 가려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아요. 모든 것을 대기업이 독점하고 있다고 보진 않아요. 다만, 정부 지원 속에 큰 대기업들이 제대로 우리사회에 기여하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는 생각입니다. 동반성장, 상생 얘기가 나오고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많아진 것은 기업들에게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지요.

- 기업들이 반성해야 할 점이 무엇인가요.

▶기업의 사명은 이익창출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그렇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기업이 이익 창출을 위해 두뇌를 엄청나게 다른 방향으로 쓰는 바람에 온갖 사고가 터진 것입니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잘못된 제도가 문제입니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기업 역시 정직하고 솔직해야 합니다. 기업이 잘못되면 민주주의도, 자본주의도 엉망이 됩니다.

- 1970년대 후반 노사대립이 첨예했을 때 ‘CEO를 위한 노사협조 세미나’를 열어 큰 성과를 거두었던 것으로 압니다. 어떻게 하면 노사가 평화롭고 건강하게 함께 갈 수 있을까요.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 일변도로 하다 보니 노동착취 등 비참한 현실이 빚어졌고 이것이 미국에 알려져 한국제품 불매운동까지 벌어진 적이 있어요. 그래서 신현확 씨 등이 우리 연구회에 해결방안을 의뢰했고, 고민 끝에 6대 도시를 돌며 100인 이상 근로자 기업의 경영자 300여명에게 6개월 동안 멘토링을 해 주었지요. 지금도 제가 생각하는 노사문제 해법은 이렇습니다. “노사 갈등은 사람을 존중하지 않아 오는 병폐다. 사람을 수단으로 다루지 말라. 노조도 자기이익만 추구하면 안된다. 경영자를 존중하라.” 노동이란 신성한 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봉사정신’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계적 생산에 불과해요. 열심히 일해야 과실을 얻을 수 있는데, 요즘은 덜 땀을 흘리고 부를 얻으려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무노동 무임금이 사회적 정의입니다. 대학 진학률이 높은 것도 노사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학력만 높아지면) 크게 노동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정부정책도 바뀌어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고 도전하는 사람을 예우해 주어야 합니다. 성적, 지역적, 학력 차별이 없어지길 바랍니다.

- 대학에서 기업이나 사회가 필요로 하는 교육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라고 봅니다.

▶고학력 사회가 만들어 지고, 모두가 스펙 쌓으려고 대학에 들어가려 하니 문제입니다. 가장 정직해야 할 대학이 그렇질 못하고, 교수들은 존경받지 못합니다. 오히려 교육을 통해 계급사회가 형성되고 있어요. 외국에선 대학이 건재하기 때문에 희망이 있습니다.

(그는 이 때 뜬금없이 군대 얘기를 꺼냈다. 자주 교류하는 군 장성들에게 틈날 때 마다 “입대하는 군인들에게 모든 사랑을 쏟아라”고 주문한단다. 거의 모든 젊은이들이 들어가는 군대에서 사람들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면 사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필요없는 데 국방예산 쏟아붓지 말고, 이런 쪽에 과감히 투자하라는 뜻이다.)

그는 이날 정말로 다양하고 깊은 사고의 스펙트럼과 인적 네트워크를 보여주었다. 이 대통령과 현대가와의 비화, 국제금융공사(IFC)와 하나금융 탄생의 뒷얘기 등. 북한 문제도 그 하나였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 방중 때 원자바오 총리를 따로 접견할 계획이 있었는데 총리가 사정이 생겨 못만나고 현지 유력 인사들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단다. 그 때 장 회장은 “중국이 어치피 김정은을 북한의 후계자로 인정했다면, 한국과 중국 두 나라가 북한에 왕창 투자하자는 게 어떤가”하고 제안을 했다고 한다. “주민들을 모두 생산에 참여케 하자. 북한을 컴플렉스에서 벗어나게 하면 휴전협정도 평화협정으로 바꿀 수 있다.” 청와대에도 이런 제안이 들어가 양국 정상들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열정과 끊임없이 샘솟는 상상력은 75세라는 나이를 잊게 했다. 그는 4시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에서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꼿꼿한 자세로 쉼없이 열변을 토해냈다. 그가 한 말을 이 기사에 다 주어담을 수 없을 정도로.

조진래 부국장 겸 선임기자/jj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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