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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볼펜으로 얼마나 그어야 이런 덩어리가? 이일의 볼펜화
<이영란 기자의 아트&아트 >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뮤지엄에 4점의 작품(판화)이 소장돼 화제를 모았던 화가 이일(IL LEE, 60)이 16년 만에 고국에서 개인전을 연다. 그는 서울 종로구 사간동의 갤러리현대(대표 조정열)에서 ‘이일과 선(線)의 연속성’이라는 타이틀로 작품전을 개막했다. 그런데 그가 선보인 그림은 모두 ‘볼펜 그림’이다. 묵직한 검은 덩어리의 그림이 오직 볼펜으로만 이뤄졌다는 점에서 그의 회화는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뉴욕을 무대로 ‘볼펜화가’로 주목받고 있는 재미작가 이일이 서울에 왔다. 오는 7월 15일까지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열리는 그의 고국전시 출품작은 모두 볼펜(또는 빈 볼펜)으로 그린 것이다. 가로 3~4m, 세로 2~3m에 달하는 대형 화폭 속 검푸른 면과 선들이 오직 볼펜으로만 이뤄졌다는 사실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일상의 필기구로, 예술의 한 경지를 일궜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가히 독보적이다.



이일의 작품에선 볼펜의 가는 선들이 춤추듯 다이내믹하게 움직인다. 그 거침없는 움직임은 화폭에 신선한 활기와 리듬감을 선사하며 끝없이 반복된다. 그리곤 가는 선들은 검은 면이 돼 명상적이고 엄숙한 분위기를 빚어낸다. 실낱같은 선들이 만들어낸 그 숭고한 분위기라니…. 

그의 작품은 미국의 대표적 전후(戰後)미술인 액션페인팅의 한 계보로 운위되곤 한다. 그러나 두세 발짝 떨어져서 보면 한 점의 수묵화인냥 우주적 혼돈의 세계가 장엄하게 펼쳐진다. 미술평론가 정준모 씨는 “열정이 가득한 그의 화폭은 그림이기 이전에 땀의 성과물이며, 거기엔 엄숙함이 존재한다”고 평했다.

이일은 대학(홍익대미대) 4학년 때인 1975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37년간 홀로 활동해왔다. 초창기 판화작업에 몰두하던 그는 “동판화용 송곳이 만들어내는 날카로운 선이 좋아 못, 칼날, 연필로 실험을 거듭했다. 그러다가 일정한 선을 끝없이 뽑아낼 수 있는 볼펜에 빨려들게 됐다”며 “손목은 괜찮으냐, 볼펜 회화 한점 그리는데 얼마나 걸리느냐고들 묻는데 이렇게 그리기까지 30년이 걸렸다”고 답했다. 



이어 “참, 손목! 무사할 리 있겠느냐? 그래도 볼펜을 휘갈기다 보면 손놀림 하나하나가 선이 돼 바람결에 흔들리는 것같아 고통도 달아난다. 보이지 않는 심연에 빠져들면 일상의 근심도 잊는다”고 했다.

미국 이민초기 난방도 안 되는 창고에 살며 이삿짐센터 짐꾼, 집수리센터 인부 등 온갖 잡일을 전전하면서도 작업에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이일은 마침내 볼펜회화로 독보적 영역을 구축했다. 


미국의 권위있는 미술잡지 ‘아트 인 아메리카’의 에드워드 레핑웰 에디터는 “이일의 작품 속엔 서예, 풍경화, 섬유와 도예의 전통이 함축적으로 살아숨쉰다”고 평했다.

이번 전시에 이일은 볼펜회화와 함께 가느다란 대나무가지로 캔버스 표면의 물감층을 긁어낸 새로운 기법의 회화 등 총 20여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02)2287-350. 

사진제공=갤러리현대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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