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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對 정부 ‘와인 전쟁’…‘신의 물방울’이 부처간 ‘분열의 물방울’로 변질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와인의 인터넷 판매 허용을 놓고 부처간 파열음이 계속되면서 정부의 내부 대결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유통구조 문제라는 비교적 덜 심각한 사안을 두고 정부 부처끼리 이처럼 공개적으로 각(角)을 세우며 물러서지 않고 있는 것은 다분히 이례적인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들 눈에는 정부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고, 정권말 접어들면서 정부 수뇌부의 ‘영(令)’이 서지 않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올 법하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기획재정부는 소비자 편익과 유통구조 개혁을 위해 인터넷 판매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주무당국인 국세청은 타 주종과의 형평성 문제, 무자료 거래로 인한 탈세 확산 우려, 청소년 음주소비 조장 가능성 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도 같은 입장을 취하며 국세청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공정위의 입장은 어찌보면 단순하다. 국민들은 와인을 원하고 있고, 그렇다면 같은 제품을 더 싼 가격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주류문화 변화로 와인 소비량이 점차 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가격의 문턱을 낮춰 국민들로 하여금 경제수준과 무관하게 부담없이 와인을 즐기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라는 것이다.

또 판매자와 소비지간 인터넷 직거래를 허용하는 것이 현행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란 입장이다. 이렇게 될 경우 도ㆍ소매 등 유통단계마다 붙게되는 중간마진과 세금을 줄일 수 있어 원가와 판매가의 차이를 확연히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인터넷 판매를 허용하면 소비자가격이 20~30%가량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하고 있다. 미국ㆍ유럽ㆍ일본 등 대다수 선진국들이 인터넷에서 와인 매매가 가능하다는 점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기재부는 인터넷 허용으로 인한 세수 감소보다 여론에 대한 걱정이 더 크다. 와인값이 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자칫 FTA(자유무역협정)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으로 이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국민들 입장에선 우리나라가 칠레, 유럽연합(EU), 미국 등 주요 와인 생산국들과 체결한 FTA가 이미 발효됐음에도 와인 가격엔 큰 차이가 없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 유통구조를 바꿔서라도 FTA효과에 대한 반발기류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한 국세청의 반대 입장은 확고하다. 인터넷 판매는 절대 안된다는 방침이 요지부동이다. 주류 세정의 원칙상 와인의 인터넷 판매를 막아야 한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이를 허용해줄 경우 주무부처로서 일본 정종(사케), 맥주 등 타종 주류의 진입을 막을 명분이 잃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오히려 온라인 유통 장악력이 강한 대형 유통업체들의 독과점을 양산할 수 있다는 논리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이 국세청 내부의 규제권한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청와대는 이처럼 부처간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이 문제를 놓고 공정위와 국세청 실무책임자를 불러 이미 한차례 중재에 나섰지만, 의견 조율에 실패한 상태다. 이를 두고 항간에선 정권 말에 접어든 청와대가 콘트롤 타워의 능력을 상실, 와인 문제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청와대의 추가 중재는 이달 초 예정된 관계부처 회의에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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