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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당자리는 언감생심(焉敢生心)”…초선의원들은 모르는 ‘국회 정치학’
“국회의원 자리에도 등급이 있다?”

이제 갓 국회에 입성한 초선의원 148명의 ‘국회 정치학’ 개론 1장은 ‘자리 배정’에서 시작한다. 모든 선택권은 선수(選數)와 연장 순에 따른다는 불문율은 국회 정치학의 기본이다. 소위 ‘명당’이라고 불리우는 곳도 이들에겐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의원회관 개인 사무실에 짐을 푸는 것에서부터 여의도 정치를 배우게 되는 셈이다. 때문에 국회 본회의장의 자리 배치는 각 당내 권력관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단면도가 되기도 한다.

▶의원회관 방 배정의 정치학=300명의 국회의원은 모두 의원회관에 개인 사무실을 갖게 된다. 하지만 방 선택에 있어서는 본인 뜻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방을 배정할 때 특별히 규정된 ‘룰’은 없다. 의원 개개인이 선택하고 추첨에 따라 이뤄지는 게 원칙이라면 원칙이다.

이런 원칙만 믿으면 큰일 난다. 여기에는 숨겨진 ‘룰’이 있다. 다선 의원일수록, 당내 서열이 높을수록, 그리고 나이가 많을수록 ‘명당 자리’를 먼저 꿰차게 된다. 초선에다 나이가 적은 의원은 ‘당에서 정해 주는’ 대로 가야만 한다.

지난 23일 준공한 제2 의원회관(신관)의 단면도는 ‘방 배정의 정치학’을 확인할 수 있는 교본이다. 로열층(6~10층) 북쪽의 방들은 한강과 양화대교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조망으로 여야 지원자가 몰렸다. 하지만 좋은 자리는 한정돼 있고 소수 지도부만이 이곳으로의 입성에 성공했다.

특히 신관 6층의 경우 대권주자와 여야 원내대표 등 핵심인사들이 대거 입주해 ‘신(新)명당자리’, ‘실세층’으로 불린다.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장은 이곳 620호를 배정받았고 그 방을 기준으로 왼쪽은 ‘복박(復朴ㆍ박근혜로 되돌아온 친박) 인사’로 불리는 진영 정책위의장, 오른쪽에는 쇄신파를 주도하고 있는 남경필 의원과 친박계 이한구 원내대표가 자리를 잡았다.

민주당의 경우 공교롭게도 박지원 원내대표가 같은 층 박 전 위원장의 네 자리 옆(615호)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최근 ‘7인회, 박태규 의혹’ 등을 잇달아 터뜨리며 박 전 위원장과의 악연을 이어가고 있다. 박 원내대표는 ‘남북 6ㆍ15 공동선언’의 주역이라는 의미를 살리기 위해 18대 국회 때부터 615호를 고수했다는 후문이다.

대선주자의 경우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한강이 보이는 818호로 가게 됐다. 반면 정몽준 의원은 기존에 쓰던 방(구관 762호)을 고수했다. 민주당의 문재인 상임고문은 초선임에도 신관인 325호를, 정세균 상임고문도 로열층인 718호를 배정받았다.

한편 구관에도 ‘전통의 명당자리’가 몇 곳 있다. 바로 전직 대통령이 썼던 방이다. 대통령이 배출된 방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의원 시절 사용했던 구관 469호는 정의화 국회의장 권한대행이 물려받아 계속 사용 중이다.

고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을 배출한 구관 328호와 638호는 리모델링 공사로 사라지게 됐다. 노 전 대통령이 쓰던 방은 속칭 ‘구사일생 방’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방을 쓰던 의원들은 한때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막판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기 때문에 붙은 별칭이다. 18대 당시엔 서상기 의원이 이 방을 썼었으나 리모델링 때문에 방을 바꾸게 돼 안타까워 한다는 후문이다.

비례대표 경선 파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이석기ㆍ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은 각각 신관 520호와 523호에 입주한다. 이 의원의 방은 박근혜 전 위원장의 바로 밑에 위치해 눈길을 끈다.

선수ㆍ나이에서 가장 막내인 김광진 민주당 의원(청년비례대표) 측은 “구관은 리모델링을 하게 돼서 앞으로 최소 2번 이사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각오한 일”이라고 밝혔다.

▶본회의장 좌석 배치의 권력도=본회의장 좌석 배치에 있어서도 ‘국회 정치학’이 작용한다. 특히 부채꼴 모양으로 퍼진 본회의장 자리는 당내 권력구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교본이 되기도 한다.

국회 관계자는 “원내 교섭단체별로 구역을 정해 주면 교섭단체가 자율로 자리를 지정하며 비교섭단체 의원은 국회의장이 의석을 정해 준다”고 말했다. ‘교섭단체의 자율’로 포장을 했지만 여기서도 선수(選數)와 권력지형이 그대로 작용한다.

평상 시 본회의 맨 앞줄은 ‘기피석’이다. 화장실 갈 때도 불편하기 때문에 이 자리는 초선 의원들이 독차지하곤 한다. 맨 앞줄이 철저하게 ‘모범생 모드’로 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게잡는 학생은 교실에서도 앞에 앉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상황 발생 시에는 맨 앞줄이 공격조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맨 앞줄은 돌발상황이 생기면 과감하게 국회의장석으로 뛰어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이 경우에는 보통 초ㆍ재선 의원들 중에서도 비중있는 상임위 소속 의원들이 맨 앞줄을 점령하게 된다.

본회의장에서 명당자리는 맨 뒷줄이다. 일명 ‘지도부석’으로 불린다. 뒷좌석은 출입구와 가깝기도 하고 들락날락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회의에 임할 수 있다. 또한 본회의장이 경사가 진 탓에 뒷자리에 앉은 의원은 앞에 있는 의원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감시하기 수월하다. 뒷짐 지고 앉아 자유롭게 귓속말을 주고 받으며 다른 의원들을 감시하는 자리인 셈이다.

19대는 아직 원구성이 끝나지 않아 본회의장의 자리 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18대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대위원장과 정몽준 전 대표, 정세균 전 민주당 대표 등의 명당자리를 보면 쉽사리 예측이 가능하다. 새누리당은 각 열 맨 뒷자리에 산발적으로 포진했으며, 민주당은 모든 의원들의 동선 파악이 가능한 자리에 집중적으로 포진했었다.

간혹 브라운관 화면에 맨 앞줄에서부터 의원들이 뒷자리에 앉은 지도부와 악수하기 위해 줄서서 기다리고 있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뒷줄 2열’은 당의 얼굴과 같은 대변인들이 포진한다. 본회의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당 지도부와 맨 앞줄의 의원들이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도록 지도부 바로 앞자리에 앉는다. 이를테면 ‘메신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양대근 기자/bigroo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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