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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기이식 수준 세계최고…1만6000명 ‘기약없는 대기’
국내 장기이식의 현주소
60년대엔 이식환자 절반이 조기사망
20년새 신장이식자 10년 생존율 70%
기증 年1500여건 불과 인식전환 절실


# 13살 때 당뇨병 진단을 받은 러시아인 타티아나(37ㆍ여) 씨에게 지금까지의 삶은 고통이었다. 날카로운 인슐린 주사바늘이 익숙해질 무렵엔 복막투석을 받아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다. 유일한 희망은 장기 이식뿐이었다. 아버지의 신장을 받으려 했지만 혈액형이 달랐다. 췌장 이식은 아예 생각지도 못했다. 타티아나 씨는 장기 이식 선진국인 한국을 선택했다. 신장 이식을 상담하던 타티아나 씨는 한덕종 서울아산병원 일반외과 교수로부터 깜짝 놀랄 제안을 받았다. 혈액형이 다른 사람의 췌장도 이식받을 수 있다는 것. 지금까지 혈액형 부적합 장기 이식은 간, 신장을 대상으로 이뤄져 왔다. 수술 한 달이 훌쩍 지난 지금, 타티아나 씨는 정상적인 식사는 물론 가벼운 산책까지 즐기고 있다. 희망을 꿈꾸며 한국에 온 타티아나 씨는 이제 기적을 안고 퇴원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국내 의료진의 장기 이식 수준은 타티아나 씨의 사례처럼 외국에서 수소문해 찾을 정도로 세계 최고란 평가다. 1969년 이용각 가톨릭의대 교수팀이 최초로 신장 이식(생체 기증)을 성공적으로 시행하며 국내 이식 수술의 첫발을 뗀 뒤, 1988년엔 김수태 서울대 교수팀이 뇌사자 간 이식에 성공했다. 1990년대엔 췌장을 비롯해 심장 이식도 성공했고 심장과 간, 신장과 췌장 등 여러 장기를 동시에 이식하는 데도 성공했다. 폐와 소장 이식도 국내 의료진이 선도하고 있다. 김명수 대한이식학회 총무이사(세브란스병원 이식외과 교수)는 “국내 장기 이식 수준은 이식 건수나 이식 후 성적에 있어 아시아권에선 이미 최상위권”이라며 “특히 생체 이식 분야는 미국과 유럽에 견줘도 우위에 있다”고 말했다.

물론 처음부터 이식 성공률이 높았던 것은 아니다. 1960년대에는 장기 이식을 받아도 절반 이상의 환자들이 조기에 숨을 거뒀다. 그러나 이식 기술 발전과 함께 면역억제제의 개발로 1980년대부터는 많은 이식 환자들이 건강한 삶을 되찾게 됐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에 따르면 신장의 경우 5년 생존율이 85%, 10년 생존율이 70% 가까이 된다. 간 이식도 1980년대 이전에는 1년 생존율이 40%에 그쳤지만 이후 60~70%로 뛰었다. 최근에는 이식 후 3년 생존율이 75~85%로 더 높아졌다. 장기 이식이 장기의 말기질환 치료의 표준 치료방법이 된 것이다.

장기 이식은 생명과 생명을 잇는 기적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다만 아무리 의료 수준이 뛰어나도 이식할 장기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                                  [제공=서울아산병원]

문제는 필요한 장기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리 의료 수준이 뛰어나도, 성공률이 높아도 이식할 장기가 없으면 소용 없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장기 이식을 기다리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는 환자가 2008년 540명, 2009년 892명, 2010년 1147명으로 늘고 있다.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사람은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1만6764명(신장 1만964명, 간 4895명, 췌장 532명, 심장 257명, 폐 88명, 소장 10명)으로 해마다 2000명 이상 늘고 있지만 장기 기증자는 생체 및 뇌사 기증자를 모두 합쳐도 지난해 총 1500여건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009년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며 각막을 기증한 뒤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지면서 그해 기증자가 크게 늘었지만 최근 다시 감소 추세라고 장기이식관리센터는 밝혔다.

일부 환자들은 평균 2.3년이 걸리는 대기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외국으로 기증자를 찾아 나서거나 불법 장기매매 유혹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장기기증자가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이식을 받으면 질병이 되레 악화되거나 잘못된 면역억제제 등으로 인한 부작용까지 우려된다.

김우영 기자/kw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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