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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일성 1975년 남침 시도했었다”
옛 공산국 외교전문서 드러나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지난 1975년 재차 남침을 계획하고 중국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당시 남북은 7ㆍ4 공동성명 발표 이후 표면적으로 대결을 지양하고 공존을 모색하는 시기였지만 북한은 뒤로는 남침을 준비한 셈이다.

지난 1975년 봄 방중한 김 주석은 “남침할 테니 도와달라”며 지원을 요청했지만 미국과의 데탕트를 추구하며 한반도 긴장완화를 원치않았던 중국은 1971년 7ㆍ4 남북공동성명 채택으로 활발하다 1973년 말 중단됐던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만류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주석의 방중을 전후한 4월 17일과 30일은 공산반군에 의해 캄보디아 프놈펜과 베트남 사이공이 함락되면서 인도차이나 공산혁명이 정점으로 치닫던 시기였다. 이 같은 사실은 미 우드로윌슨센터 ‘북한국제문서연구사업’(NKIDP) 프로젝트팀이 최근 발굴한 옛 공산권 국가의 비밀 외교전문에 따른 것이다.

외교전문에 따르면 북한과 중국은 1975년 4월 18일부터 26일까지 이뤄진 김 주석의 방중 때 발표된 양국 코뮈니케가 “모든 의제에 합의를 이뤘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대남(對南), 대(對)소련, 미국 정책 등 주요 이슈에서 양국은 많은 견해차를 드러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평양 주재 동독대사관은 김 주석 방중 직후인 4월과 5월에 보낸 외교전문 3건을 통해 “김 주석의 방중 일정은 급히 짜여졌다”며 “김 주석 방문의 주요 목적은 인도차이나혁명의 전개 상황을 바탕으로 향후 대남전략을 중국과 조율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그해 4월 17일과 30일 공산반군은 캄보디아 프놈펜과 베트남 사이공을 함락하면서 인도차이나 공산혁명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김 주석은 당시 방중에서 건강이 좋지 않았던 마오쩌둥(毛澤東) 주석과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를 각각 한 차례 면담하고, 덩샤오핑(鄧小平) 부주석과 19, 20, 21, 25일 네 차례에 걸쳐 회담을 가졌다. 그러나 북한의 바람과 달리 중국은 한반도 통일이 김 주석도 승인한 1971년 7ㆍ4 남북공동성명의 3대 원칙(자주ㆍ평화ㆍ민족 대단결)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특히 “1972년에 본격화됐지만 1973년 말부터 정체상태에 빠진 북·남 간 대화가 지속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동독대사관은 “중국이 미국 및 남한과 대결하려는 북한의 정책에 관심이 없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라며 “이는 한반도에 불안정한 상황을 초래해 중국에도 예측하기 힘든 위험을 야기할 수 있고, 중국이 추진하는 미국, 일본과의 관계개선 정책을 위협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파견된 우드로윌슨센터 연구원 채리아 서울대 강사는 “김일성 주석의 1975년 4월 방중은 1961년 이후 14년 만에 대표단을 이끌고 공식적으로 중국을 방문한 것”이라며 “당시 방중의 의미는 북ㆍ중 관계와 북한의 대남 전략을 이해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이벤트지만 정보의 한계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현종 기자>
/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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