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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시사지 “보시라이, 쿠데타 실행 직전까지 갔었다”
[헤럴드생생뉴스]실각한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당서기가 쿠데타 음모를 진행 중이었다는 흔적이 여기저기서 드러나는 가운데 저명한 중국전문가 윌리 워 랍람(林和立)이 보가 지난 2월 인민해방군을 움직여 거사를 실행하기 직전까지 갔었다고 주장해 관심을 끌고 있다.

홍콩 유력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기자로서 중국 내부 상황에 관한 정확한 기사로 이름을 날린 월리 워 랍 람은 일본 시사잡지 사피오(SAPIO) 5월9~16일자 최신호를 통해 보시라이의 쿠데타 기도와 관련한 내막을 소개했다.

윌리 워 랍 람은 베이징의 중국 소식통을 인용해 보시라이가 지난 2월 측근이던 왕리쥔(王立軍) 전 공안국장이 쓰촨성 청도(成都) 미국총영사관 앞에서 신병이 구속돼 베이징으로 압송된 사실을 알게 되자 충칭에 주둔한 인민해방군 부대를 동원하려했다고 전했다.

당시 보시라이의 정변 계획이 사전에 누설, 저지됐으나 자칫하면 문화대혁명(1966~1976년) 시기에 잦았던 군과 민병 조직 등에 의한 무장충돌(武鬪)로 번질 수 있는 긴급한 상황이었다고 월리 워 랍 람은 강조했다.

중국 소식통에 따르면 왕리쥔이 2월6일 미국총영사관에 들어갔을 때 경찰차와 군 장갑차 수십 대가 총영사관을 에워싸고 언제라고 공격을 시작할 태세였다고 한다. 그때 보시라이는 5천 정의 자동소총과 50만 발의 탄약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월7일 밤 베이징에서 청두로 날아온 국가안전부와 당 중앙 기율검사위요원, 국방부 장교가 왕리쥔의 신병을 확보해 베이징으로 가자 보시라이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시라이는 다음날 충칭에 주둔하는 부대 일부를 직접 이끌고 군용기 편으로 윈난(雲南)성 쿤밍(昆明)으로 갔다.

쿤밍은 충칭시, 쓰촨성, 윈난성, 티베트 자치구 등을 관할하는 청두군구의 주요기지가 있는 곳이다.

더욱이 쿤밍에는 보시라이 아버지로 공산중국 건국 원로인 보이보(薄一波) 전 부총리가 국공내전 때 창설한 제14 집단군의 사령부가 있었다. 그만큼 보시라이로선쿤밍이 가장 믿을만한 무력기반인 셈이다.

하지만 보시라이의 이런 수상한 동정은 즉각 중앙에 의해 탐지됐다. 총사령관인중앙군사위 주석을 겸직하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바로 다수의 군 병력에 쿤밍으로 향하도록 명령했다.

보시라이는 후 주석의 지시를 받은 대규모 부대가 쿤밍으로 진군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서 맞설 생각도 했으나 곧 중과부적임을 깨닫고 충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후 보시라이가 베이징에서 쿠데타를 일으키려 한다는 소문이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微博)와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퍼지면서 중국 내외에 충격을 준 경위를 살피면 정변설이 단순히 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소식통은 보시라이의 거사 음모를 벌써 중앙이 눈치를 챘기 때문에 결행했다 해도 100% 실패할 운명이었다고 지적했다.

보시라이는 작년 11월10일 후 주석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하와이를 방문한 틈을 타 충칭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해 중앙의 주목을 받았다.

관영 신화통신은 그 훈련이 ‘청두군구 국가국방동원위 제6차 전체회의 실병연습’으로 충칭시가 자연재해 발생에 대비, 군을 출동시켜 시민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시행됐다고 소개했다.

다만 이 시점에서 당 중앙은 보시라이의 불온한 행동과 비리 혐의 등을 낱낱이 파악하고 있었다고 소식통은 밝혔다.

후 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보시라이와 충칭의 그 심복 움직임을 예의주시했다. 또한 지도부는 충칭을 찾아 현지 훈련을 지휘한 량광례(梁光烈) 국방부장으로부터 보시라이가 쿠데타를 기도할 우려가 있다는 사실과 유사시 보시라이 측에 가담할 부대의 무기와 장비 보유실태를 상세히 보고받았다.

결국 사실상 후 주석과 원 총리 등 지도부가 처놓은 덫에 걸린 처지인 보시라이는 3월 초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 출석하려고 베이징에 도착했지만 전인대 도중 체포돼 모처로 연행됐다.

소식통은 보시라이의 뒤를 봐주던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과 차기 최고지도자로 내정된 같은 ‘태자당’ 출신의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 가능하면 보의 구속과 처벌을 피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그랬지만 왕리쥔이 미국총영사관에 가지고 들어간 기밀서류가 미국 정부에 넘겨져 마침 방미한 시진핑에게 그 존재를 확인한 탓에 그로선 보시라이를 구하는 걸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소식통은 덧붙였다.

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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