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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나가는 후보들 ‘숨은 표’에 뒤통수 맞을라
유권자들 여권성향·전통표심에 반하는 의견 표출 꺼려…여론조사 신뢰성 떨어지고 돌출변수 더해져 의외 결과 속출
 변화 필요성 느끼지만
여론조사땐 자기의중 침묵
투표장 가서 정치적 선택

여론조사결과 오차
작년 4·27 재보선 최대 21.5%
2010년 6·2지방선거는 18%

역대선거 숨은 민심 10% 안팎
후보들 ‘굳힌표’만 들기 사활


지금 새누리당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정권심판론’이 아니다. 여론조사 결과만 믿고 방심할지도 모를 후보들의 자세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숨은 표’를 염두에 두지 않는, 전략 없는 각개전투가 걱정이다. 여론조사에서는 앞서다 개표해 보면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호남과 수도권 일부에서 집권당 못지않게 위세를 떨지는 전통적인 민주당 우세 선거구의 야권후보도 마찬가지이다.

지난해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열흘쯤 앞둔 시점에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 측은 “숨은 표가 3%면 이기고 7%면 진다”는 자체 분석을 내놓았다. ‘숨은 표’란 여론조사 때 자기 의중을 침묵의 나선 속에 숨기다가 기표장 천막을 내리고서야 자기 마음을 실행하는 유권자를 말한다.

‘숨은 표’는 전반적으로 야권 표가 많고, 지역에 따라서 기존 권력이 우세할 경우 그 반대표가 많다. 비밀한 곳에서야 나만의 뜻을 분명히 하고, 공개된 사회관계에서 자기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 경향은 ‘침묵의 나선(Spiral of silence)’에 의해 나타난다. 많이 거론되는 얘기와 반대되는 의견을 갖고 있을 때 침묵하다 은밀한 기표장에 가서야 내 뜻대로 찍는 행태다.


나 후보는 그런 분석을 내놓을 당시 여론조사에서 박원순 후보를 2.9%포인트(뉴시스), 3.1%포인트(서울신문), 3.6%포인트(중앙일보), 5.5%포인트(한겨레신문) 정도 앞서고 있었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기간인 선거 사흘 전 ‘안철수의 박 캠프 방문’이라는 돌출변수가 발생하면서 이 격차는 줄어들고, 결국 박 후보가 53.4%의 득표율로 나 후보(46.2%)를 7.2%포인트로 눌렀다.

결국 돌출변수와 함께 작용한 ‘숨은 표’는 10~11%포인트였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숨은 표’로 볼 수도 있지만, ‘굳힌 표’, ‘변한 표’도 적지 않다는 견해를 보이기도 한다. 일부 소극적 지지층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정당과 인물, 민생 등에 대해 보다 정밀하게 파악하면서 변심하기도 하고, 오락가락하다 한쪽을 굳히는 경우가 꽤 있다는 것이다.

일부 소극적 지지층은 정당·인물 등에 대해 정밀하게 파악하면서 변심 하기도 하고, 오락가락 하다 한쪽을 굳히는 경우가 꽤 있다. 전통적 우세지역이나, 집권당 후보가 여론조사 결과만 믿고 방심한 채 ‘숨은 표’를 고려하지 않고 선거운동을 했다가는 낭패를 볼 가능성이 있다.

숨은 표, 변한 표, 굳힌 표를 정확히 구분하기 어려우므로 여기서는 숨은 표로 통칭하기로 하자.

이혜훈 새누리당 상황실장은 지난 25일 “판세 보고를 보니 나름 괜찮은 편이다. (여당인 점을 고려해) 현재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5%포인트 정도를 빼고 봐도 걱정했던 것보다 그럭저럭 괜찮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그러나 “물론 10%를 빼면 얘기는 달라진다. 여론조사는 워낙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부분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 돌입직전 상황과 실제득표율을 비교해 보면 ‘숨은 표(변한 표, 굳힌 표 포함)’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숨은 표의 크기는 이 실장이 말한 5%보다는 더 빼야 할 듯싶다. 최소한 10% 정도는 된다는 것이 전례를 통해 말해주고 있다. 휴대폰 조사가 쉽게 이뤄진다면 모를까, 여전히 2040남성, 20대여성이 거의 전화를 받지 않는 가정집을 대상으로 하므로 ‘민심’을 대변하기 어렵다는 점도 ‘숨은 표’를 키우는 요인이다.

최근 2년의 전례를 보자. 지난해 4ㆍ27 재보선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숨은 표는 9.1~21.5%이다.

선거 일주일 전 동아일보-코리아리서치 조사에서 엄기영 후보는 최문순후보를 17%포인트 앞섰다. 선거 열흘 전 KBS-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는 엄 후보가 9.1%포인트를, 선거 11일 전 리서치뷰 등이 실시한 조사에서는 엄 후보가 4.6%포인트를 앞섰다. 하지만 개표 결과 최 후보는 엄 후보를 4.5%포인트 차로 누르고 역전 당선됐다.

2010년 6ㆍ2 지방선거, 서울시장 투표 결과도 10.9~18.0%의 오차가 발생했다. 선거 일주일 전에 집계된 뉴시스와 한길리서치의 조사 결과, 오세훈 후보는 한명숙 후보를 18.6%포인트 차로 앞섰고, 선거 보름 전 실시된 CBS와 리얼미터의 조사에서는 오 후보가 11.5%포인트를 앞서나갔다. 하지만 실제 개표는 0.6%포인트 차이로 오 후보가 겨우 당선됐다.

당시 강원도지사 자리를 놓고 벌였던 이광재 민주당 후보와 이계진 한나라당 간의 여론조사-실제득표율 오차는 야권 군소후보의 여론조사 지지율을 모두 이광재 후보 쪽으로 합산하더라도 17.4~18.7%의 오차가 발생했다. 강원도 내 5개 언론사의 4월 중순 조사 때의 격차는 14.6%포인트 이계진 우세, 5월 9일 조사에선 16.2%포인트로 더 벌어졌다. 선거 일주일 전 리서치뷰의 조사에서는 8.7%포인트로 좁혀졌다. 결국 이광재 후보가 8.7%포인트 차로 역전승했다.

지난해 분당을 국회의원 재보선에선 여론조사가 널뛰기를 했다. 결과적으로는 여론조사와 실제표심의 격차는 5%포인트였다. 선거 열흘 전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선 손학규 후보가 강재섭 후보를 7.5%포인트 앞섰지만, 투표 일주일 전 코리아리서치 조사에서는 강 후보가 2.3%포인트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표 당일 YTN 출구조사는 손 후보의 9.7%포인트 차 승리였지만, 결국 손 후보는 2.7%포인트 차로 신승했다.

지난해 8월 24 무상급식투표 의향에 대한 조사에서는 최저 8.9%포인트, 최고 14.6%포인트의 격차가 났다. 실제 투표율은 25.7%인데, 적극투표의사를 밝힌 응답은 7월 23일 조선일보 조사 34.6%, 8월 14일 동아일보 37%, 8월 15일 매일경제 40.3%, 8월 20일 중앙일보-YTN-동아시아연구원 38.3%였다.

‘숨은 표’는 강원도에서 부쩍 많았다. 변화의 필요성을 스스로 강하게 느끼면서도, 정서적으로 혼자 다른 의견 내기를 꺼리다 투표장에 가서 정치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전통적인 보수지역, 친여지역이었던 점 때문에 “개혁”을 대놓고 얘기하지 못한 채 투표로 말했던 것이다.

이처럼 ‘진의 숨기기’가 놀라운 선거 결과를 초래하는 데 크게 작용하겠지만, ‘여론 공표 금지 일주일간의 변화’도 만만찮게 작용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동아시아연구원 정한울 EAI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지방선거 리뷰’를 통해 ‘친MB성향이면서 MB심판론자’, ‘反야성향이면서도 MB심판론자’ 등 양면적 태도를 갖고 있던 유권자 중 일부가 일정한 변수에 따라 태도를 바꾼다”면서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자신감에 찬 여권의 선거전략이 급격하게 공세적으로 전환되면서 이들 유권자들에게 견제 균형심리가 발동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전통적 우세지역이나, 집권당 후보가 ‘숨은 표’를 고려하지 않고 선거운동을 했다가는 낭패를 볼 가능성도 있다.

함영훈 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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