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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석 상상력 사전> 경 계
여기에 가장 극적인 인간사가 있다. 삶과 죽음, 희망, 절망, 빈곤, 취업, 결혼, 범죄, 가족, 이별, 거래, 전쟁.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거의 모든 드라마가 땅 위에 그어놓은 상상 속의 경계, 국경 위에서 벌어진다. 귀족과 영주들이 소작농을 부리며 농토를 관할한 봉건 시대가 지나 근대 국가가 출현하면서 땅 위에 새로운 금이 그어지고 이것이 영토, 그리고 국경이라고 불리면서 비극은 잉태됐다.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종교의 박해를 피해서, 일자리를 얻으러. 경계의 이쪽 저쪽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들. 난민, 불법이주민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국경’은 어떤 이들에게는 새롭고 흥미진진한 신세계를 향해 열려있는 문이지만, 또 다른 이들에겐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을 가로지르는 생존의 마지노선이다.

영화 속에서 난민과 불법이주 문제는 동서고금의 보편적 소재이기도 하다. 중동, 아랍, 동구, 아프리카계 이주민들이 많은 유럽이나 접경지대에서 중남미인들의 월경이 잦았던 미국 등에서 영화로 자주 다뤄졌다. 파키스탄 출신의 소년이 영국을 가기 위해 국경수비대의 엄혹한 감시를 뚫고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을 넘는다는 내용의 영화 ‘인 디스 월드’(마이클 윈터바텀)는 한밤중 차가운 총탄이 귀 옆을 스치는 듯한 공포를 보여준 수작이다. 벨기에 출신의 거장 다르덴 형제 감독의 ‘로나의 침묵’은 알바니아 출신의 여성이 위장결혼을 통해 벨기에 시민권을 얻고 다시 돈벌이를 위해 다른 남자와 위장결혼을 하는 비극을 담고 있다.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 남녀가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토니 갓리프 감독의 ‘추방된 사람들’은 유럽에서의 이민 문제를 또 다른 시각과 감성으로 조명한 작품이었다.

비극이 아니라 희망을 건져올린 작품도 있다. 핀란드의 거장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신작 ‘르 아브르’(Le Harbre)(15일 개봉)다. 프랑스의 항구도시 르 아브르에 살고 있는 노년의 가난한 구두닦이가 아프리카에서 불법이주한 소년을 숨겨주고 다른 나라로 탈출시켜주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가진 것이 없지만 오로지 연민과 선의만으로 소년을 돕는 주인공 막스뿐 아니라 주변 보통사람들의 따뜻한 ‘연대’가 눈물겨운 작품이다.

난민이나 불법이주 문제는 이제 한국영화에서도 낯설지 않다. 조선족이나 탈북자, 동남아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작품들이 최근 잇따르고 있다. 거액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부터 독립영화까지 다양한 장르와 규모를 아우르고 있다. 하정우 김윤석 주연의 ‘황해’는 중국 내 조선족 자치구인 옌볜(延邊ㆍ연변)의 두 조선족 남자를 주인공으로 했다. 재중동포 감독 장률의 ‘두만강’은 중국 측 두만강변 조선족 마을이 배경이다. 먹을 것을 찾아 수시로 강을 건너는 북한의 한 소년과 마을의 조선족 소년 간의 우정과 비극을 그렸다. 국제영화제에서 높은 주목을 받은 전규환 감독의 ‘댄스타운’과 박정범 감독의 ‘무산일기’는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수난기를 다뤘다. 이들 작품은 ‘변경의 삶’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경계의 영화들’이라고 할 수 있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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