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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라진 세상…병원가니 VIP대접
한·미FTA 발효…새로운 삶 즐기는 김철수씨의 하루
고압적 한국계 로펌 대신

미국변호사 서비스 실감


언감생심 최고급 캐딜락

가격내려 폼나는 애마로

와인도… 체리도…마음껏


가끔 농촌서 우울한 소식

치열해진 경쟁에 피로감도





새벽 5시. 휴대폰의 알람으로 흘러나오는 토니 베넷의 ‘Goodlife’ 음악에 김철수 씨가 눈을 뜬다. 후다닥 세수하고 옷을 차려 입는다. 양말이 먼저다. 매일 신는 거지만, 그때마다 철수 씨는 인생의 묘미를 느낀다.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될 당시 세계 경제영토의 60%를 차지하게 됐다는 식의 거창한 얘기들이 머리를 스쳐간다. 이득 보는 사람들은 가만 있지만 손해 보는 이들이 마구 저항하던 일들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한ㆍ미 FTA로 철수 씨의 인생은 확 바뀌었다.

비전 없는 직장생활에 신물을 내던 철수 씨가 퇴직금으로 차린 인터넷 양말가게가 FTA로 대박 났기 때문이다.

FTA로 13.5%에 달하던 관세가 없어져 미국으로부터의 주문이 쏟아졌다. 디자인을 전공한 아내의 안목 덕분에 알록달록 색감 있는 양말을 걸었더니, 그걸 용케 알고 주문이 들어왔다. 베트남이나 중국산에 가격으로는 아직 안 되지만 품질이 더 좋고 예쁘다는 생각에 미국인들에게 인기가 높다. 하는 김에 더 해보자고 잘나가는 한류 아이돌 얼굴, 그룹 이름을 양말에 박았더니 그게 대박이 났다.

김 씨는 6200cc짜리 SUV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를 탄다. 미국 돈 벌었으니 미국 차 사주자는 생각에서 골랐다. 관세 철폐로 몇 년 새 차값이 1000만원 넘게 떨어졌지만 그래도 1억원이 넘는 비싼 차다.

그대로 차를 서초동으로 몰았다. 새 수출계약 문제로 법무법인에 들러야 한다. 김 씨는 회사 법무를 폴앤피터슨이라는 미국계 법인에 맡긴다. 페트루치라는 녀석이다.

FTA 되고 나서 철수 씨가 제일 잘됐다고 느끼는 부분이 법률이나 회계 서비스다. 미국계 회사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처음엔 한국 법인들을 이용했지만, 고압적인 자세에 알아듣기 힘든 말만 늘어놓는 게 보기 싫었다. 미국계 회사 애들은 한국인들도 나긋나긋하다. 요샌 병원들도 서비스가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아내의 생각은 다르다. “명품이 생각만큼 싸지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명품회사들이 그렇게 어수룩하지는 않았다. 유럽 애들은 EU 회원국이 아닌 스위스에서 제품을 선적하거나, 홍콩 지사에서 수입한 제품을 팔았다. 아니면 관세 할인 폭을 넘게 가격을 올렸다. 일부 업체들이 솔직하게 싼 가격을 들이밀었지만, 오히려 값이 싸지면서 눈 높은 한국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갔다. 오늘은 열다섯 된 딸애 생일이다. 선물 사기가 어려워졌다. 예전에는 미국 출장 다녀오면서 뭘 사다주면 기뻐했는데, 이제는 한국에 다 있으니 눈에 차는 선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어렵게 미국산 청바지를 한 벌 사고, 마트로 갔다. 점원이 미국산 와인을 사라고 한다. 몇 년 전에만 해도 한 병에 6만8000원 하던 게 지금은 2만원 정도 싸졌다.

하지만 술을 못 마시는 철수 씨 눈엔 과일만 들어온다. FTA 되고 나서 두 번째로 좋은 게 ‘체리’다. 구하기도 힘들고 가격도 만만찮던 미국산 최고급 체리가 많이 싸졌다. 아예 요즘은 입에 달고 산다.

집에 오는 길에 광화문 네거리 전광판에 “내년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5%대에 육박하고, 무역규모가 세계 5위”라는 뉴스가 나왔다. FTA가 발효되고 나서 대한민국은 진정한 무역국가가 됐다. 정부가 이야기한 대로 교역량은 훨씬 더 늘었고 국민소득도 높아졌다.

하지만 뒷맛이 과히 좋지만은 않다. 나라 전체가 수출역군이 된 느낌이랄까.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수출회사들도 늘었지만, 치열해진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해서 문을 닫은 회사들도 많다.

한국이 더 유명해지고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도 훨씬 많아졌지만, 케이블TV에서 넘쳐나는 미국 드라마나, 거리에 쌓여 있는 외국 물건을 보면 가끔 “여기가 어딘가” 하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시골에서 변변찮은 쌀 농사 짓다가 수입쌀에 밀려 농사를 접은 형님 생각하면 더 그런 생각이 든다. 뉴스에 농민들 자살 소식이 들려오면 남 일 같지가 않다.

“하긴 이 나라에서 평생 흙만 파서 먹고살 수 있나. 결국 무역해야지. 가진 것 없는 조그만 나라에 태어난 죄지….”

철수 씨의 하루는 그렇게 간다.

홍승완 기자/sw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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