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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 담배 끊었어”…전국민에‘금연령’

  • ‘미친개’카다피·‘검은 히틀러’아민·‘괴짜’니야조프·‘파파독’뒤발리에…독재자의 엽기 만행 왜?
  • 기사입력 2011-11-0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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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 옆에는 40명의 정예 보디가드가 늘 따라다녔다. ‘아마존스’라고 불린 이 40명은 모두 미모의 여성이었고, 심지어 처녀였다. 카다피는 이들을 직접 선발했으며, 아마존스로 뽑히면 ‘순결 맹세’를 해야 했다. 미인 보디가드들은 항상 짙은 화장을 하고 하이힐 전투화를 신고 다녔다.

42년간 리비아를 철권통치하며 각종 기행으로 유명했던 카다피. 그가 죽자 한 시민군은 이렇게 말했다. “다 끝났다. 늙은 곱슬머리(카다피)는 죽었다.”

카다피의 삶은 끝났지만 그의 기행을 지칭한 악명은 역사에 기록됐다. ‘중동의 미친개’부터 ‘아프리카의 왕 중 왕(king of king)’까지.

그러나 카다피만이 우리를 황당하게 만든 유일한 ‘엽기 독재자’는 아니었다. 20세기 지구상에는 카다피보다 이해하지 못할 일로 넘쳤던 독재자들이 여럿 있었다.


▶‘20세기 최고의 괴짜 독재자’ 니야조프=이름조차 생소한 나라 투르크메니스탄에는 ‘괴짜’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전 대통령이 있었다. 그의 특이한 행동에 투르크메니스탄 국민은 1985년부터 21년간 만화에 나올 법한 나라에 살아야 했다.

지난 2005년 니야조프는 뜬금없이 사막에 펭귄 동물원을 건설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동물원 건설의 이유가 가관이었다. 지구 온난화로 갈 곳을 잃은 펭귄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

그의 괴짜 행동은 상상을 초월했다. 치아를 튼튼하게 한다며 국민에게 뼈를 씹게 했고, 지방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며 지방 도서관(수도와 대학 제외)을 폐쇄했다.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발레와 오페라, 립싱크도 금지했다.

자신이 담배를 끊은 이후 흡연을 금지시켰으며, 자신과 어머니 이름을 따서 각 달의 이름을 새로 붙이기도 했다. 이 밖에도 남성 단발령(턱수염 포함), 금니 금지 등 갖가지 기행 법령을 실시했다.

특히 니야조프는 교육 정책에 신경을 썼다. 해외 학위와 국가 발전은 양립할 수 없다며 외국에서 학위를 취득한 교사를 추방했다. 고등교육과정을 2년으로 단축시키고, 학교도 절반으로 줄였다. 이로 인해 교육계에는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자신의 말을 기록한 ‘영혼의 책(루흐마나)’을 가장 중요한 과목으로 지정해 학교에서 가르치게 했다.

또 수도인 아시가바트 외 전국의 병원을 모두 없앴다. 그는 “수도로 오기 힘들면 아예 아프지 말라”는 뼈아픈 개그까지 남겼다.

그야말로 니야조프는 ‘살아있는 신’이었다. 모든 건물에는 그의 사진을 걸어야 했다. 하지만 투르크메니스탄 국민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인구 60만명인 아시가바트에 경찰력만 10만명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니야조프는 2006년 12월 21일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 다시는 그의 엽기행동을 볼 수 없게 됐다.


▶‘아들 심장을 꺼내먹은 검은 히틀러’ 이디 아민=독재자들의 천국인 아프리카에는 20세기 들어 가장 악명 높았던 독재자가 있었다. 그는 ‘검은 히틀러’로 불린 이디 아민 전 우간다 대통령이다.

1971~79년 집권 8년 동안 그는 우간다 인구 1000만명 중 30만명을 살해하는 등 ‘열대의 정원’으로 불렸던 우간다를 지옥으로 만들었다.

쿠데타로 집권한 그는 반기를 드는 자를 처참하게 죽였다. 쇠망치로 서로 때려죽이게 하거나 시신을 악어 먹이로 주는 것을 즐겼다. 특히 아내를 토막 살인해 시신을 냉장고에 보관했고, 아들을 죽여 심장을 꺼내먹었다는 일화는 전 세계적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는 우간다 중앙은행 총재, 외무장관, 대법원장 등 주요 지식인을 직접 때려죽이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고등교육을 받지 못해 지식인에 열등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각종 엽기적인 행동에도 아민은 죽는 순간까지 호사스러운 생활을 누렸다. 79년 탄자니아를 침공했다가 오히려 자국 세력의 반격을 받고 리비아로 달아났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4년간 호화생활을 누리다 2003년 8월 26일 사망했다.

그의 악명은 자식이 이어가고 있다. 그의 아들 파이살 왕기타(29)는 2006년 런던의 캠던 인근에서 십대 소년 마히르 오스만을 살해한 혐의로 현재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우간다는 여전히 독재자가 통치하고 있다. 아민 전 대통령을 축출한 반군 지도자 요웨리 무세베니가 새 독재자가 된 것. 무세베니 대통령은 86년 이후 25년간 장기 집권하고 있다. 


▶“모든 검정 개를 죽여라” 뒤발리에=지진으로 25만명이 사망했던 나라, 진흙으로 만든 쿠키를 먹는 최빈국 ‘아이티’. 과거 아이티는 풍부한 자연자원을 자랑하는, 잘사는 나라였다. 하지만 29년간 ‘파파독(Papa Doc)’과 ‘베이비독(Baby Doc)’으로 불린 뒤발리에 부자(父子)가 독재정치를 펼치며 아이티는 지옥으로 변했다. 뒤발리에의 악명에 ‘독’이 붙은 것은 ‘파파독’ 프랑수아 뒤발리에의 전직이 의사(Doctor)였기 때문이었다.

57~71년에는 파파독이 아이티를 통치했다. 그는 비밀 경찰인 ‘통통 마쿠트(Tonton Macoute)’를 조직해 국민을 공포에 빠뜨렸다. 당시 최악의 독재정치로 아이티 시민 3만명이 살해당했다.

그는 기이한 행동을 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파파독은 자기 정적이 검은색을 상징색으로 삼았다는 말에 전국의 모든 검정 개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또 자신을 더욱 무섭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항상 선글라스를 끼고 강한 비음을 내며 얘기했다.

당시 파파독은 미국의 경제 원조를 가로채고 국가 세입을 사재로 이용했다. 이에 아이티에는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됐다.

71년 4월 파파독은 사망한다. 하지만 열아홉 살 아들인 ‘베이비독’ 장클로드 뒤발리에가 ‘세계 최연소 대통령’이 되며 파파독의 공포정치를 이어갔다. 그는 71년부터 15년간 독재자로 군림하며 야권을 탄압했다. 또 외국 투자자를 위해 살인적인 저임금(시간당 11센트) 정책을 고수했다.

민상식 인턴기자/m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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