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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다피 죽음으로 팬암기 사건도 미궁으로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죽음을 맞이함에 따라 팬암기 폭파 사건유가족들은 그의 죽음으로 ‘진실’을 밝힐 기회가 사라진 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팬암기 폭파 사건은 지난 1988년 승객과 승무원 270명을 태우고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을 지나던 미국 팬암 여객기가 폭발한 것으로 당시 미국인 189명 등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다.

팬암기 사건으로 딸을 잃은 미국인 짐 스와이어씨는 카다피가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법의 심판을 받길 바라는 이들 중 하나였다.

그는 “카다피는 팬암기 사건에 대한 쟁점을 정리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죽었으니 우리는 진실에 가까워질 기회를 잃었을 수도 있다”며 자신은 카다피가 팬암기 폭파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알았다면 승인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카다피가 ICC에 출석해 자국민에게 역겨운 행위를 자행한 혐의와, 부하를 동원해 살인을 저지른 혐의에 대해 대답하길 바랐다며 특히 그가 팬암기 사건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듣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됐던 리비아 정보요원 압델바셋 알-메그라히는 이후 체포돼 스코틀랜드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8년을 복역했지만 2009년 전립선암으로 3개월 시한부 진단을 받고 석방돼 리비아로 돌아간 뒤 현재까지 생존해있다.

미국은 팬암기 사건 2년 전인 1986년 독일 베를린의 미군 전용 디스코텍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하자 사건의 배후로 리비아를 지목하고 공습을 단행했다. 이 공습으로 카다피의 생후 15개월 된 수양딸 등 41명이 숨지자 카다피가 다시 보복 차원에서 팬암기 폭파를 지시한 것으로 추정됐었다.

그러나 누가 팬암기 사건을 배후에서 계획·승인했는지 밝혀지지 않은 채 사건이 잊혀져가면서 유족들의 허탈감은 계속 커져만 갔다.

팬암기 폭파사건 유가족들은 이날 홈페이지에 게재한 성명을 통해 리비아인의 자유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숨이라는 비싼 값을 치른 끝에 쟁취한 것이라고 평가하며 리비인의 용기와 결단에 찬사를 보낸다고 밝혔다.

그러나 팬암기 유가족들은 이날이 리비아인에게는 기쁜 날이지만 유가족들의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메그라히는 물론, 사건에 연루된 리비아 관리들이 아직 건재한 만큼 유가족들은 정의를 위해 계속 싸워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헤럴드생생뉴스/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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