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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번 국도가 풀어놓은 ‘느림’의 서정
진주~하동간 국도따라 가다보면…붉은 물감으로 채색한 진양호의 노을·코스모스가 지천인 하동 북천역…가을과 속삭이다
아픈역사 뒤로하고 평화로이 서 있는 진주성

지리산을 품은 넉넉한 진양호의 풍광

천년의 솔향기 가득 담은 봉명산 다솔사

오늘 난 세상을 잠시 여기에 내려놓는다





올레길 열풍이 불면서 여기저기 둘레길이 생기고 이름 없던 길들에 이름이 붙었다. 바야흐로 ‘길의 시대’다. 그런가 하면 이름 없는 길, 그냥 지나쳐갔던 길들도 있다. 2번, 58번, 1118번…. 그 길들은 여전히 이름 대신 단조로운 번호를 달고 서 있다. 바로 국도다. 고속도로만큼 빠르지도 않고 둘레길처럼 서정적이지도 않은 듯 보이지만, 이 길을 둘러싸고 보고 듣고 느낄 것들이 적지 않다.

길은 결과가 아니라 그 자체로 과정이다. 목적지만을 향해 눈 귀 닫고 내달리다 보면 노정을 즐길 수 없다. 인생과 닮았다. 2번 국도. 그중에서도 진주~하동 구간은 아기자기한 서정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서부경남권 유일한 인공호수인 진양호. 지리산 자락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이 일품이다. 뿐만 아니라 전망대에서 바라본 호수 위로 붉은 물감이 스민 듯한 절경을 만나게 된다

▶격전의 역사 뒤로하고 평화로이 선 진주성=진주와 하동을 잇는 가장 빠른 길이라면 단연 남해고속도로다. 느리게 가며 뭔가 담아가길 원한다면 2번 국도를 택하는 게 좋다. 남강을 향해 굽어 선 진주성의 정경과 진양호의 노을을 즐길 수 있다. 2번 국도는 전남 신안이 기점이다. 목포, 광양을 거쳐 경남 하동, 사천, 진주, 창원, 부산으로 이어진다. 대개 왕복 4차로 이상의 고속화도로. 그중에서 신안군 구간과 하동읍~사천시 곤명면 구간 등 일부는 왕복 2차로라서 더 아기자기하다.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서진주IC를 빠져나오면 10분 거리에 진주성이 있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진주 목사 김시민이 왜국을 격파한 진주대첩의 터다. 격전의 역사를 품은 여기는 지금은 되레 평화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성을 거닐고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기에 제격이다. 진주성 안에는 촉석루와 의암, 김시민장군 동상, 국립진주박물관이 있다. 촉석루는 영남 제일의 누각으로 꼽힌다. 고려 고종 28년(1241) 창건해 임란을 겪은 이곳은 한국전쟁 때 소실됐다가 1960년 복원됐다. 토요일 오후에 들른다면 오후 2시부터 한 시간 동안 열리는 상설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진주검무, 한량무, 진주교방굿거리춤이 흥에 겹다. 촉석루 아래로 내려가면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몸을 던진 의암을 볼 수 있다.

촉석루
하동공원에서 바라본 섬진강

▶붉은 물감 풀어놓은 듯 아스라한 진주성 노을=촉석루와 의암을 봤다면 국립진주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겨도 좋다. 건물 자체가 예술작품이다. 올림픽주경기장, 경동교회 등을 설계한 한국 현대건축의 거장 고(故) 김수근 선생의 작품이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지어진 건물은 진주성 전체와 잘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자태를 뽐낸다.

진주성 관광을 마치면 길을 타고 서부경남권의 유일한 인공호수인 진양호로 간다. 지리산 자락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이 일품. 맑은 날 해질 때 전망대에 오르면 호수 위로 붉은 물감이 스민 듯한 절경을 만나게 된다.

진주를 벗어나 사천시 곤명면에 들어선 후 58번 지방도로로 살짝 빠져 5㎞가량 가면 봉명산 다솔사에 닿는다. 신라 지증왕 때 창건된 다솔사는 자장율사, 의상대사, 도선국사가 수행 정진한 곳으로 유명하다. 근대문학사의 명소이기도 하다. 만해 한용운은 이곳에서 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했고, 김동리는 단편 ‘등신불’을 썼다. 적멸보궁 안에 든 와불상, 김동리 선생이 야학수업을 했다는 대양루, 부처의 사리를 모신 사리탑, 만해가 머문 응진전, ‘등신불’의 산실인 안심료 등을 천천히 둘러본다.

지리산을 끼고 하동으로 넘어오면 북천면 직전리다. 경전선 열차가 지나는 간이역인 북천역은 9월 말~10월 초면 코스모스가 지천으로 피어 장관을 이룬다. 이번 여행의 종착지인 하동읍에 닿으면 천연기념물 제455호 하동송림, 섬진강과 하동읍을 내려다보는 하동공원을 들르자. 하동송림은 조선 영조 때 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소나무 숲. 섬진강 백사장을 곁에 두고 산책을 즐기거나 자전거를 타도 좋고 솔숲에 누워 단잠을 청해도 그만이다. 강 건너편은 전라도 광양이다. 2번 국도는 그곳으로 이어진다. 

임희윤 기자/imi@heraldcorp.com
사진ㆍ도움말=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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