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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
최근 국립국어원의 발표에 따라 표준어의 지위에 오는 ‘짜장면’.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비표준어 신세로 설움을 받아야 했던 ‘짜장면’의 한풀이 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표준어를 둘러싼 ‘서울말-지역말’ 논쟁도 돌아봤다.

▶짜장면? 자장면?=짜장면은 중국의 ‘작장면(炸醬麵)’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유력하다. 중국어 발음으로 보면 ‘zhájiàngmiàn’으로, 국내 소개되면서부터 중국 발음과 비슷한 ‘자장면’으로 알려졌다. 이미 1965년 한글학회에서 발간한 새한글사전에도 ‘자장면’으로 표기돼 있다. 1986년에 와서야 외래어 표기법이 제정되면서 ‘자장면’으로 표기원칙을 정립됐다. 외래어 표기법 제2장 표기 일람표에는 중국 병음 ‘zh’는 ‘ㅈ’으로 발음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편, ‘zh’는 권설음으로 입안에서 혀를 만 상태에서 소리를 낸다. 따라서 일반 ‘ㅈ’ 발음에 비해 된소리가 나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 ‘자장면’이 됐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자장면’이라고 쓰고, ‘짜장면’으로 발음한다. 한국인들이 ‘자장면’을 ‘짜장면’으로 부르게 된 데는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어 그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다. 수천년 문화교류를 하는 과정에서 중국어에 관대해지면서 ‘자장면’보다 현지 발음과 비슷한 ‘짜장면’이 사람들에게 익숙해졌다는 주장이다. 반례로 ‘까스’, ‘써비스’ 등 영미권 언어도 표기상으로는 ‘가스’, ‘서비스’로 하고 발음은 된소리로 한다. 이는 ‘자장면’, ‘짜장면’과 별반 차이가 없지만, ‘까스’, ‘써비스’를 표준어로 해야한다는 인식은 약하다는 게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제시된다. 이번에 ‘짜장면’이 추가 표준어로 지정된 것이 시사하는 점은 분명하다. 언어의 특성인 사회성(언어는 사회적 약속), 역사성(생성, 변화, 소멸), 자의성(발음과 의미는 관습에 의해 결합)이라는 점에 주목할 때, 표준어 선정이 보다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왜 서울말만 표준어인가”=짜장면으로 촉발된 표준어 문제는 지방언어(방언)와 ‘서울말’인 표준어와의 관계를 두고도 논쟁이 뜨겁다. 표준어 규정 제1항은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같은 개념 정의에 반발하는 단체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일례로 지난 2006년 5월 지역말 연구모임인 ‘탯말두레’는 “지역 언어의 특성과 기능을 무시한 채 서울말만 사용토록 한 표준어 규정과 표준어로 교과서를 만들도록 한 국어기본법은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교육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전국의 학생들과 학부모가 청구인으로 참여했던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서울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문화를 선도하는 점, 사용 인구가 가장 많은 점, 지리적으로 중앙에 있는 점 등에 비춰볼 때 서울말을 표준어로 삼는 것이 기본권을 침해한다 하기 어렵고, 서울말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으므로 교양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을 기준으로 삼은 것은 합리적”이라고 합헌 결정을 내렸다. 한편 9명의 재판관 중 2명의 반대의견에서 “서울 지역 외의 지역 언어도 우리 모두의 문화유산으로 이들 지역 언어 모두를 표준어 범위에서 배제하는 것은 해당 지역민에게 문화적 박탈감을 주는 것”이라며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봤다. 소수의견이지만, 표준어에 대한 다른 목소리를 대변한 셈이다.

▶표준어 무용론 두고 학계도 설왕설래=학계에서도 표준어를 두고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최근 국립국어원이 주최한 국어 정책 토론회에 발표자로 나선 윤석민 전북대 국문과 교수는 “표준어 폐지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은 방언문제로, 표준어 선정이 불합리한 우열성의 원인이 되고 표준어 사용 권고가 자연스러운 언어의 발달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표준어와 방언의 관계를 오인한 데서 비롯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서울말’에 방점을 둬 서울말이 아니면 왜 표준어가 될 수 없느냐, 서울말만 우월하냐 이의를 제기하는데, 방언이 언제나 비표준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며 “어떤 방언이든 구성원이 널리 사용하면 표준어가 될 수 있다. ‘멍게’나 ‘빈대떡’도 원래 방언이었지만 지금은 표준어가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윤 교수는 “무분별한 외국어, 이해할 수 없는 외계어의 사용 그리고 개인어의 오남용에 따른 우리말 파괴현상은 구성원의 동질감을 해치고 사회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표준어 사용의 유용성을 언급했다.

반대 토론자로 나선 강희숙 조선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교수는 “전 국민의 원활한 의사소통 수단으로, 통일적이고 일관성 있는 교육 또는 대중적 정보 전달과 공통 문화 형성의 도구로 크게 기여해 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권력화된 나머지 비표준어에 해당하는 방언 사용자나 다양한 집단의 제한적 의사소통 방식을 억압하거나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며 “표준어는 좋은 말이고 올바른 말인 데 반해 방언은 나쁜 말, 잘못된 말이라고 보는 인식은 어떤 면에서 ‘서울 대 지방’이라는 특이한 이분법적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어떤 화자라도 표준어 구사는 서툴러도 방언으로 자신의 의사를 효과적으로 표현함으로써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훌륭하게 수행해낸다면 그것으로서 충분하다. 어떠한 규범이나 인식도 그러한 언어 사용을 부적절한 것으로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방언 역시 다양한 상황들 속에서 전개되는 일상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소통의 도구라고 본다면, 국어정책의 방향은 표준어 중심의 획일적 언어정책이 아니라 일종의 다언어 정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강 교수의 주장이다.

▶언어는 실생활의 반영=국어문화 운동본부의 남영신 회장은 “이번 표준어 추가 제정은 환영할 일”이라면서도 “귀납적인 언어 체계를 거스르며 연역적으로 언어사용을 강요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표준어ㆍ비표준어로 양분되는 한글체계를 경계했다. 남 회장은 “‘먹을거리’에 밀려 비표준어 신세에 있던 ‘먹거리’는 그동안 조어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표준어에서 배제돼 왔다”며 “조어법은 말이 만들어지고 귀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써 왔고 굳이 못 쓰게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간지럽히다’의 경우도 ‘간지럽다’를 어근으로 하고 사역형 접사 ‘히’가 붙은 형태로, 어법상 전혀 문제가 없다. ‘복사뼈’에서 ‘복사’는 복숭아의 준말로 ‘전설의 고향’에 흔히 등장하는 복사골도 복숭아가 많이 나는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한 것이다. 23년간 비표준어의 설움을 당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번에 새로 추가된 표준어 외에도 표준어에 포함되지 않은 어휘들이 표준어 대열에 끼기 위해 대기중이다. 현재 표준어로 돼 있는 ‘데우다’와 의미가 유사한 ‘덥히다’는 ‘덥다’에 피동형 접사 ‘히’를 붙인 것이다. 음식을 ‘데우는’ 것과 장작을 태워 방을 ‘덥히는’ 것은 의미상의 차이가 나는 만큼 별도의 의미를 갖는 표준어로 인정해도 손색이 없다. ‘(아이를)누이다’의 잘못된 표현으로 알고 있는 ‘눕히다’를 같이 쓴다해도 무방하다.

남 회장은 “‘짜장면’처럼 일반인들이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그래서 말의 세력이 세지면 충분히 표준어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좋은 말들이 비표준어로 전락하지 않도록 복수표준어를 넓게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학계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표준어 선정과정에 참여하고 의견을 제시할 때 표준어가 ‘서울말’이 아니라 진정한 ‘한국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짜장면이 표준어로 발표가 나던 날, 사람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짜장면 먹는 모습을 찍은 ‘인증샷’을 올리고 이를 반기는 것이 어떤 언어학적 의미가 있는지 곱씹어 볼만하다.

<이태형기자 @vmfhapxpdntm>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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