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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쌓여가는 ‘인골탑(人骨塔)’…대학생매학기(大學生賣學期)
전 세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학진학률 80%의 나라. 이 ‘이상한 나라’의 비정상적인 대학 체계를 논하기 앞서 당장 대학생들은 등록금 1000만원 시대를 살아야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학문탐구라는 대학 본연의 역할은 이미 뒷전이고 대학은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지 오래이다. 쉼호흡 크게 한번 하고 과감히 ‘간판’에 초연해 질 수 없는 것은 그래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 그 속에서 살아가야하는 숙명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한두 학기 휴학은 필수과정이고 최대로 가능한 6학기 휴학도 이제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복학을 하려해도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다시 휴학하고 학비에 생활비까지 마련해야 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돈 걱정 없이 대학 4년을 보낼 수 있는 것만해도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축복이다. 생활비를 절약하기 위해 또래 친구들과 한 방에서 같이 생활하고 파트타임 등 각종 아르바이트에 치이는 이들의 고군분투가 눈물겹다.



임준형(20ㆍ경희대 경제학과 2학년)씨는 지난 봄학기에 휴학을 했다. 다음 학기 등록금을 마련중인 임씨는 안 해 본 일이 없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3월부터 넉달동안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식당 홀서빙을 하고 식당일이 끝나면 바로 과외를 했다. 7월에는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주일가량 물류창고에서 일했는데, 시급이 5500원이라고 해서 과외까지 중단하고 시작한 일이지만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어 오래할 수 없었다. 비가 오지 않는 틈틈이 공사판 막노동을 하는 날도 있다. 이렇게 임씨가 벌어들인 한달 수입은 90여만원. 학관에서 주로 해결하는 식사와 교통비, 통신료를 제하면 한달 35만원이 남는다. 그러나 등록금 330만원을 내려면 3월부터 매달 적어도 65만원을 모아야했는데 35만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당장 다음 학기 신청한 장학금을 못 받으면 또 휴학해야할 형편이다. 임씨는 “2년전 아버지가 실직을 하시면서 가족들이 퇴직금으로 생활해야했다.”며 “당장 군대를 갈까 생각도 했지만, 빠른 92년생이라 영장이 안 나와 내년에야 입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이상수(21)씨를 포함한 4명의 친구들이 PC방에 모였다. 이들이 지난달 입대한 정모(21)군의 주민등록등본과 통장 사본, 성적표, 가족관계도 등 서류 뭉치를 들고 PC 앞에 앉은 이유는 학자금을 대출받아 등록금을 대신 납부해달라는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정군이 받기로 돼 있는 장학금은 다음 학기 등록을 하지 않을 경우 자동으로 다른 학생에게 넘어가게 된다. 신병훈련기간과 등록금 납부시기가 겹치자 정군은 친구들에게 이 일을 부탁하고 입대했다.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모두 스스로 벌어쓰는 정군에게 몇십만원은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다. 정군이 미리 알려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인터넷 학자금 대출 사이트에 접속해 대출신청을 했다. 돈이 계좌로 입금된 것을 확인하고 등록금을 납부하기 위한 양식의 빈칸을 메워갔다. 납부를 최종 확인한 이들은 친구에게 도움이 됐다는 뿌듯함에 더해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등록금 대출과 납부 내역을 정군의 어머니에게 보여드리자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셨다. 이씨는 “등록금과 생활비로 힘든 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라며 “서로 사정을 이해하니까 최대한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평소 친구들의 눈에 비친 정군은 그야말로 ‘악바리’다. 수능시험이 끝나자마나 텔레마케팅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대학 등록금을 모았다. 부족한 금액은 학자금 대출을 받고 편의점, 막노동 할 것 없이 일을 해 등록금을 마련하고 생활비를 벌어 썼다. 이씨는 “동네에서 가볍게 맥주 한 잔 할 때도 정군은 잘 오지 않았다”며 “일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무척 힘들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충북 옥천에서 서울로 ‘유학’ 온 김민철(가명ㆍ28ㆍ한양대 물리학과 3학년)씨는 서울 생활을 고시원에서 시작했다. 시각장애 1급인 아버지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고향에서 폐지를 주우며 어렵게 생활하고, 동생도 청주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어 사실상 ‘가장’ 노릇을 하고 있다. 편의점ㆍ마트 파트타임머 등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일반 아르바이트로는 학비 조달이 어려워 방학중에는 과외에만 전념하고 있다. 지난달 김씨의 한달 수입은 87만원. 교통비, 학원비, 식비에 대체복무로 산업체에서 1일 2교대로 근무하면서 생긴 위장병으로 약값도 매달 정기적으로 나가고 있다. 김씨는 “체격이나 훈련량이 다른 육상선수를 같은 출발선에 세우고 똑같이 출발시키고 경쟁하는 것 같다”며 “힘을 내려해도 가끔 막막하기만 해 우울증이 아닌가 스스로 의심하기도 한다. 특히 수업시간표를 짤 때 과외, 알바 시간에 맞춰야하는 할 때 가장 서글퍼진다”고 말했다. 학기를 이어 다닌 기억이 없는 김씨는 졸업을 앞두고 당장 휴학을 하기보다는 힘들더라도 빨리 졸업해 사회에 나가고 싶어한다. 그래서 지난 학기 한국장학재단에서 100만원의 대출을 받고, 교보생명에서도 학자금 대출을 받아 등록금을 조달했다. “방학 동안에는 하숙집에서 세끼 식사를 해결하고 있지만, 개강하면 아침만 먹을 것 같다”는 김씨는 한국농촌공사에서 일하고 싶어한다. 어려서부터 농촌에서 자랐고, 흙은 사람을 속이지 않고 노력하는 만큼 그 결실을 돌려주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이다.



<이태형ㆍ박수진ㆍ이자영ㆍ박병국 기자 @vmfhapxpdntm>

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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