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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주크박스’를 탐하다
최근 공연계 대세는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검증된 히트곡을 극의 재료로 삼아, 뮤지컬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음악이 주는 매력을 한껏 발휘한다. 뮤지컬 ‘맘마미아’가 아바(ABBA)의 음악이 없었다면 이 정도로 성공할 수 있었을까. 주크박스 뮤지컬은 바닥부터 새로 만들기보다, 검증된 음악을 토대로 창작 콘텐츠를 만들 수 있어 제작사들이 눈독 들이는 장르다. 특히 ‘대형 창작 뮤지컬의 제작’이라는 화두를 안고 있는 국내 뮤지컬계에 주크박스 뮤지컬이 빛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쏟아지는 주크박스 뮤지컬 중 눈에 띄는 3편을 골라봤다.



▶늑대의 유혹 영화 ‘늑대…’만화버전샤이니·소시 춤과 안무 관객들 흥이 절로



▶‘늑대의 유혹’ 음악 ★★★ 재미 ★★★ 드라마 ★ 감동 ☆=시시껄렁한 농담이 주는 잔재미에 콧방귀 뀌지 않을 열린 마음의 관객에게 추천한다. 작품은 영화 ‘늑대의 유혹’의 만화 버전으로 볼 수 있다. 두 꽃미남과 한 여고생이 펼치는 삼각 관계를 그린 이 작품은 만화에서 등장할 법한 과장된 표현이 전체를 장악한다. 극중 고교생들이 핑퐁게임 하듯 주고받는 대화 속에 ‘헐’ ‘간지’ ‘쩐다’등 10대들의 일상 용어가 출몰(?)한다. “꺄~” “어머어머~”등 10대 소녀들의 함성이나 의성어가 극을 가득 메운다. ‘개나리’와 ‘십장생’ 같은 희화화된 욕설 등 말초적 재미가 곳곳에 포진해 있다.



두 명의 훈남과 한 소녀의 삼각관계를 그린 진지한 오리지널 버전과 몸 사리지 않고 망가지는 패러디 버전이 교차 반복되면서 진지함과 가벼운 유머 사이를 균형감 있게 오간다. 코미디와 로맨스가 적절한 비중으로 탄탄하게 엮여 있다.



K-POP도 영민하게 버무렸다. 이 장르의 가장 어려운 점인, 노래 가사와 스토리를 적절히 매치시키는 센스가 돋보인다. 극중 반해원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대목에선 DJ DOC의 ‘쟤 그런 사람이야’(나 이런 사람이야), 정태성의 귀여운 대시는 샤이니의 ‘누난 너무 예뻐’와 연결한 기발함이 돋보인다. 카라의 ‘미스터’, 소녀시대의 ‘런 데블 런’ 등이 군무로 펼쳐지면 흥이 절로 난다.



꽃미남 군단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영화에서 강동원이 맡았던 정태성은 슈퍼주니어 려욱, 장현덕, 성두섭이 번갈아 무대에 오르며, 조한선이 연기한 반해원은 김산호, 김형민, 제국의 아이들 박형식이 맡았다. 평균 180cm는 될 정도로 장신의 꽃미남들이 앙상블로 등장해 추가 볼거리를 제공한다. 단, 탄탄한 스토리 텔링을 기대한다면, 혹은 작품을 통해 의미를 찾고자 하는 관객들이 본다면 대략 낭패다. 만화적 과장된 표현을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관객도 이 작품과는 안 맞는다.







▶스트릿 라이프 DJ DOC 노래 들으며 사춘기 보낸 2030 뮤지컬

한편의 콘서트 느낌



▶‘스트릿 라이프’ 음악 ★★ 재미 ★★ 드라마 ★★ 감동 ★=‘늑대의 유혹’이 10, 20대를 위한 발랄한 연애극이라면, ‘스트릿 라이프’는 그 윗세대를 겨냥한다. 작품은 DJ DOC의 노래를 듣고 사춘기 시절 답답함을 쏟아내곤 했던 20, 30대를 위한 뮤지컬이다.



극은 DJ DOC의 음악은 물론 이미지도 차용했다. DJ DOC 특유의 반항정신이 녹아난 젊은 극으로, 학교가 아닌 클럽이 배경이다. 음악 때문에 제대로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었던 세 젊은이의 음악을 향한 열정이 주인공이다. ‘팝 뮤지컬’을 내세워 뮤지컬의 전형적인 문법을 깼다. 음악도, 안무도, 대사도 보다 자유분방하고 가볍다. 뮤지컬의 기본 요소인 드라마도 있고 음악도 파워풀한데, 느낌은 콘서트를 보는 듯하다. 배우들은 노래와 춤에 집중했다. 가수가 아닌 배우지만, 담백하고 힘 있는 짧은 호흡의 랩을 익혔다.



또 하나의 강점은 무대 위의 에너지. 웬만한 아이돌 그룹 저리 가라 할 폭발적인 랩과 댄스가 무대를 장악한다. 보통 15명씩 등장하는 군무는 음악 프로에서 아이돌 댄스그룹의 그것과 유사하다. 비보이들의 현란한 퍼포먼스도 연상된다.



하지만 ‘늑대의 유혹’과 마찬가지로 감동이나 메시지를 기대하면 만족할 수 없는 공연이라는 점을 명심할 것. 이야기도 흔하디흔한 삼각관계와 통속적 연애담을 소재로 했다. 가끔 손발이 오글거리는 것 같은 진부한 대사들도 극의 흐름을 깬다.







▶어디만큼 왔니 양희은의 어린시절로 떠나는 추억의 여행 중년위한 따스한 위무



▶‘어디만큼 왔니’ 음악 ★★★★ 재미 ★ 드라마 ★★ 감동 ★★=양희은표 주크박스 뮤지컬은 중년에게 바치는 따스한 위무다. 세련된 작품은 아니지만, 스토리 텔링과 구성의 허점을 가려버릴 진심과 감동이 있다. 공연이 시작되면 가수 양희은의 어린 시절로 관객들은 추억여행을 떠난다. 자매 양희은과 양희경은 미루나무 아래 나란히 앉아, 아빠에 대한 따스했던 기억들을 풀어낸다.



한없이 따스한 파스텔톤으로 채색되던 과거는 아버지의 바람, 이혼. 그리고 39세의 죽음이라는 갑작스러운 비극으로 반전된다. 양희은은 “내 나이 39세가 돼서야 아버지의 악행(?)을 받아들이고 그와 화해할 수 있었다”고 가슴 짠한 고백을 털어놨다.



중년 관객들로 가득 찬 객석은 하나 둘 추억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50대 기성세대들의 어린 시절 풍경이 하나 둘 무대에서 펼쳐지니 객석은 안개 낀 듯 아련한 향수에 잠긴다. 세일러 교복, 재래시장, 구두방, 버스차장 언니, 만원버스 등 당시의 풍경이 맛깔난 웃음으로 재현된다.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 신에선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아! 맞다. 그때 저랬지. 여기저기서 공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1971년. 김민기와 첫 만남. 당시 들었던 ‘아침이슬’을 양희은이 직접 부르는 장면은 가슴이 짠하다.



극은 전반적으로 콘서트에 가까운 뮤지컬이다. 올해로 가수생활 40년을 맞은 양희은의 음악이 주인공이다. 아침이슬, 어디만큼 왔니, 한계령, 행복의 나라로 등 27곡이 풍성하게 울려펴진다.



노래 인생 40년. 생의 3분의 2를 음악과 함께해온 양희은은 마치 관객에게 이야기하듯 “우리는 이렇게 늙었는데 나무는 멋있어졌네”라고 말한다. 평범한 이 대사에 머리 히끗한 중년들은 왜 그토록 훌쩍거렸을까. 삶의 질곡을 눈치 채지 못한 청춘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일이다.



조민선 기자/ bonjo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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