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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세황, “다음 목표는 이 무지치와의 뉴트롤스 ‘아다지오’ 협연”
기타리스트 김세황(40)의 20대는 웬만한 가수보다 화려했다. 신해철이 규합한 록밴드 넥스트의 멤버로 우주적인 제복을 입고 큰 무대에 올라 소녀 팬들의 함성을 가르고 초절기교와 속주를 뿜어냈다. 최고의 테크닉에 뜨거운 퍼포먼스를 겸비한 그는 오랫동안 많은 국내 전자기타리스트들의 로망이었다. 올해 불혹이 된 그가 지난 10일, 오랜만에 대중 앞에 나타났다. MBC TV ‘나는 가수다’의 옥주현 무대에 서 폭발적인 기타 솔로를 선보인 것.

김세황은 최근 세계 최초로 비발디의 ‘사계’ 전 악장을 전자기타로 재해석해 현악과 함께한 앨범을 내놨다. 특유의 폭발적이고 공격적인 전자기타 연주로 주 선율을 연주하고 서울시향 수석단원들로 구성된 12인조 현악과 쳄발로가 이를 받친다. 크로스오버가 아닌 클래식 형태의 협주를 지향한 독특한 콘셉트다. 연주는 여전히 화려하고 폭발적이다. 속주에 다양한 테크닉이 가세하면서 기타 지판을 녹일 정도로 뜨거운 연주를 펼친다. 그는 새로운 꿈으로서 전자기타를 든 클래식 솔리스트로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꿈을 이뤄가겠다고 했다.


비 오는 날 만난 김세황은 수사법을 섞은 달변으로 한여름 폭우 같은 알싸함을 대기 중에 내뿜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MBC TV ‘나는 가수다’의 옥주현 무대(‘유고걸’ㆍ10일 방영분)에서 폭발적인 기타 연주를 들려줬다. 어떻게 함께 하게 됐나.

▶옥주현씨와 인연이 깊은 관계자 분이 나와 친했는데 권유해왔는데 패밀리 마인드에서 흔쾌히 응낙했다. 두 번째이자 더 중요한 계기가 있다. 옥주현씨가 전화 걸어 “오빠!” 하더라. 친분도 없는데 다짜고짜. 나도 남자다. 그 순간 스케줄이고 뭐고 모든 걸 잊었다.

-옥주현과의 무대, 어땠나?

▶판타스틱했다. 전국의 모든 기타리스트가 날 부러워할 거다. 옥주현과 백댄서들, 여자 6명이 내 다리를 만져준다. 솔직히 기분 좋았다. ‘동네 여자애들한테 잘 보이려고’가 기타리스트들의 음악 입문 계기이자 원초적 로망이자 꿈이다.(웃음)

-아이유와 김연아가 함께 부른 ‘얼음꽃’(SBS TV ‘김연아의 키스앤크라이’ 로고송)에도 기타 연주자로 참여했다.

▶아이유, 김연아 반경 10㎞ 내에도 못 가봤다. 삼촌으로서 로망 있지만.(웃음) 10분만에 녹음을 끝냈다.


-지난 달 삼성동 올림푸스홀에서 ‘사계’ 연주로 정평이 난 이탈리아의 세계적 실내악단 이 무지치와 ‘사계’ 일부를 협연해 기립 박수 받았다며. 앙코르는 뉴트롤스의 ‘아다지오’를 했다고.

▶협주 전날 밤, 이 무지치 악장 안토이오 안셀미에게 넌지시 ‘아다지오’ 얘길 꺼냈다. 작전였지. ‘혹시 그 노래 아니?’ 원곡자인 부카로프가 이 무지치를 위해 현악으로 편곡해준 걸 다 알고 있었거든. 낚이더라. 앙코르 때 협연하면 좋겠다며.

뉴스가 있다. 2012년에 이 무지치와 김세황의 ‘아다지오’ 협연 음반이 나온다. 계획대로 잘 된다면. ‘알레그로’부터 ‘카덴차’까지 3악장으로 구성할 거다. 내년에 그들이 다시 방한할 때 초연하는 걸 목표로 2일~3일에 한 번씩 이메일로 논의하고 있다. 전세계 발매가 목표다. 도이체그라모폰과 CJ E&M에서 함께 나왔으면 좋겠다. 이탈리아인들은 한국 사람들과 비슷해 잘 통해 좋다.

뉴스 또 있다. 이태리의 ‘남자 김연아’쯤 되는 아이스스케이팅 국가대표 스테파노 카루소가 최근 내 페이스북에 직접 글을 남겨 왔다. 넥스트 시절 연주한 ‘러브스토리’(동명 영화 주제곡의 기타 연주 버전)를 우연히 유튜브에서 듣고 반했다고. 대회 출전용 곡으로 쓰고 싶다고. 스케이팅에 맞게 재편곡 작업해서 보내줬다. 오는 가을 세계선수권대회 때부터 쓰일 것 같다.

-이번 앨범에서 드럼, 베이스 같은 밴드 편성을 완전히 배제했더라. 의외다.

▶밴드 편성을 넣을 생각은 요만큼도 없었다. 김세황이, 전자기타 협주곡을, ‘클래식 뮤지션으로서’ 하는 게 목표였다. 어려서부터 꿈이었다. 올해 40이 됐다. 꿈은 해야 이뤄질 것 같더라. 행동에 옮긴 거다. 그 동안 나는 꿈을 이뤄온 행운아다. 24살 때 넥스트 들어가서 (신)해철이형이랑 앨범(‘Return of the N.ex.T Part.2 - the World’)도 했고. 27살에 우상이었던 스티브 바이와 협연했다. 이때 전자기타 연주자로서의 꿈은 완전히 이뤘다. 나도 가장 좋아하는 ‘사계’를 다름 아닌 이 무지치와 연주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난 너무 행복한 음악가인 것 같다.


-‘사계’를 선택한 이유는?

▶어려서부터 우리 모두 듣는 음악,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잖나. 나도 마찬가지다. 엄마한테 네 살 때 클래식 기타, 일곱 살 때 피아노를 배웠다. 초2 때는 바이올린을 들었다. 그리곤 4학년 때였다. 전자기타 연주에 여자애들이 멋지다며 껌뻑 죽는 걸 봤다. ‘여자애들한테 인기 끌려면 전자기타를 쳐야하는구나’ 그게 시작이었다. 내 인생에 그려진 클래식과 전자기타라는 두 개의 곡선이 지금 만난 것 같다. 지난해 SBS TV ‘스타킹’에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과 함께 출연한 것이 휘발유를 끼얹었다. 친해진 유진박이 자신의 연주회에 초청했는데 곡목 중에 ‘사계’ 중 ‘겨울’이 들어있더라. ‘저거 내가 해보고 싶었는데!’ 하며 무릎을 쳤다. 한 달 뒤 이화여대 음대 장혜원 학장님을 알게 됐다. 인사 드리면서 ‘사계’ 협주 꿈을 밝혔더니 바로 바로크 합주단을 소개시켜주더라. 10월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첫 협주를 했다. 클래식계의 내로라하는 분들이 많이 보러오셨는데 기립 박수가 나오고 반응이 너무 좋았다. 섭외가 이어졌다. 북서울 꿈의 숲, 예술의 전당 등을 돌며 매달 연주회를 펼쳤다. 이건 크로스오버가 아니다. 클래식이다. 크로스오버는 넥스트의 ‘라젠카’ 앨범 때 런던심포니와 홀스트의 ‘행성’을 협연한 데서 이미 끝을 봤다. 밴드도, 오케스트라도 풀 세팅으로 제대로 함께 연주하는 것 말이다. 당시 대영기획에서 기둥 흔들릴 정도로 지원해줘 가능했다. 해철 형도 사명감 갖고 ‘까짓거, 런던심포니 때려!’했는데 되게 멋있어 보였다. 당시 그는 음악을 위해 모든 걸 갬블(도박)했던 거다. 로열필하모니오케스트라가 100주년 맞아 월드투어 돌 때도 극동아시아 대표 아티스트로 발탁돼 협연하고. 로열앨버트홀에서도 연주해봤다. 이게 27세 때 일이다. 이미 해본 걸 뭐하러 또 하나. 다음에 남은 단계는 클래식 솔리스트가 되는 거였다. 일단 이 무지치는 (나를) 완전 인정해줬다.

-2008년에 결혼했다. 결혼 후 달라진 게 있나.

▶있다. 최근 육아 잡지 표지 촬영을 하고 왔다. 네 살 난 딸 서율이랑 함께. 넥스트 때 ‘the World’ 음반 내고 주니어 등 잡지 표지 촬영해보고 이번이 처음이다. 그쪽에서 먼저 섭외가 왔다. 성공한 기타 치는 아빠를 보여주고 싶어 흔쾌히 응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가.

▶연주자들은 저작권자들에 비해 기복이 엄청나다. 지금은 되게 좋다, 솔직히. 나이 드니 대기업 후원도 들어오고.


-너무 기교를 앞세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기교 있는 연주를 들려주고 그걸 좋아하게 만드는 것, 그게 제 역할인 것 같다. 스티브 바이, 에릭 존슨 같은 이들을 만날 수입해다 들을 건가. 나도 연습하면 다른 식의 연주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중이 사랑할 수 있을만하다는 전제 하에 극단적인 면을 보여주는 연주자도 필요하지 않을까.

-평소에 어떤 음악을 즐겨듣나.

▶차에서는 늘 클래식만 듣는다. 자극적인 전자기타 소리에 늘 노출돼 있다보니 쉴 때는 자극이 덜한 자연음이 좋다. 빅뱅 같은 친구들 음악도 좋더라. 비발디가 가장 좋고 클래식 전체를 통틀어 ‘사계’가 가장 좋다. 지금쯤 다른 기타리스트들 땅 치고 후회할 거다. 기타 연주가 정점에 달한 70~80년대에도 (‘사계’ 기타 협주를) 아무도 안해놨더라. 서기 2011년이나 됐는데도 제가 선수 칠 수 있다는 데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린다.(웃음) 그렇다고 해서 클래식에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진 않았다. 전집을 즐기는 수준이다. 참, 4월에는 예술의전당에서 베토벤 9번 교향곡을 협주했는데 연주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기타를 잘 친다는 건 어떤 거라고 보나?

▶들어서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사람마다 취향 차이가 있는 거다. 내 취향은 이거다. 연주나 무대에 멋이 없는 게 싫다. 쉽게 얘기하면 여자들이 ‘꺅!’ 할 수 있는 걸 좋아한다. 어릴 때 동양 사람이 우리 가족을 빼고 한 명도 없는 동네에 살았다. 여자애들이 나한테 관심을 보일 이유가 없었다. 그들 사이에 끼려고 발악했다. 버지니아주 미식축구 대표를 했고, 2년 연속 사회봉사 최우수상을 받았으며 학교에서 기타를 제일 잘 쳤다. 밥 먹고 기타만 쳤으니까. 요즘은 좀 시대가 달라졌더라. 기타 연습 왕창 해놨더니 빅뱅 나와서 춤추고 있다. 세상이 이렇게 춤추고 랩하는 분위기로 바뀔지 몰랐다. 아놔.(웃음)

-‘나는 가수다’에 대해서는?

▶너무 좋다. 저도 레인보우 카라 핑클 광팬이지만(웃음) 제아무리 고급 스테이크라도 삼시 세 끼 그것만 먹으면 질린다. 아이돌은 굉장히 단 초콜릿 케이크 정도라 생각한다. 우리 국민이 그것만 십 몇 년간 먹고 있은 거다. 매운맛, 순한맛 다 먹고 싶었던 건데. 그걸 ‘나가수’가 해준다. 대중이 편곡에 대해 토론하고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이다. 노래 다음엔 뭐겠느냐, 악기 중에서. 하지만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관객들의 지나치게 감동받은 리액션을 볼 때 특히 그렇다.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서 감동의 대상만 썰물처럼 바뀌어 갈 수도 있겠다. 그 담엔, 다시 아이돌한테 30년을 뺏기려고?


-기타 연습은 얼마나 하나?

▶‘사계’ 앨범 내기로 작심한 이후로 고3도 이런 고3이 없었다. 제자들보다도 2만 배는 열심히 한 것 같다. 가족들이 날 보면 반가워했다. 내가 연습 들어간 동안 딸이 우울증에 걸렸다. 아빠 보고싶어서. 강남역 쪽에 작업실이 있다. 거길 ‘연구소’라고 부른다.(웃음)

-이번 앨범에도 다양한 주법과 기교를 사용했던데. 새로운 도전이나 실험도 있었나.

▶현을 활로 문질러 소리를 끝없이 이어갈 수 있는 바이올린과 줄을 한 번 때리면 음이 금세 끊기는 기타 사이에는 ‘넘사벽’이 있다. 인간의 한계를 넘는 피킹(줄을 내리쳐 소리내는 것) 강도가 필요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안되는 부분은 이보우(e-bowㆍ전자기 원리로 바이올린의 보잉 같은 느낌을 내게 해주는 기타 부속 제품)를 썼다. 기타와 바이올린의 타고난 성질 사이에서 가장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여름 3악장에선 확실했다. 디스토션(기타 음을 찌그러뜨려 격한 느낌을 내는 이펙트 장치) 걸고 ‘징징징징’ 하는 순간 끝난다. 여기선 록 주법이 더 멋지다고 확신했다. 유명한 겨울 1악장에서도 주멜로디를 마냥 따라가지 않고 록의 거친 느낌을 최대한 살렸다. 40대지만, 교수지만 오빠이고 싶다. 난 이걸 추구한다.(웃음)

-녹음은 어떤 식으로 한 건가.

▶현악과 전자기타를 따로 녹음해 합쳤다. 일단 서울 삼성동 올림푸스홀에 서울시립교향악단 수석연주자들이 모였다. 객석 한가운데서 듣고 있는 듯한 소리를 재현하기 위해 무대 위에서 연주해 녹음했다. 국내 어쿠스틱 레코딩의 일인자인 박권일씨가 맡아줬다. 기타 녹음은 홍익대 앞 스튜디오에서 했다. 성질이 서로 다른 현악과 기타가 각각에 어울리는 최고의 환경에서 녹음되도록 했다. 고전과 현대의 장점만 모아 합치자는 기획이었다.

-기타는 몇 대나 갖고 있나.

▶200대 넘지. 후배의 빈 집에 모여 산다. 기타랑 앰프들만 모여 사는 집이 실제로 따로 있는 거다.

-어떤 뮤지션으로 기억되고 싶나

▶꿈을 꿨으며 그 꿈을 꿈으로 내버려두지 않고 그걸 향해 달려 꿈을 이뤄낸 뮤지션.

-앞으로의 계획과 꿈은?

▶클래식 음악계의 솔리스트가 꿈이다. 밴드 음악도 병행은 할 거다. 넥스트? 넥스트는 생활이다. 나는 넥스트다. 넥스트가 내 고향이다.

<임희윤 기자 @limisglue> imi@heraldcorp.comㆍ사진 제공=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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