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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별을 했다면 빨래방에 가 봐

  • 하얀 거품이 옷 속 상처와 슬픔을...
  • 기사입력 2011-06-17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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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이별을 동반한다. 짧은 이별이건 긴 이별이건 말이다. 이별은 예고를 하지 않는다. 갑자기 냉동기능을 상실한 냉장고처럼, 화면이 사라지고 소리만 남는 TV처럼, 돌발적으로 발생한다. 어쩜 그건 상대에 대한 최선의 배려일지 모른다. 이별을 예감하고 받아들이는 일처럼 견디기 힘든 건 없으니까 말이다. 시선을 사로잡는 표지의 소설 <옷의 시간들>은 누군가와 이별하고 남겨진 사람들이 상처를 견디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세탁기가 고장났다’, 란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세탁기가 고장 난 건 큰 일이 아니다. 그 세탁기가 그의 것이라는 게 중요할 뿐이다. ‘잠 잘 자고, 행복해라’ 짧은 인사를 남긴 채 떠났다. 나의 불면증 때문에 그가 떠났다. 불면증을 없애주려 노력했던 그가 결국엔 불면증에 지쳐 나를 떠난 것이다.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는 주인공 ‘오주’ 곁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엄마가 죽고 언니는 유부남과 미국으로 사랑의 도피, 아빠는 젊은 여자와 제주도로 떠났다. 그가 떠났고, 오주는 고장난 세탁기와 함께 남겨진 것이다.


세탁기를 사는 일보다 젖은 빨래를 해결하는 게 급하다. 삶이란 그렇다. 연인이 떠났어도 밥을 먹고 청소를 해야 하고 빨래를 해야 한다. 처음 가 본 빨래방은 낯설다. 이용 방법도 모른다. 다행인 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같은 목적을 가졌다는 것이다. 빨래방 터주대감 ‘미치’을 시작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한 남자를 만난다. 항상 9번 세탁기를 사용하고 건조기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미치와 오주는 남자를 두고 내기를 건다. 말을 걸고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9번에 집착하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오주도 점점 그가 궁금하다.


우연하게 나눈 대화를 시작으로 남자에 대해 알아간다. 빨래가 마르는 시간만이라도 함께 있고 싶은 사람과 이별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점점 오주도 빨래가 마르는 동안이라도 그와 있기를 바란다.


이별의 상처와 불면증의 시간을 견디기 위해 찾았던 빨래방은 이제 오주에게 편안한 공간이다. 언제나 유쾌한 만화가 미치, 전직 교수였던 콧수염 아저씨, 노숙자 구도 아저씨와 나누는 시간이 오주를 위로한다. 그들 역시 누군가와 짧든 길든 이별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며 살아가는 사람인 것이다.


소설 속 평범한 인물을 통해 우리는 일상을 떠올린다. 주변의 이웃과 단골 가게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군상들을 통해 우리와 닮은 모습을 본다. 해서 친근한 소설이다. 그들 중 뭐든 찍고 기록하는 옆집 여자, ‘미정’이 그렇다. 사람들의 기호나 취미, 생활 습관 등을 수집하는 그녀도 남자 친구의 죽음을 통한 상처를 치유하고 있던 것이다. 원룸이라는 공간도 이웃과의 사귐으로 충분히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공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가족과 연인, 직장 동료 외에 타인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던 오주에게 빨래방은 사람과의 관계를 확장시킨 공간이다. 그들과도 언젠가는 이별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이들과 또 만날 것이다. 작아져서, 낡아서, 더러워서 우리를 떠나는 옷처럼 말이다.


“사람과 사람이 맺어 가는 관계라는 건 우리가 입고 있는 이 옷과 같다네. 옷은 결국 우리 곁을 떠나게 돼 있지. 작아지고 커져서, 혹은 낡아지고 닳아져서 떠나게 돼. 취향과 유행에 맞지 않아서도 떠나게 되고 말이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입을 수 있는 옷이란 없다네. 관계라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야.” p.123


한 번도 빨래방에 가 본 적이 없다. 일렬로 늘어선 세탁기 속에서 서로 엉켜 돌아가는 빨래들을 상상한다. 빨래를 할 때, 세탁기를 돌릴 때 가만히 들여다보게 될 것 같다. 옷에 남겨진 상처와 슬픔을 걷어가는 하얀 거품들이 고맙게 느껴질지 모른다.

 

[북데일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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