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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경을 승리로 바꾼 ‘최경주 승리의 경영학’
목표지점을 향해 경쾌하게 구르던 공이 이내 홀컵으로 빨려들어갔다. 기나 긴 연장전 승부에 마침표를 찍은 순간. 까맣게 그을린 그의 오른팔이 하늘을 갈랐다.지나온 역경의 순간들을 추억하는 듯 눈가에는 촉촉한 물방울이 맺혔다.

3년여의 극심한 슬럼프를 딛고 미국 프로골프투어(PGA) 제5의 메이저대회로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을 품에 안은 최경주(41ㆍSK텔레콤). 그의 재기 스토리가 불투명한 경영환경에 직면한 기업들과, 앞모를 미래 앞에서 인생 2모작을 준비해야 하는 이들에게 잔잔잔 감동을 주며 새삼 화제를 모으고 있다.

가장 어려울 때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준 SK텔레콤이 최근 열린 SK텔레콤 오픈 출전 기간 동안 최경주와 동행하며 직접 재기의 비결을 들어 보았다. 이 자료는 동영상으로 만들어져 그룹 전직원들에게 배포됐다. 그런데 그가 승리의 방정식으로 꼽은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쏟은 열정, 정상의 자리를 박차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가시밭길을 선택한 도전과 혁신, 함께 하는 이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 등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바야흐로 최경주의 삶이 경영학의 벤치마킹 모델로 재조명되고 있다.

▶열정을 갖고 쉽없이 도전하라=최경주는 기록제조기다. PGA투어 출전 자격을 처음 얻은 한국인이자 PGA투어를 제패한 첫 한국인이다. 2007년 아시아인으로 처음 세계 랭킹 톱 10에 진입했고 올해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을 제패한 최초의 아시아인으로 기록됐다.

영광은 달지만 그 여정은 늘 가시밭길이었다. 2008년 소니 오픈 이후 한동안 우승권에서 멀어지자 사람들은 잦은 부상과 40대의 나이 등을 언급하며 “최경주는 끝났다”고 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은 예외였다. 최경주 자신이었다. 그는 “한국에서는 30대 후반이면 안 된다고 하는데 40이 넘어서도 우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믿었다”고 말했다. 최경주는 결국 만 41세의 나이에 자신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우승의 달콤함을 만끽하기도 전에 최경주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후원사인 SK텔레콤이 주최하는 SK텔레콤 오픈이 코앞이었기 때문이었다. 우승 후 긴장감이 풀린데다 장거리 비행으로 피곤했지만 그는 환하게 웃었다. “골프는 내 직업이다. 피곤하다고 안 하면 직업을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답했다.

최경주의 일에 대한 열정과 소명의식은 의미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기에 급급한 직장인에서 부터, 편법으로 사업체를 키우려는 일부 경영인들에게 진정한 도전의 가치를 알려준다.

▶멀리 보고 끊임없이 바꿔라=기업들의 앞날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창업 1세대들이 보여준 도전과 혁신정신을 잊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영인들의 기업가정신 부족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적지않다.

소니 오픈 이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까지 최경주가 다시 정상에 오르는 데는 무려 3년4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최경주는 달게 받아들였다. 자신이 내린 결정의 결과였기에 그랬다.

통산 7회 우승컵을 거머쥐며 절정의 나날을 보내던 2008년 최경주는 몸무게를 10㎏ 줄이기로 했다. 프로골퍼에게 있어 시즌 중 체중을 과하게 줄이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다. 그러나 최경주의 선택은, 역설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메이저 무대에서 이기려면 비거리를 늘려야 하고 이를 위해선 날렵해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10㎏은 최경주의 드라이버 비거리가 최고였던 당시 몸무게로 돌아가기 위한 목표였다.

최경주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오래가려면 치는 타법을 버리고 부드러운 타법으로 스윙을 교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몸무게를 줄이는 것이 모험이었다면 스윙폼을 바꾸는 것은 선수생명을 담보로 한 도박이었다.

시련은 혹독했다. 잦은 부상과 3년여에 걸친 성적부진. 팬들의 실망도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하지만 최경주는 스스로를 믿으며 버텼다. 결국 메이저 중 메이저로 불리는 마스터즈에서 최종 라운드 후반까지 우승을 다퉜고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최종일 경기 17번홀에서 부드러운 스윙으로 결정적인 버디를 잡아내며 우승을 차지했다.

뉴욕타임즈는 “엄청난 중압감을 이겨낸 비결은 스스로 믿을 수 있는 변화된 스윙”이라며 극찬했다. 당장은 힘들고 성과가 안나도, 미래를 내다보고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추진하는 최경주야 말로 기업가정신이 사라진 오늘날 경영인들이 벤치마킹해야 할 멋진 표본인 셈이다.

▶진심으로 상대를 대하라. 그리고 나눠라=최근 재계의 최대 화두는 동반성장이다. 나눔문화 확산도 기업이 풀어야 할 과제다. 사회적 책임을 다할 ‘기업시민’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엄청나다.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16번홀에서 최경주는 회심의 샷을 날렸다. 그러나 공은 오른쪽으로 휘면서 나무를 맞고 러프에 떨어졌다. 최경주는 “모든 게 끝났구나...”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의 곁에는 냉혹한 프로 세계에서 의지할 수 있는 가족같은 동반자가 있었다. 60대에 접어든 캐디 앤디 프로저였다. 좌절하고 있는 그에게 프로저는 “아직 17,18번홀이 남았다.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아무도 모른다”고 격려했다. 힘을 낸 최경주는 끝내 역전 우승을 일궈냈다.

최경주는 프로저를 캐디로 생각하지 않는다. 함께 밥도 먹지 않는 다른 골퍼들과 달리, 그는 늘 함께 식사하다. 대회참가차 한국에 올 때도 동행한다. 나이 많은 프로저가 힘들까 캐디백을 가능한 가볍게 하는 배려도 잊지 않는다. “클럽은 바꿔도 사람은 바꾸지 않는다”는 최경주의 진심이 통했고, 프로저 역시 최경주를 친동생처럼 대하며 2003년 이후 8년 동안 호흡을 맞추고 있다.

최경주는 부자다.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상금만 18억원이 넘는다. 그러나 그는 마음이 더 부자다. 어린이들을 돕는 아름다운 동행 프로그램에 2008년 이후 매년 참석하고 있고 미국 토네이도 피해 때나 아이티, 일본 대지진 피해복구에도 적지 않은 성금을 쾌척했다. 자신을 후원해 준 SK를 위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SK텔레콤 오픈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을 때, 흔쾌히 그는 초청비도 받지 않고 참가했다.

최경주의 이 같은 역경을 이기는 승리방정식은 열정과 사랑, 도전, 혁신, 진실, 책임으로 대표되는 SK그룹 6 밸류스와 묘하게도 거의 맥을 같이 한다.

SK그룹 관계자는 “최경주의 일에 대한 열정과 책임, 사람에 대한 사랑, 불굴의 도전, 끊임없는 혁신, 주변인들과의 나눔 등은 우리 그룹의 6가지 밸류와 맥락이 닿아 있어 놀랐다”면서 “최경주는 오늘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와 기업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전했다.

<이충희 기자 @hamlet1007>

hamle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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