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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떡하면 공이 빨래 줄처럼 뻗어나갈까


<제237회> 죽음의 계곡 39



해안가를 따라 이어지는 검은 용암 위로 녹색 잔디가 펼쳐져 있고, 아련하게 펼쳐진 잔디 구릉 곳곳에 하얀 모래 벙커가 숨어 있다면? 에메랄드빛 하늘 위로는 이름 모를 새떼가 날아가고, 오색 들꽃이 자라나는 주위로 듬성듬성 키 큰 야자나무가 잎사귀를 흔들며 바람을 부르고 있다면?

그야말로 파라다이스와 다름없으니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행복에 겨워 눈물이라도 찔끔 흘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신희영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아무리 경치가 좋은들 뭐해. 경치가 밥 먹여 주나? 역시 남자가 좋지. 아무렴 남자가 최고야!

“한 실장님, 저기 강준호 프로가 친 공 좀 봐요. 빨랫줄처럼 뻗어나가네… 어떡하면 저렇게 잘 칠 수 있을까?”

강준호는 명색이 프로 아니던가. 그러니 드라이버 티샷을 하면 한승우보다 50야드는 멀리, 그리고 곧게 날아갔다. 하지만 한승우의 티샷 거리는 신희영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한승우의 곁으로 다가가서 이런 식으로 말했던 것이다. 질투심을 유발시키는 작전이었다. 이른바 성동격서. 소리는 동쪽에서 지르고 서쪽을 격멸하기. 겉으로는 강준호에게 끌리는 척하면서 한승우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술책이었다.

“밥 먹고 골프만 칠 텐데 저 정도도 못 하면 바보지요.”

누가 뭐래도 여자는 남자보다 영리하다. 그렇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능력 또한 남자보다 뛰어나다. 특히 두 남자 사이를 오가며 저울질하는 여자의 상황파악 능력은 신의 경지에 버금간다. 이를테면 강준호와 한승우 두 남자를 저울질해가며 작전을 펴는 신희영을 그 누구라도 당해낼 재간이 없으리란 뜻이다.

“그래도 멋있잖아요?”

“테니스로 대결한다면 제가 이길 수 있습니다. 회장님.”

한승우는 무심코 이렇게 대답했다. 아마도 호텔 체크인 할 때 주차장 옆에서 보았던 테니스장을 기억해낸 모양이었다.

“그래요? 테니스 잘 치는 사람도 멋지죠. 내일은 테니스나 치자고 할까?”

12번 파 5의 도그레그 홀이었다. 해안 절벽 위에 우뚝 서 있는 그린을 향해 공략해야 했지만 이미 자제력을 잃은 한승우의 무리한 샷으로 인해 공은 바닷바람을 타고 거친 용암 밭으로 들어가 버렸다.

화가 화를 부르는 법, 용암 밭에서 페어웨이 우드로 내지르니 이번에는 볼이 바람을 타고 휘어져 반대편 화단으로 날아 들어갔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진정해야 하지만 이미 그린 언저리에 다가서 있는 강준호의 모습을 보니 오히려 화만 돋을 뿐. 한승우는 씩씩거리며 뜨거운 한숨만 토해내고 있었다. 


“이리 와 봐요. 이럴 때일수록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그러면 그렇지. 신희영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한승우를 가만히 끌어안고 그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심호흡을 유도했다. 하나, 둘, 하나, 둘… 야릇한 기분이었다. 푸르메르 꽃이 지천으로 피어난 화단 속에서 흥분한 젊은 사내의 가슴을 어루만지는 기분은 묘하기 그지없었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준호는 장타로 질러낸 공을 찾기 위해 까마득히 멀리 떨어진 곳까지 앞서 나가 있었다.

“플레이의 진정한 기쁨은 어려운 샷을 해결하려는 지적 과정에 있다고 했어요. 그뿐인가요? 마음에 맞는 친구와 함께라면 나쁜 골프코스란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했지요. 한 실장! 힘 내세요. 내가 옆에 있잖아요?”

그녀는 한승우를 바짝 끌어안은 채 이렇게 다독였다. 이럴 때 써먹으려고 밑줄 그어가며 외어둔 말이었으니 한 실장인들 감동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여긴 것이다.

“내일인가요? 미국에서 제일 어렵다는 골프장에 간다는 날이? 여기보다 훨씬 어려운 곳에서 어떻게 골프를 쳐요? 내일 저는 쉴래요. 한솜이와 호텔에 남아있을게요.”

신희영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세상에나! 약발이 안 먹히는가? 그는 큰일 날 소리를 하고 있었다. 한솜이와 단 둘이 남아있겠다니… 그것도 호텔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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