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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융은 리스트관리다>HW는 선진국 SW는 후진국…관리보단 회피에만 급급
리스크컨설팅코리아·본지 공동기획-한국의 신용리스크 관리 현실
영업·평가·감사 분리 등

은행 선진시스템 적용 불구

시장변화 대응에 역부족


기업에 문제생기면

금융권은 자금회수 혈안

정부는 뒤치다꺼리 반복


사내 닫힌 정보공유 시스템

책임만 묻는 문화도 문제


대형 금융회사들이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부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급기야 금융당국의 수장과 5대 금융지주회사 회장들이 모여 10조원대 배드뱅크를 설립키로 합의했다.

시장 상황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문제를 키워온 금융회사들이 허겁지겁 대출회수에 나서고, 관련 기업들이 금융권의 돈줄 죄기로 숨이 넘어갈 때 정부가 뒤늦게 뒤치다꺼리에 나서는 과정을 반복한다. IMF 사태 때도 그랬고, 카드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내 금융권은 왜 이런 일을 되풀이할까. 결국은 신용 리스크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변화하는 시장에 부적응
=국내 금융회사들은 과거 몇 번의 위기를 겪으면서 위험관리 능력을 키워왔다고 자부했다. 선진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기법도 향상됐다고 자랑했다. 그런데 결과는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

전문가들은 우선 금융권이 시장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금융 업종 간 장벽이 무뎌지면서 개별 금융기관의 위험은 더욱 커지고 있는 게 현재의 시장이다. 특히 기업금융 시장은 금융권의 리스크 관리 개념을 송두리째 바꿔 놓고 있다. 과거 기업금융시장은 정상적인 기업만을 대상으로 한 여신위주 영업을 해왔다. 지금은 IB(Investment Bank), 구조조정, 자산운용, 컨설팅 등으로 확대되면서 리스크 관리 기능에도 일대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리스크 최소화가 아니라 성공적인 자산운용 및 마케팅의 핵심적인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리스크 최적화로 전환되고 있다.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리스크와 친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기관에 몸담고 있는 직원은 언제나 그리고 어디서 어떤 일을 하건 리스크관리에 민감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국내 금융회사들은 리스크 관리가 해당 관련 부서만의 업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리스크 업무가 상호 간에 공유되지 않으니까 리스크관리 부서와 영업 부문 간에 심각한 갈등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위기관리는 ‘최고경영자도 예외일 수 없다’는 마인드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리스크에 대한 이해와 관심,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하는 경영진의 리더십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리스크관리에서 실패한 금융기관을 보면 시장변화에 조기경보 시스템이 없거나 경영진부터 전 직원이 조기경보에 민감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보공유가 안 된다=국내 은행 대부분은 신용위험 관리기능과 영업기능, 신용평가(Credit Review), 감사기능을 구분해 놓고 있다. 이른바 선진국형 시스템이다.

그런데 문제는 운영의 묘다. 조직과 제도만 갖춰 놓는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성공적인 리스크관리는 리스크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툴과 함께 그 수단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리스크문화가 있어야 한다.

우선 각 부서 간 정보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게 문제다. 경직된 사업부제 운영으로 사업 부문 간에 간섭하지 않으려는 책임 회피문화가 팽배함은 물론 리스크 부문과 영업 부문의 대립적 관계로 리스크에 대한 의사소통도 원활치 못하다. 결국 사업 부문 간 갈등이 생겨나 수익과 리스크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전사적 리스크관리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하는 기업문화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 국내 모 금융그룹의 자회사는 해외파트너를 통해 리먼브러더스의 위험신호를 인지하고 거래를 중단한 반면 그룹 내 다른 자회사는 거액의 부실을 피하지 못한 반면, 반대로 해운회사 주식을 매입하여 거액의 평가이익을 갖고 있던 한 증권사는 계열 은행 리스크 담당자가 경고한 해운산업 악화 전망을 받아들여 매각해서 고수익을 유지할 수 있었던 사례를 반면교사로 기억해야 한다.

특히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의사결정을 할 때도 일부만 의견을 발표하고 치열한 토론없이 핵심인사 의견에 동조하는 수동적인 회의문화는 국내 금융권의 고질적인 병폐다.

성공에는 보상이 없고 실패에는 책임만 있는 잘못된 리스크 문화가 이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리스크 관리자가 아닌 리스크 회피자=국내 금융회사들의 신용위험 관리 담당자들은 리스크 관리자가 아니라 리스크 회피자가 돼 버렸다. 리스크를 관리하겠다는 의식은 약하고 지독할 정도로 회피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는 과거에 반복된 실패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단기 실적으로 평가하고 실패한 직원에게는 부실책임을 과도하게 지우는 평가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는 게 더 문제다. 지금의 리스크관리 시스템은 수익창출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손실발생을 막는 데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 결과가 리스크회피자인 셈이다.

‘100억원의 수익창출에 기여하고 1억원의 부실채권을 발생시킨 능력 있는 사람은 구조조정으로 팽당하고 1원도 못벌었지만 부실채권도 없는 보신주의자는 살아남았다’는 금융권 이야기는 여기서 비롯됐다. 많은 유능하고 경험 많은 사람이 효자로 인정받다 한 번 유리창을 깼다고 퇴출당했다. 실패 사례 교훈도 리스크관리에서 최고의 자산임에도 불구하고 실패를 재활용하지는 않고 징벌적 수단으로만 활용한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의사결정 실수에 대한 과도한 책임추궁은 창의적인 사고를 불가능하게 하고 전사적인 리스크관리 정착도 방해한다고 입을 모은다.

금융감독 당국의 책임도 크다.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뒷북행정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금융권이 기업 자금 회수에 들어갔을 때 금융당국은 ‘책임추궁하지 않겠다, 비올 때 우산을 뺏지 말라’며 자금지원을 독려했다. 하지만 금융기관에 검사를 나와서는 실패에 대해 강하게 책임을 물었다. 감독당국도 이제 사후적 책임추궁에서 사전적으로 금융기관을 위한 컨설팅회사로 변신해야 할 때가 왔다.

<신창훈 기자 @1chunsim>

chuns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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