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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마을 1축제>어릴적 외갓집 가듯…소달구지 타고 꽃마중 갈까
칠갑산 산꽃마을 축제
이달 16~17일 세번째 축제

지난해 방문객만 1만명 넘어


느린 봄, 느린 꽃, 느린 사람들…

마을에 들어서면 도시생활 잡념 훌훌~


어른엔 향수·아이들엔 자연체험

소박하고 아름다운 축제로 정착


봄꽃들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리면서 추위와 구제역으로 어둡고 차가웠던 들과 산골짝에 온기가 돌고 환하다. 환호작약하는 분홍빛 벚꽃은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폭죽 같다. 그 중에서도 6㎞에 이르는 벚꽃 터널을 이룬 칠갑산 가는 길은 봄에 들러 꽃마중하기에 더 없이 좋다. 청주와 충주를 잇는 36번 국도를 따라 청양 쪽으로 가다 보면 645번 지방도가 나타난다. 이 645번 지방도를 타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대웅전이 2개’인 장곡사로 향하다 보면 어느 틈엔가 도로 양쪽에 줄줄이 늘어선 벚꽃 나무가 관광객들을 반긴다. 다른 동네라면 벚꽃이 모두 졌을 4월 중순 이후에 6㎞에 걸쳐서 분홍빛 벚꽃터널이 이어지는데,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꼽히는 길이다. 

길을 따라 나지막하면서도 구불구불 굽은 칠갑산 중턱을 지날 쯤, 비탈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행정구역명으로는 광금리지만 ‘칠갑산 산꽃마을’로 더 유명한 곳이다.   

4월 중순이면 이 마을에 ‘칠갑산 산꽃마을’ 축제가 열린다. 서른여덟 가구에 일흔일곱 사람이 살고 있는 작은 동네가 이 무렵이면 사람들로 발디딜 틈 없이 들어찬다. 이제 겨우 두 번 축제가 열렸지만, 워낙 예쁜 마을이라는 소문에 지난해에만 1만명이 넘는 관광객을 불러들였다.

세 번째를 맞는 올해의 마을 축제는 오는 16일과 17일.

축제가 코앞이지만 마을은 한적하다. 다른 축제 마을에서 보이는 떠들썩함보다는 느긋함이 느껴진다. 마을 한켠의 정자 밑에서 개 한마리가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고 할머님들 네댓 분이 길가에 머리를 맞대고 구부린 채 꽃을 심고 있다. 간혹 도로를 지나는 차에서만 속도감이 느껴진다. 

“원래 마을분들이 조금 느려유. 게으르다고 혀야 하나(웃음). 우리 마을 주제라고 할까 하는 게 ‘느리게 건강하게 행복하게’유. 사람들이 동네를 닮은 건지 마을 사람들을 닮은 건지, 여기는 꽃도 늦게 핀단께. 저짝 산만 해도 수선화 같은 건 진작에 다 폈는데 우리 마을엔 아직 피지도 않았잖유” 이장인 장광석 씨의 마을 소개도 느긋하다.

애초에 축제의 시작도 그랬다. 대단한 걸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2007년 3월 14일 ‘농번기 동내 친목 차원에서’ 인근 초등학생들을 불러모아다 소달구지로 마을구경도 시키고, 표고버섯도 따보게 하고, ‘화이트 데이’라고 꽃사탕도 하나씩 만들어 줬더니 그게 소문이 났다.

한 2년 정도 그렇게 하고 나니 전국 각지에서 우리도 해볼 수 없냐, 올해는 언제하냐는 문의가 답지했다. 

산꽃마을의 축제는 대단한 걸하려던 게 아니었다. 인근 초등학교 아이들을 데려다 소달구지로 마을구경을 시켜주는 그저 그런 일이었다. 그런데 그게 느림의 화두와 통했다. 꽃향기, 더운 김이 올라오는 흙냄새가 코끝을 간질이고, 느린 소의 걸음에 따라 뒤채이다보면 시골 외갓집이 보이는 듯 하다.
그래서 장 이장과 마을 어르신들이 “우리도 이참에 다른 데처럼 매년 마을 축제를 해보자”고 결정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사실 산꽃마을 축제에는 요란한 ‘아이템’이 없다. 전국에서 최고로 치는 표고버섯, 구기자나 ‘청양고추’가 마을 곳곳에 그득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앞세우는 것은 이런 ‘상품’들이 아니다.

축제를 채우는 것은 소박하고 다채로운 체험이다.

달고나랑 꽃잎으로 ‘꽃사탕’도 만들고, 화전이나 아까시아꽃 튀김, 꽃비빔밥 같은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마을 뒤 야산에서 벌도 쳐보고 표고버섯도 따볼 수 있다. 지금의 30~40대가 어린시절, 고향마을이나 시골 외갓댁을 방문하면 해볼 수 있던 일들이다.

미꾸라지랑 가재도 잡고 고구마도 수확해보고, 야생화를 따다가 화분을 만들거나 천연재료를 이용해 염색도 해볼 수 있다. 마을에 눌러앉아 있기가 지루하면 소달구지를 타고 마을 주변 꽃길을 둘러보거나 산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물탕골과 고산굴을 본다. 마을앞의 연꽃단지나 야생화 전시관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고라니 우유 주기’라는 프로그램도 있다. 부모 잃은 새끼 고라니 두 마리가 산 아래 밭에 내려와 쓰러져 있는 것을 동네주민들이 거둬 키우면서 생긴 체험이다.

그런 면에서 축제의 진정한 주인공은 모든 소박한 체험을 값지게 만들어주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광금리(廣金里)라는 지명은 원래 금이나 쇠붙이가 많이 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나라에서 엽전을 만들던 쇠가 덩어리째 캐지곤 했다고 해서 ‘통쇠골’이라는 지명도 있다. 지금도 광금리는 언덕 하나를 두고 쇠밭(金田)으로 불리는 1반과 너른밭(廣田)이라 불리는 2반으로 나뉜다. 

마을은 월봉, 청수봉, 관모봉, 말봉의 네 봉우리에 의해 사방이 둘러싸여 있다. 덕분에 지대가 제법 높은데도 솟았다는 느낌보다는 아늑함이 먼저 든다.

아름다운 꽃들과 나무들 덕분에 어머니 품 같은 마을은 매 계절 다른 옷을 갈아입는다. 마을 어귀 정자에 서면 한눈에 마을이 들어오고 산뜻한 산바람과 함께 도시생활의 잡념은 잠시 사라진다.

축제를 하면서 마을은 많이 유명해졌다.

청양군 사람들에게 광금리가 어디냐고 물으면 “글씨~”하고 어정쩡한 대답이 나오지만, ‘산꽃마을’을 물으면 “이짝으로 가다 저짝으로 가고…” 하면서 답이 줄줄 나온다. 

우연히 들렀다 맘을 뺐긴 사람들 덕분에 한국미술협회와 한국방송코미디언협회가 마을과 자매결연을 맺기도 했다. 마을 어르신들은 “우리 마을은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이 선택한 아름다운 마을, 가장 재미난 사람들이 선택한 재미있는 마을이여”라고 자랑한다.

장광석 이장은 “사실 꽃이라고 하면 다른 데도 다 있지. 오신 분들이 특색을 가지고 오셔야제. 그래도 옛날 고향 같은 느낌이 나라고 산에 진달래 동산도 만들어 놓고 복숭아도 개량복숭아가 아니라 토종복숭아를 잔뜩 심어 놨어유. 부지런한 분들은 다른 데 다 구경하시고 나서 우리 마을도 구경오시고, 좀 안 부지런한 분들도 느지막하게 오셔서 우리 마을에서 꽃이랑 산이랑 구경하셔요”라고 말했다.

<홍승완 기자 @Redswanny>

swan@heraldcorp.com

사진=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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