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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인의 연인’ 테일러...그녀가 사랑한 남자들
그녀는 ’만인의 여인’이었다. ’세기의 미인’이라는 수식어를 안고 살았던 은막의 여왕, 세계인의 사랑만큼 그녀에게는 숱한 사랑의 흔적들이 있었다.

무려 여덟번의 결혼,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사랑은 한 장 한 장이 영화가 됐다.

테일러는 영화배우 리처드 버튼과 두번에 걸친 결혼과 이혼 스토리로 유명하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62년 영화 ‘클레오파트라’의 로마 촬영 세트장에서였다. 첫 눈에 반한 사랑은 불같은 사랑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배우자가 있었다. 언론의 충격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교황청이 직접 나서서 비난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1964년 결혼해 1974년까지 10년의 사랑, 결혼생활, 그리고 이혼을 하게 된다. 이후 1975년10월 재결합했으나 다음해 7월 버튼의 알코올 중독 등으로 다시 파경을 맞았다.

테일러는 생전 리처드 버튼과의 만남을 “로마에서 처음 만난 순간부터 우리는 언제나 미칠듯 강력한 사랑에 빠졌고 많은 시간을 함께했지만 충분하지는 않았다”고 회고했다.

지난 1984년 뇌출혈로 숨진 버튼도 최근 발견된 테일러에게 보낸 연서에서 “당신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여배우일 것”이라면서 “특출한 미모까지 겸비해 당신을 더욱 특별하게 한다”며 정열적인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사실 테일러의 결혼생활은 18세인 1950년 시작된다. 1950년 5월 호텔 재벌인 콘라드 힐튼 2세와 처음 결혼하지만 같은 해 12월 두 사람은 이혼한다. 1952년에는 영국 영화배우 마이클 와일딩과 결혼해 두 아들을 뒀으나 다시 4년만에 헤어졌다.

1957년에는 영화 제작자인 마이클 토드와 결혼해 딸을 낳았지만 토드가 다음해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지기도 했다.

세번째 남편 토드가 죽은 뒤 테일러는 토드의 절친한 친구이자 자신의 친구 데비 레널즈의 남편이었던 팝가수 에디 피셔와 염문을 뿌렸다. 화려하고 복잡다단한 연애사였다. 비난을 무릎쓴 만남이었다. 이후 테일러와 피셔 부부는 런던으로 이사를 했지만 테일러가 영화 클레오파트라 촬영장에서 리처드 버튼을 만나면서 파경을 맞게된다.

테일러는 버튼과 두번의 결혼과 파경으로 인연을 끝냈지만 “내가 죽으면 전 남편인 리처드 버튼의 고향에 뿌려지길 원한다”고 말할 정도로 버튼은 테일러가 가장 사랑한 남자로 평가되고 있다.

이후 테일러는 해군장관을 지낸 정치인 존 워너와 1976년 결혼했고, 워너는 이후 버지니아주에서 상원의원에 당선돼 상원 군사위원장을 지내는 등 워싱턴 정가를 주름잡기도 했다. 하지만 두사람은 1982년 헤어졌다.

1991년에는 20세 연하인 공사장 노동자이자 트럭 운전기사이던 래리 포텐스키와 마이클 잭슨의 목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들의 사랑은 5년, 1996년 파경을 맞았다.

그리고 테일러는 지난해 4월 78세의 나이로 29세 연하남인 할리우드 매니저 제이슨 윈터스와의 약혼설이 돌았으나 그에 대해 테일러는 “제이슨은 내 매니저이자 가장 친한 친구이며 그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서 약혼설은 부인했다.

헤럴드생생뉴스/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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