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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오토바이 타는 대통령’에 숨겨진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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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먼 위드 어 터번>의 포스터.


# 2009년 개봉한 인도네시아 영화 <우먼 위드 어 터번(Perempuan Berkalung Sorban, 터번을 두른 여자)>은 이 나라가 왜 세계 최대의 이슬람국가이고, 이 종교가 삶에(특히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준다. 똑똑하고, 독립심이 강한 아니샤라는 여성이 남성 위주의 이슬람 문화에 도전하면서 자신의 인생과 사랑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주요 영화제에서 수상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지만, 그 내용으로 인해 인도네시아 보수진영으로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 2016년 12월 2일이니 한국에서는 역사적인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다(12월 3일 6차 촛불집회).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모나스 광장에는 20만 명이 모여 신성모독 논란에 휘말린 중국계 기독교도 주지사의 구속을 촉구하는 대규모 무슬림 집회가 열렸다. 바수키 차하야 푸르나마(일명 아혹) 자카르타 주지사는 2016년 9월 대중연설 중 '유대인과 기독교도를 지도자로 삼지 말라'는 이슬람 경전 코란의 구절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이들에게 속지 말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신성모독 논란에 휘말렸다. 2017년 5월 아혹은 신성모독죄로 2년형을 선고 받고 현재까지 감옥에 있다. 검찰이 1년을 구형했는데, 더 높은 형량이 나왔다. 인도네시아의 무슬림 파워는 우리네 상상보다 크다.

# 지난 18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겔로라 붕 카르노(GKB) 경기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조코 위도도(일명 ‘조코위’, 61년생)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오토바이를 몰고 등장해 세계적인 화제를 낳았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가구사업으로 성공한 그는 2014년 대선에서 군 장성 출신의 유력 대권 주자였던 프라보워 수비안토(51년생) 대인도네시아운동당 총재를 꺾고 당선됐다(6.3% 차). 그는 친서민 정책 등 개혁적 이미지로 ‘인도네시아의 오바마’(실제로 많이 닮았다)로 불린다. 90%가 무슬림인 인도네시아에서는 10%인 중국계 화교가 경제의 80%를 장악하고 있다. 당시 대선에서 조코위는 화교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프라보워는 독재자 수하르토(1921~2008)의 사위(지금은 이혼)이고, 조코위는 군인 출신이 아닌 최초의 인도네시아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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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개회식장으로 가는 도중 길이 막히자 오토바이로 갈아 타고 있는 조코위 대통령. 알고 보면 이게 다 선거운동이다. [사진=개회식 동영상 캡처]


# 현직 대통령의 파격적인 개회식 등장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선거운동이다. 인도네시아 차기 대선은 내년 4월에 열린다. 8개월이나 남은 것 같지만 인도네시아의 독특한 선거제도로 인해 대통령선거는 이미 시작됐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총선 특표율 25% 이상 혹은 원내 의석 점유율 20% 이상을 확보한 정당 및 정당연합만이 대통령후보를 낼 수 있다. 아시안게임 개막 8일 전인 8월 10일 조코위는 대통령선거의 후보로 등록했다. 조코위 대통령은 아시안게임 개회식을 자신의 선거운동에 최대한, 그것도 아주 극적인 방식으로 활용한 것이다. 조코위는 대회 이틀째인 19일에는 태권도 경기장을 찾아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 총재(WTF) 등과 함께 경기를 관람했다. 인도네시아 전문가인 김남규 씨는 “조코위가 아시안게임을 아주 얄미울 정도로 잘 활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 흥미로운 것은 역시 대선후보로 등록해 내년 4월 조코위와 리턴매치를 벌이는 프라보워의 행보. 일단 체육계 인맥이 좋다. 인도네시아 국가체육위원회(KONI)의 토노 수라트만 회장은 프라보워와 의형제 같은 사이다. 프라보워도 아시안게임 기간 중 경기장 방문 등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특히 지난 17일 세계무예마스터십위원회(WMC)의 이시종 위원장(충북지사)을 만나 인도네시아무예마스터십위원회의 수장을 맡고, 2021년 제3회 세계무예마스터십의 인도네시아 개최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또 19일에는 자카르타 주의 아니스 바스웨단 주지사가 이시종 위원장을 만나 충청북도와의 교류 추진을 약속했다. 바스웨단은 프라보워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4월 자카르타 주지사 선거에서 아혹을 꺾었다. 현재 수감 중인 아혹은 조코위가 자카르타 주지사일 때 부지사였고, 조코위가 대통령선거에 나가면서 이를 승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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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인도네시아국가체육위원회에서 열린 IMC 설립 조인식에서 이시종 WMC 위원장(왼쪽 두 번째)와 프라보오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선후보(오른쪽 두 번째)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은 배응식 WMC홍보대사, 오른쪽은 토노 수라트만 KONI 회장. [사진=WMC]


# 인도네시아의 선거는 최근 아주 혼탁하다. 흑색선전과 가짜뉴스가 판을 친다. 여기에 이슬람 근본주의가 확산되면서 변수도 많아졌다. 대통령선거의 경우 현재 지지율은 조코위가 앞서지만 저조한 경제성장(조코위 대통령은 7%의 경제성장률을 약속했지만 최근 몇 년간 5% 초반대에 머물고 있다)과 수하르토 및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향수 등으로 프라보워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최근 선거에서는 조코위 측의 성적이 좋지 않다. 남의 나라 정치이고, 결국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선택할 일이다. ‘신남방정책’을 표방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네시아를 우선 방문한 우리는 좋은 협력관계를 구축하면 된다. 단, 인도네시아 정치가 우리네와 닮은 구석이 참 많고, 또 대선후보들의 경쟁이 스포츠를 매개로 전개된다는 것이 아주 흥미롭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편집장]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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