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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WC] '카잔 쾌거' 한국축구를 가장 극적으로 세계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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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이운재가 희미해져 간다. 수문장 조현우가 맹활약을 펼치며 한국 대표팀의 독일전 2-0 승리를 견인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이혁희 기자] 대한민국은 불과 첫 경기 때만 해도 '월드컵에 어울리지 않는 팀', '아시아 소속인 덕분에 월드컵에 거저 진출하는 팀'이란 혹평을 들었다. 하지만 조별리그 마지막 라운드, 우승후보 중의 우승후보인 독일을 상대로 아시아 호랑이의 저력을 보였다. 27일 오후 11시(한국시간) 러시아 카잔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최종전에서 대한민국이 독일을 2-0으로 꺾었다.

월드컵은 언제나 비판 받았다. 허울이 좋아 '전 세계의 축제'지,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아시아 팀들이 본선 티켓을 차지하면서 평균적인 수준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존재했다. 대회의 질은 차라리 유럽 대륙의 국가들이 출전하는 유로(EURO) 대회가 낫다는 평이 많았다.

이제 이 비판에 반박할 수 있는 훌륭한 경기 하나가 탄생했다. 이번 월드컵에 출전한 아시아 국가 중 최약체라는 평을 들은 팀이 시나리오를 썼다. 아시아 국가 중 꼴찌란 뜻은 사실상 월드컵 진출국 중 가장 저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그런 대한민국이 세계 최강, 영원한 우승 후보,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꺾었다.

역시 수훈갑은 조현우(대구FC)였다. 조현우의 소속팀인 대구에 위치한 팔공산과 세계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인 다비드 데 헤아(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합쳐 '팔공산 데 헤아'라 불리는 별명의 값이 아깝지 않았다. 마츠 훔멜스(바이에른 뮌헨)의 192cm의 압도적인 신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중 폭격을 필두로, 쉴 새 없이 날아드는 전차 군단의 포격을 모조리 막아냈다. '낙동강 방어선'의 탄생이었다.

조현우는 수비진 조율, 공중볼 처리, 순간적인 판단력, 슈퍼 세이브까지 골키퍼가 갖추어야 할 덕목에서 고루 최고점의 활약을 펼쳤다. 독일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수문장장들인 마누엘 노이어(바이에른 뮌헨), 안드레 테어-슈테겐(바르셀로나) 등이 전혀 부럽지 않았다.

그리고 중앙 수비수 김영권(광저우 헝다)이 있었다. 과거 관중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실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김영권은 경기를 앞두로 절치부심하는 인터뷰를 했다. 과거 물의를 빚은 실수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국민들에게 사죄하기 위해 투혼을 불사르겠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김영권은 경기 내내 수비 진영에서 맹활약했을 뿐만 아니라, 선제골이자 결승골까지 터트리며 믿음에 보답했다. 월드컵 출정식 당시, 김영권이 개인 슬로건으로 내건 '필생즉사 필사즉생(必生卽死 必死卽生,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의 정신이 빛을 발했다.

이번 월드컵 첫 출전인 센터백 윤영선(성남FC)을 데리고 김영권은 솔선수범하는 베테랑의 면모를 보였다. '디 만샤프트(독일 대표팀 애칭)'가 자랑하는 마르코 로이스(도르트문트), 메수트 외질(아스날) 등의 호화 공격진이 무용지물이었다. 과거 광저우에서 김영권을 지도했던 명장 마르셀로 리피가 김영권을 두고 '아시아 톱 레벨이자, 유럽 최정상 팀에서도 통할 실력'이라고 칭찬한 것이 과찬이 아니었다.

이날 승리는 소위 말하는 '텐백 수비'를 경기 내내 계속하다, 운좋게 얻은 승리 따위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은 경기 내내 단단한 수비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역습 축구를 펼쳤다. 패스를 좀 더 간결하고 정확하게 보낼 수 있는 기성용(스완지시티)이 출전할 수 있었거나, 문선민(인천 유나이티드)가 조금 더 배짱이 있었더라면 승부는 더 일찍 날수도 있는 경기였다.

대한민국은 승리를 '당하지도', '줍지도' 않았다. FIFA 랭킹 1위 독일을 상대로 완벽에 가까운 승리를 쟁취했다. 비록 스웨덴이 멕시코에 승리하면서, 독일을 2점차로 이기고도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대표팀의 월드컵 자체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세계 최고 무대에서도 한국축구가 통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박수를 보내야 할 이유다.

또한, 대한민국은 월드컵에서 웃는 자가 늘 강대국만은 아님을 전 세계에 증명했다. 토너먼트가 끝까지 진행되면 우승은 결국 또 다른 강호의 차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경기로도 월드컵의 진가는 트로피에 있지 않음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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