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박노승의 골프 타임리프] 2018 US 오픈 후 비난 받는 USGA를 응원하며
이미지중앙

2018 US 오픈에서 우승한 브룩스 켑카(오른쪽)와 캐디 리차드 엘리엇.


지난 주 시네콕 힐스 골프 클럽에서 열렸던 US 오픈의 우승자는 1오버파를 기록한 브룩스 켑카였다. 29년 만에 US 오픈에서 2년 연속 우승한 켑카의 우승 비법은 바로 ‘참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USGA의 딜레마

골프대회는 창과 방패의 싸움이다. 경기위원회는 선수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코스 세팅을 통해 난이도를 조절하고, 선수들은 코스의 약점을 파악하여 총공세를 펼친다. USGA는 우승 스코어가 이븐파 정도일 때 공격과 수비의 균형이 맞은 것으로 간주하지만, 장비가 발전하고 선수들의 기량이 좋아지면서 점점 코스를 방어할 수단은 많지 않다.

2017년 US 오픈에서 개최지인 에린 힐스 골프클럽은 우승 스코어 16언더 파를 내주며 선수들의 공격에 완패하고 말았다. 메이저 대회 역사상 가장 긴 코스를 준비하여 공격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거리로는 선수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올해 US 오픈 코스를 셋업한 USGA는 기본으로 돌아갔다. 무릎까지 차는 긴 러프와 딱딱하고 빠른 그린을 준비했으며 바람의 도움을 기다렸다. 지난 주의 우승 스코어가 1오버파였으니 USGA는 목표를 달성했다. 선수들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코스 셋업을 보고 기가 죽었다.

창에 뚫리지 않는 방패

1 라운드: 언더파를 친 선수는 4명뿐이었고 10오버파 이상을 친 선수들이 29명이나 되었다. 어려운 코스 셋업에 바람까지 몰아치자 첫날 평균 타수는 76.5타까지 올라갔다. 최고의 스타플레이어 세 명이 함께 친 미켈슨, 맥길로이, 스피스 조는 합계 25오버파의 스코어를 적어냈다. 코스는 기선을 제압했고, 선수들은 자신감을 잃었다.

2라운드: 바람의 약해지면서 평균 타수가 73.6타까지 좋아졌지만 컷 점수는 8오버파였다. 세계 랭킹 10위 안에 있는 선수 4명이 컷을 통과하지 못했고 아시아에서는 한국 일본 중국 태국에서 각 1명의 선수가 컷을 통과했다.

3라운드: 다시 바람이 강해졌고, 그린 스피드가 4.5m에 가까워지자 선수들은 완전히 자신감을 상실했다. 평균 스코어가 75.3타였고 언더파를 친 선수는 3명뿐이었다. 물론 66타를 친 선수가 두 명이나 나와서 코스가 아무리 어려워도 4언더파를 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오후에는 그린이 너무 빨라져서 플레이를 중단시키고 그린에 물을 뿌려가며 시합을 해야 했다.

4라운드: 3라운드의 코스가 너무 어려웠다고 판단한 USGA는 밤새 그린에 물을 뿌려서 그린스피드를 낮췄고 몇 개 홀의 위치를 쉬운 곳으로 옮기는 외교적인 제스처를 보여줬다. 그래서 언더파가 15명이나 나왔고 US오픈 역사상 최저타 기록과 동타인 63타가 나왔다. 평균타수도 72.2타로 가장 쉬웠다. 2004년 같은 코스에서 열렸던 US 오픈 마지막 라운드의 평균타수가 6.5타나 더 높은 78.7타였던 것을 감안하면 올해 4라운드 코스셋팅이 얼마나 쉬워졌는지 알 수 있다. 올해 1~4라운드를 합친 평균타수는 74.7타였다.

이미지중앙

US 오픈 2연패에 성공한 켑카의 비결은 '참고 기다리기'였다.


비난 받는 USGA


대회가 끝난 후 많은 선수들이 대회를 주관한 USGA를 비난했다.

“인간으로서 가장 완벽한 샷을 해도 보상받지 못하는 불공정한 코스이다.”
“USGA는 실력을 검증하기보다는 운 좋은 선수를 가려내기 위한 코스 셋팅을 했다.”
“이렇게 잔인하고 악랄한 코스는 처음 보았다.”
“USGA는 코스를 잃어버렸다.”
“짧은 거리에서 4퍼트를 했을 때 USGA에게 따귀를 맞는 기분이었다.”
“USGA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
“USGA는 프로 대회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는 조직이다.”

싸움에 졌다고 생각하는 선수들은 USGA에게 화풀이를 했다.

골프 팬들은 싸움을 구경하는 입장이다. 싸움이 커질수록 더 재미있는 법. USGA를 응원할까, 아니면 선수 편을 들까 생각해볼 만하다. 필자는 USGA 쪽 응원단에 속해 있는데 다른 골프팬들은 어느 쪽인지 궁금하다.

이미지중앙

2018 US 오픈의 갤러리 모습.


USGA를 응원하며


골프공과 클럽을 제조하는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선수들은 큰 혜택을 입었지만, 골프코스는 방어할 수단이 제한되어 있는 약자다. 빠르고 단단한 그린과 긴 러프는 USGA의 영원한 무기이므로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선을 넘었다고 비난하지만 정해진 선이 있는가? 골프에서 정해진 선은 세월에 따라서 바뀌고, 경기 당일 날씨에 따라서도 변경될 수 있다.

USGA는 이제 볼과 드라이버 헤드의 제조기술에 대한 규제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선수의 공격을 더 이상 막아내기 어렵다면 그들의 무기를 제한하는 방법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USGA가 마련한 총 상금 132억 원을 나눠가졌고, 우승자는 23억 원이 넘는 상금을 챙겼는데, 겨우 4라운드의 골프를 치면서 지치고 힘들었다고 불평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결국 승자는 조용하게 자기의 플레이를 했던 켑카였다. 코스가 아무리 어려워도 우승자는 나오고, 총상금도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2019년 페블비치에서 열리는 US 오픈의 코스 셋팅이 벌써 궁금해진다.

* 박노승 : 건국대 산업대학원 골프산업학과 겸임교수, 대한골프협회 경기위원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