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러시아WC] 월드컵의 ‘원 히트 원더’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이혁희 기자]음악계에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라는 말이 있다. 한 곡만 큰 흥행을 거뒀을 뿐, 이후 인기를 유지하지 못하는 가수를 일컫는 말이다. 세계적으로 로스 델 리오(Los del Rio)의 곡 ‘마카레나(Macarena)’가 원 히트 원더의 대표격이다. 가수이름에 대해 대부분 처음 듣는 이름인데 라고 갸우뚱하다가 곡을 듣는 순간 무릎을 탁 치곤 한다.

스포츠 세계에도 여러 ‘원 히트 원더’가 존재한다. 08-09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1군으로 승격하자마자 교체 출전으로 두 경기 연속 결승골을 득점, 리버풀의 우승 도전을 끝내버린 페데리코 마케다(현 노바라 칼초)가 대표적이다. 스타탄생의 예고인 줄 알았지만, 마케다는 그게 축구 일생의 정점이었다.

월드컵에서도 혜성같이 나타났다가, 말 그대로 혜성처럼 지나쳐 간 선수들이 여럿 있다. 월드컵에서 이름을 떨쳤다고 모두 박지성(은퇴)이나 토마스 뮐러(바이에른 뮌헨)가 되는 건 아니다. 월드컵‘만’ 풍미했던 선수 둘을 소개한다.

이미지중앙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만을 위해 태어난 사나이라 불리는 살바토레 스킬라치. [사진=피파 홈페이지]


# ‘파울로 로시의 재림’인 줄 알았던, 살바토레 스킬라치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 참여한 아주리 군단(이탈리아 대표팀 애칭)의 공격진은 면면이 화려했다. ‘말총머리’ 로베르토 바조, 로베르토 만치니, 지안루카 비알리 등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스타 플레이어들이었다.

쟁쟁한 공격진 중 낯선 이름이 스킬라치였다. 당시 이탈리아의 2부 리그인 세리에B에서 활약을 바탕으로 유벤투스에 입단, 대표팀도 월드컵 개막 1년 전에야 간신히 데뷔한 무명선수였다.

월드컵에 참가한 스킬라치는 조별리그 1차전 오스트리아 전에서 당연히 벤치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0-0으로 비기고 있던 상황에서 교체로 투입, 2분도 채 되지 않아 득점하며 조국의 승리를 견인했다.

이후 아주리 군단에서 스킬라치의 입지는 급상승했다. 4강에서 아르헨티나에 패하고, 잉글랜드와의 3·4위전까지 7경기에서 6골을 득점했다. 이탈리아의 득점 대부분을 스킬라치가 터트렸다.

이런 맹활약에 힘입어 스킬라치는 이탈리아가 대회 3위에 그쳤음에도 득점왕, 대회 MVP, 대회 올스타팀을 모두 석권했다. 당연히 이탈리아 전역은 82년 월드컵 득점왕이었던 파울로 로시의 재림이라며 스킬라치를 치켜세웠다.

하지만 스킬라치는 월드컵 이후 귀신같이 몰락했다. 소속팀 유벤투스에서 극심한 부진을 면치 못했다. 월드컵에서 보였던 절정의 골 감각은 온데간데 없었다. 인터밀란으로 적을 옮긴 스킬라치는 인터밀란에서도 실패, 일본 J리그의 주빌로 이와타로 쫓기듯 이적했다. 영영 폼을 되찾지 못한 스킬라치는 결국 J리그에서 은퇴했다.

이미지중앙

‘레인보우 플립 마스터’에서 피겨 선수로 전직한 일한 만시즈. [사진=피파 홈페이지]


# 2002 대회 한국전 멀티골의 주인공, 일한 만시즈


일한 만시즈는 2002 한일 월드컵 3·4위전에서 한국을 상대로 두 골을 터트린 선수다. 앞서 8강에서도 세네갈을 상대로 결승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월드컵에서 만시즈의 활약은 눈부셨다. 대한민국과 더불어 이변의 주인공이었던 터키의 공격수로 출전했는데, 직접적인 득점보다는 환상적인 개인기로 세계의 팬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브라질과의 준결승전에서의 퍼포먼스는 아직도 회자된다. 당시는 물론, 아직까지도 역사상 최고의 풀백 중 하나로 꼽히는 호베르투 카를로스를 상대로 소위 ‘사포’라 불리는 레인보우 플립 개인기를 성공시켰다. 그 개인기는 한국과의 경기에서 김태영(현 수원 삼성 코치)을 상대로도 다시 한 번 선보였다.

빼어난 외모로, 데이비드 베컴과 더불어 여성 팬들을 설레게 하는 양대 산맥이기도 했던 만시즈는 2002년에만 반짝였다. 01-02시즌 소속팀이었던 터키 리그 삼순스포르에서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지만, 고질병이었던 무릎 부상이 재발했다.

유럽에서 활약을 이어가기 힘들어진 만시즈는 새로운 리그를 찾아 나선다. 행선지는 일본이었다. 한일 월드컵에서 보였던 외모와 실력 덕분에 일본엔 여전히 만시즈의 여성 팬들이 가득했다. 만시즈는 J리그의 비셀 고베로 이적했지만, 무릎 부상이 심해져 고작 한 경기에 출전했고, 이후 유럽으로 돌아왔으나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2006년 은퇴했다.

그렇게 잊혔던 만시즈는 2009년, 뜻밖의 종목에서 나타났다. 잔디 위의 미남 선수였던 만시즈가 빙판 위에 나타난 것이다. 연인이자 베테랑 피겨 선수인 올가 베스탄디고바와 짝을 이뤄 피겨 스케이팅 페어 종목 선수로 데뷔했다.

비록 2014 소치 동계올림픽과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엔 실패했지만, 터키 국내 대회에서 우승하는 등의 성과를 올렸다. 필드 위에서 레인보우 플립을 수차례 선보였던 만시즈는 이제 빙판 위에서 무지개를 그리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