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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늘집에서] 고진영과 백규정의 엇갈린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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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시즌 KLPGA투어에서 치열하게 신인왕 경쟁을 한 고진영과 백규정, 김민선5(왼쪽부터). [사진=KLPGA]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이강래 기자] 고진영과 백규정은 95년생 동갑내기 친구다. 2014년 KLPGA투어에 나란히 데뷔한 둘은 김민선5와 함께 치열하게 신인왕 경쟁을 했다. 승자는 백규정이었다. 그 해 백규정은 4승(LPGA 1승 포함)을 거두며 신인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백규정은 4월 넥센 세인트나인 마스터즈와 6월 롯데 칸타타여자오픈, 9월 매트라이프 KLPGA선수권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10월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하나외환챔피언십에서 우승해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 됐다. 연장전에서 전인지와 브리태니 린시컴을 꺾은 백규정은 모두의 부러움 속에 LPGA투어 진출을 선언했다.

KLPGA투어에서 2014년은 기억될 한 해였다. 김효주가 5승을 거두며 12억원이 넘는 거금을 벌어들이며 상금왕에 올랐다. 김효주 외에 장하나와 김세영, 전인지 등 후일 미국LPGA투어를 주름잡는 강호들이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였다. 박성현도 루키 시즌을 보냈으나 24개 대회에 나가 10차례나 컷탈락했으며 신인왕 레이스에서 8위에 그쳤다. 백규정이 루키 신분으로 김효주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우승을 차지한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동기인 백규정의 성공을 지켜보던 고진영은 8월 넵스 마스터피스에서 데뷔 첫 우승을 차지했다. 김민선5도 뒤를 이어 11월의 ADT캡스 챔피언십에서 프로 첫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신인선수 3명이 데뷔 첫 해에 모두 우승을 차지한다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었다. 이들은 박인비와 신지애로 대표되는 88년생 ‘세리키즈’의 뒤를 잇는 ‘황금세대’로 주목받았다.

2015년 미국무대로 직행한 백규정은 그러나 예상과 달리 고전했다. 신인왕을 목표로 당차게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으나 우승은 고사하고 톱10에 한 차례 드는데 그쳤다. 결국 상금랭킹 57위로 힘겹게 시드 유지를 한 백규정은 2016년엔 18개 대회에서 7번이나 컷오프되며 상금랭킹 90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백규정은 허리부상까지 겹치면서 결국 국내무대로 'U턴' 했다.

결과론적이지만 백규정은 너무 급하게 미국으로 건너갔다. 국내에서 루키로 한 시즌을 마치자 마자 언어와 문화, 환경이 생소한 LPGA투어에 도전하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다. 투어 경험이 일천한 선수가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버거운 경쟁을 하다보니 적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성적이 나지 않자 자신감도 떨어졌고 컷 통과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백규정의 실패는 고진영에게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됐다. 고진영은 루키 시즌을 마치고 3년을 더 국내무대에서 뛰었다. 그러면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해외 경기에 꾸준히 나갔다. 2015년엔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최종일 15번홀까지 선두를 달리기도 했다. 박인비에게 역전우승을 허용했지만 자신감을 얻는 계기였다. 고진영은 이런 식으로 해외무대 진출을 위한 절차를 착실히 밟았다.

운명의 장난인 듯 고진영은 작년 10월 KEB하나외환챔피언십에서 우승해 3년 전의 백규정처럼 LPGA투어 직행티켓을 손에 넣었다. 고진영은 그러나 쉽게 미국무대 진출을 결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장고(長考)를 거듭한 끝에 미국진출을 선언했고 데뷔전인 지난 주 ISPS 한다 호주여자오픈에서 와이어투와이어 우승을 차지했다.

백규정과 고진영의 경쟁은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같다. 백규정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선수다. 키 173cm로 체격 조건도 좋지만 여자선수중 래깅(lagging) 동작이 일품이다. 래깅은 다운스윙할 때 손목과 팔의 꺾인 각도를 그대로 유지시킨 채 내려오는 동작을 말한다. 래깅동작의 타이밍이 좋은 날은 6~7언더파를 우습게 친다.

고진영은 반대로 노력으로 만들어진 선수다. 고진영은 연습이나 경기를 마치면 아무리 피곤해도 정리운동을 빼먹지 않는다. 미국 진출을 결정한 후 체력을 강화하고 거리를 늘리기 위해 하체훈련도 충실히 소화했다. 한라장사급 허벅지를 만든 고진영은 유연성을 잃지 않기 위해 별도의 훈련도 거르지 않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힘든 훈련을 묵묵히 수행한 정신력을 높이 사야 한다.

고진영이 꽃길을 걷는 지금 백규정은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있다. 백규정은 4년 전 KLPGA선수권 우승으로 4년짜리 시드를 받았는데 올해가 마지막 해다. 재기를 꿈꾸며 이번 겨울 태국에서 단내나는 훈련을 하고 있다. 비워야 채울 수 있고 세상은 돌고 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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