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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늘집에서] 한국을 턱 밑까지 추격한 중국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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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데저트 클래식에서 강호 로리 매킬로이를 1타차로 제치고 우승한 중국의 신예 리 하오통.[사진=유러피언투어]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이강래 기자] 2009년 4월 중국 광저우 인근 둥관의 힐뷰 골프클럽에서 열린 한중투어 KEB인비테이셔널 첫날 프레스룸에 장리안웨이가 들어왔다. 그 순간 중국 기자들은 우루루 일어서 박수를 치며 경의를 표했다. 현장에 있던 한국 기자들은 의아한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선 그런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리안웨이는 ‘중국 골프의 아버지’ 같은 존재다. 광저우 인근 주하이에서 태어난 장리안웨이는 캐디로 일하다 중국아마추어선수권을 3연패한 뒤 1994년 프로로 전향했다. 중국 최초의 프로골퍼였다. 주하이는 1984년 중국 최초로 골프장이 들어선 도시였다. 장리안웨이는 2003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칼텍스 마스터스에서 어니 엘스를 1타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중국인 최초로 유럽투어에서 우승한 장리안웨이는 이듬해 ‘명인열전’ 마스터스에도 중국인 최초로 출전했다.

술렁거림이 가라앉고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하지만 분위기는 냉랭했다. 한국 기자들이 질문을 주도했는데 대부분 중국과 한국선수간 기량 차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장리안웨이가 폭발했다. “언제쯤 한국 기업이 중국 땅에서 개최하는 골프대회에서 중국선수가 우승하리라 보는가?”란 질문에 장리안웨이는 “한국기업이 중국 땅에서 우승상금 100만달러짜리 대회를 개최하는 날 중국선수가 우승할 것”이라고 시니컬하게 대답했다. 당시 KEB인비테이셔널은 총상금 4억원에 우승상금은 8000만원에 불과했다.

정확히 10년후 중국 골프는 여타 다른 분야처럼 한국을 추월하려 하고 있다. 28일 중국의 22세 신예 리 하오통은 유러피언투어 두바이 데저트 클래식에서 강호 로리 매킬로이의 추격을 뿌리치고 우승했다. 강풍으로 파행운영된 LPGA투어 개막전(퓨어실크 바하마 클래식)에선 중국의 펑샨샨이 공동 3위에 올랐다. 펑샨샨은 중국인으론 사상 처음으로 세계랭킹 1위에 오른 선수다. 그녀는 이미 2012년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2016 리우올림픽에선 동메달을 획득했다. 펑샨샨은 '중국 골프의 어머니' 같은 존재다.

아마추어무대에서 중국의 도약은 더욱 두드러진다. 작년 10월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열린 아태 아마추어 챔피언십은 중국선수들의 독무대였다. 17세 린위신이 우승을, 19세 앤디 장이 준우승을 차지했다. 중국선수 4명이 모두 톱5에 포함된 반면 한국 국가대표 4명은 톱10에 한명도 들지 못했다. 2009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는 이 대회에서 중국선수가 우승컵을 차지한 것은 세 번째였다. 세계적인 스타가 된 일본의 마쓰야마 히데키는 이 대회의 1,2회 대회 우승자다.

중국 골프는 한국 골프를 벤치마킹해 성장했다. 반일 감정으로 인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골프를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한국 골프를 모범답안 삼아 엘리트 골퍼들을 육성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준비과정은 과거 한국이 86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것과 똑같았다. 골프경기가 열린 드래곤레이크 골프클럽에서 6개월간 대표선수들을 합숙훈련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한국은 남녀 개인전과 단체전에 걸린 금메달 4개를 싹쓸이했다.

중국의 이민자들도 한국의 이민자들처럼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골프채를 쥐어주었다. 캘리포니아나 플로리다의 많은 골프아카데미엔 중국 아이들로 넘쳐난다. 세계랭킹 1위에 오른 펑샨샨도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적인 교습가인 게리 길크리스트의 지도 아래 성장했으며 아태 아마추어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거둔 앤디 장도 미국 이민자 가정 출신이다. 시진핑의 골프억제정책으로 인해 이런 성공사례를 본 중국의 부모들은 더 많이 아이들을 해외로 내보낼 것이다.

리 하오통의 모자 정면엔 벤츠가, 펑샨샨의 모자 정면엔 뷰익 로고가 달려 있다. 세계적인 자동차메이커들이 이들을 후원하는 이유는 중국의 거대한 시장 때문이다. 대부분 국내 기업의 지원을 받는 한국선수들에 비해 중국선수들의 후원환경이 좋을 수밖에 없다. 골프는 개인운동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력이 분명히 작용하고 그로 인해 중국 골프의 성장세는 가속화할 것이다. 10년전 모욕감을 느낀 장리안웨이가 이젠 회심의 미소를 지을 지 모르겠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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