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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키 칼럼] 골프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 아빠와 아들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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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의 사랑을 골프로 확인한 아버지의 담담한 이야기. [일러스트=김희영]


[헤럴드경제 스포츠팀] 골프 칼럼니스트인 유상건 상명대학교 문화기술대학원 교수가 지난 번에 쓴 골프 칼럼의 주제는 아버지와 얽힌 골프의 기억이었다. 이번엔 아빠의 입장에서 아들과 얽힌 ‘골프의 추억‘을 소개한다.

필자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다. 큰 아들은 현재 무시무시한 ‘고3 터널’을 지나고 있다. 거뭇거뭇한 콧수염이 난 지는 꽤 됐지만 가만히 옆에서 쳐다보면 여전히 다섯 살 때 모습이 떠오른다. 아이들의 모든 순간을 다 눈에 담아 두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해외에서 보낸 10년의 유학 시절을 시작한 그때가 우리 가족에게는 가장 큰 격동의 시기였기 때문인 것 같다.

큰 애는 막 다섯 살이 되던 2004년 7월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새벽에 일어나 20시간의 비행 후 텍사스 오스틴에 도착했다. 승용차 보닛위에서 계란 후라이를 해 먹을 수 있다는 그 뜨거운 곳에서 시차도 극복하지 못한 채 학교에 입학했다. 영어가 뭔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이 뭔 말을 많이 한다고, 학교에서 아무 문제도 없겠지’하는 안일한 생각에 아빠는 무사태평이었다.

스쿨버스 시간 때문에 새벽에 갔다 오후 3시나 돼야 집에 오던 아이는 언제나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해 거하게 ‘쉬’를 했다. 한 달 쯤 지나서야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을 할 줄 몰라 그 오랜 시간을 참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어쨌든 시간은 흘렀고 중학교 2학년이던 큰애와 필자는 학위과정을 마친 아내와 초등학생인 작은 아들이 귀국함에 따라 졸지에 해외에서 ‘부자만의 자취생활’을 하게 됐다. 남자 둘이 하는 생활은 좌충우돌 그 자체였다. 하루 세끼의 식사와 집안 청소, 빨래, 각종 공과금 납부 등 삶의 무게는 힘들게 유학생활 막판을 이끌어가던 중년의 사내에게는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매일 매일의 전쟁 같은 생활은 언제나 패배로 귀결된 듯 했다. 고립됐다는 소외감에서 오는 우울함과 학업 스트레스,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짓눌리는 아빠와 엄마의 부드러운 보살핌 대신 ‘투박한 배려’에 시달리는 아들의 생활은 ‘비틀거리는 동거생활’로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탈출구가 없어 보였던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영화에서 봄직한 멋있는 장면을 나름 흉내 내느라 가끔 이웃 아파트 단지의 테니스장에서 몰래 야간 테니스를 치거나 또 아주 가끔 캐치볼을 했다. 그런데 ‘부자간의 운동’시간은 늘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냈다. 아빠는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들의 플레이에 화를 냈고 아들은 그런 아빠에게 불만을 표시했다. 웃자고 집을 나섰지만 우리는 늘 서로에게 화를 낸 채 집에 돌아왔다.

중학교 3학년이던 1월 말 어느 날. 논문 마무리로 골치 아파하던 아빠에게 아들은 불쑥 “나 골프부 들어갈까?” 물어 봤다. ‘웬 골프? 치지도 못하면서....’ 그러나 의지가 확고해 보였고 ‘까짓 미국학교 골프부야 누구나 들어갈 텐데 못할게 뭐냐’는 생각에 오케이 사인을 줘 버렸다.

알고 보니 골프부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다.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했다. 마침 초등학교 때부터 골프를 가르치려고 준비해 놓은 채가 있긴 했다. 물론 본인이 원치 않아 창고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인디애나 블루밍턴의 위도는 대략 철원쯤 되고 서울 보다는 훨씬 춥고 눈도 많이 왔다.

그래도 우리는 매일 연습장에 가서 ‘초치기 연습‘을 했다. 귀가 떨어질 듯 아프고 손이 곱아 클럽을 잡기 어려워도 나갔다. 모르겠다. 왜 그리 열심히 연습했는지는. 어두울 때까지 부자는 골프장을 헤집고 다녔고 키는 여전히 초등학생만 했지만 그래도 힘이 세진 큰애는 열심히 드라이버를 휘둘렀다.

일주일의 연습 끝에 마침내 맞이한 디-데이. 수업이 끝날 시간에 맞춰 드라이버와 퍼터, 아이언 4개와 우드로 이뤄진 세트를 가지고 도착했더니...OMG!!! 빵빵한 성인용 클럽 세트와 전문적인 지도를 받았음에 틀림없는 건장한 청년 22명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닌가. 연습 스윙하는 소리가 내 자리에서도 들릴 정도였다. 뭔가 잘못 짚어도 크게 잘못 짚은 것이 틀림없었다.

내색도 못하고 망연자실해 있는 아빠를 뒤에 두고 아들은 씩씩하게 1번 홀 티잉 그라운드로 걸어갔다. 코치로 보이는 사람을 삥 둘러싸고 무언가 설명을 듣는 듯 하더니 아들이 부리나케 달려 왔다. “아빠, 코치 선생님이 여기 있으면 안된데.” 그러고 보니 동양인 아빠 혼자서만 참관하고 있었다. 클럽하우스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런데 아뿔싸! 저학년(고등학교가 4년제)이기 때문인지 가장 키가 작기 때문인지 우리 애가 첫 티샷을 준비하고 있었다.

‘젠장, 갤러리까지 많으니 틀렸네....’

‘헛스윙이라도 하면 웃고 난리가 날 텐데....’

오만가지 생각이 들며 좌절감에 빠진 그 순간, 바로 그 순간이었다.

‘깡’하는 너무나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클럽 하우스 옆에서 쳐다보니 공은 페어웨이 한가운데로 멀리, 아주 멀리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부르르 몸이 떨렸다. 더욱이 “와우!” 하는 동료들의 격려와 감탄사까지 들리니, 감격스러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영하 10도의 그 추운 날씨에도 꿋꿋하게 아빠를 따라 라운드를 돌던 아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아들은 그날 1차 테스트를 당당히 통과했다. 타수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었지만 아마도 첫 티샷의 인상이 강하게 남았는지 합격자 명단에 들었다. 그러나 1주일 후 열린 2차 테스트에서는 간단히 떨어졌다. 그 후 아들은 다시는 골프채를 잡지 않았다.

귀국 후 몇 번이나 물어보고 싶었지만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다. 왜 갑자기 골프팀에 들어가려 했는지를. 그러나 이제는 알 것 같다. 본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아빠를 기쁘게 하려는 마음을. 팍팍한 삶에 지친 아빠를 위로하려고 아들은 골프팀에 들어가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뒤늦게 깨닫고 나니 그 어린 아이의 마음에 가슴이 저며온다. 고맙다 아들아. 고맙다 골프야.

*위 글은 코오롱의 젊은 패션 브랜드 왁(www.waacgolf.com)의 와키진에 실린 내용입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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