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박노승의 골프 타임리프] ‘골프 과학자’ 브라이슨 디셈보의 소망
이미지중앙

젊은 골프 과학자, 브라이슨 디셈보.


24세의 골프 과학자

이번 주 칼럼 주제로 미국의 ‘골프 과학자’ 브라이슨 디셈보(Bryson Dechambeau)를 고른 이유는 그의 스윙이 지난 주까지 연재했던 위대한 볼 스트라이커, 모 노먼의 싱글 플레인 스윙과 같기 때문이다. PGA투어에서 매우 희귀한 스윙인데 모 노먼이 혼자서 자신의 스윙을 만들어 낸 반면, 디셈보는 <더 골핑 머신(The Golfing Machine)>이라는 스윙교본을 보고 배웠다.

길이가 모두 같은 아이언 클럽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디셈보의 나이는 24세. 쉽게 말해서 조던 스피스와 동갑이다. 본인이 스스로 골프과학자라고 소개하는데, PGA투어의 동료 모두가 동의한다.

이미지중앙

디셈보의 길이가 같은 아이언 클럽.


디셈보는 대학시절 미국 대학 개인선수권과 US 아마추어를 동시에 우승한 역사상 다섯 번째 선수인데, 과거에 누가 그런 업적을 남겼었는지 살펴보면 디셈보의 앞날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잭 니클라우스, 필 미켈슨, 타이거 우즈, 라이언 무어가 바로 디셈보의 선배격이다. 그들은 메이저 대회 37승을 합작해 냈다.

2016년에 프로가 된 디셈보는 큐스쿨을 거치지 않고 PGA 투어카드를 획득한 후 금년 7월 존 디어 클래식에서 PGA 투어 첫 우승을 신고했다. 평범한 프로골퍼가 아닌 젊은 골프과학자로 인정받는 디셈보의 배경에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이미지중앙

의 표지. 골프 선생을 위한 스윙교본이라고 할 수 있다.


골프 선생을 위한 골프교본 <더 골핑 머신>

시애틀의 보잉 사 엔지니어였던 호머 켈리(Homer Kelley, 1907-1983)는 34세에 골프를 시작했는데 스윙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자기를 가르치던 티칭프로에게 스윙을 분석해 원인을 알려 달라고 요청했지만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켈리는 혼자서 자기의 스윙을 분석해 보기로 결심하고 일주일 휴가를 받았다. 그러나 막상 시작해 보니 골프 스윙은 너무나 복잡했다. 1960년 보잉 사에 사표를 낸 켈리는 차고에 스윙 스튜디오를 차려놓고 본격적인 연구에 몰두했다.

결국 일주일을 목표로 시작했던 작업이 28년 만에 초고로 완성되었는데, 1969년 그 이론을 책으로 발간한 것이 <더 골핑 머신(약어: TGM)>이다. 켈리는 기하학 물리학의 원리를 도입하여 골프스윙을 도형으로 설명했는데 TGM이 골프레슨 분야에 끼친 영향은 대단하다. 미국 PGA에서는 TGM을 스윙레슨의 교재로 채택하려고 했는데 그 내용을 쉽게 풀어서 다시 썼더니 240페이지의 책이 600페이지가 넘게 되어 포기했다.

호머 켈리는 PGA의 스윙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미친 과학자였는지 아니면 스윙분석의 천재였는지 지금도 평가가 엇갈린다.

이미지중앙

벤 도일과 그의 레슨 카트. 고물상을 방불케 한다.


TGM 공인 티칭프로, 벤 도일

TGM을 인쇄한 켈리는 지인의 소개로 근처의 티칭프로인 벤 도일(Ben Doyle, ??-2014)의 프로샵을 찾아 갔다. 책을 빠르게 넘겨 본 벤 도일은 그 난이도를 한눈에 파악하고 우선 이 사람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지인의 소개로 왔으니 10분 정도 커피 한 잔은 대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당신을 더 좋은 골프선생으로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켈리가 자신있게 말했다.

‘나는 이미 충분히 좋은 선생이므로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제 시간을 뺏지 말아 주십시오.’
도일은 마음 속으로 대답했다.

이렇게 커피 한 잔을 위해 마주 앉았던 두 사람의 첫 미팅은 6시간이 걸렸다. 켈리가 스윙이론을 설명하기 시작하자 벤 도일은 점점 빠져들었고 미팅이 끝날 무렵 도일은 이미 훨씬 겸손해졌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가면서 스윙에 대한 무지함과 교만함을 부끄러워했던 도일은 TGM을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켈리의 집을 찾아 다니며 배움을 청하여 제1호 TGM 공인 티칭프로가 되어 평생 동안 TGM의 이론을 가르쳤다.

베른하르드 랑거, 톰 카이트, 스티브 엘킹턴, 보비 클람페트 등 수 많은 일류선수 들이 도일의 가르침을 받았다. 벤 도일은 골프 다이제스트가 매년 발표하는 미국의 베스트 50 티칭프로에 언제나 선정되었는데 그 50명 중에서 23명이 벤 도일의 가르침을 받은 티칭프로였다고 하니 TGM의 영향력을 상상할 만하다.

이미지중앙

벤 도일이 사용했던 스윙레슨 매트. 그는 TGM 이론의 전파를 위해 애썼다.


골프계의 이단아 디셈보

디셈보의 골프 스승 마이크 샤이(Mike Schy)는 벤 도일의 제자였고, TGM의 이론으로 디셈보를 가르쳤다. 그가 만들어낸 스윙이 현재의 싱글 플레인 스윙이다. 디셈보가 15세 때 TGM을 선물했는데 어릴 때부터 수학과 기하학을 좋아했던 디셈보는 며칠 만에 그 책을 거의 외우고 있었다.

디셈보가 TGM에서 발견한 이상적인 스윙은 ‘제로 쉬프트 스윙’ 이론이었다. 골퍼들은 클럽마다 길이가 달라서 각각 다른 스윙을 해야 하는데 모든 골프클럽을 하나의 스윙으로 칠 수 있다면 골프가 쉬워진다는 것이다. 고등학생 디셈보는 스승에게 아이언의 길이를 모두 똑같이 만들어 보자고 졸라댔다.

현재의 클럽은 짧을수록 헤드가 무겁고 롱 아이언은 헤드를 가볍게 만들어서 균형을 잡는 방식인데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이론에 대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버려진 아이언 세트의 헤드를 가져온 디셈보는 짧은 아이언 헤드에 구멍을 뚫어서 가볍게 만들고 롱아이언 헤드에는 납 테이프를 붙여서 무겁게 하여 무게를 모두 동일하게 만들었다. 라이 바운스까지 동일하게 한 후 길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6번 아이언의 샤프트로 통일했다. 코스로 나가 8번과 5번을 테스트해 본 디셈보는 감격했다. 그가 계산했던 거리가 정확히 나온 것이다.

이미지중앙

2015년 US 아마추어에서 우승컵을 차지한 디셈보.


디셈보는 고등학교 시절 골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이에 디셈보를 스카우트하려고 대회에 따라다니던 명문 대학의 코치들은 그의 골프백에 들어있는 이상한 클럽들을 발견하고 고개를 저으며 그를 포기했다. 디셈보는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결국 일류 대학이 아닌 SMU로 진학한 디셈보는 골프선수로서는 희귀한 물리학을 전공으로 선택했고, 1학년부터 대표선수로 활약한 끝에 3학년 때 NCAA 개인 종합우승과 US 아마추어를 석권했다. 이후 대학 졸업을 포기하고 프로가 된 디셈보의 소망은 일반 골퍼들을 위해 골프라는 스포츠를 혁신적으로 쉽게 만들어서 골프 스포츠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젊은 골프 과학자의 소망이 현실화될 수 있을까? 그가 눈부신 성적을 올려서 같은 길이의 클럽과 TGM을 더 넓게 전파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진행형 궁금증이다.

■ 모 노먼과 디셈보의 싱글플레인 스윙을 비교한 영상


* 박노승 씨는 골프대디였고 미국 PGA 클래스A의 어프렌티스 과정을 거쳤다. 2015년 R&A가 주관한 룰 테스트 레벨 3에 합격한 국제 심판으로서 현재 대한골프협회(KGA)의 경기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건국대 대학원의 골프산업학과에서 골프역사와 룰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위대한 골퍼들의 스토리를 정리한 저서 “더멀리 더 가까이” (2013), “더 골퍼” (2016)를 발간한 골프역사가이기도 하다.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