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스포츠 타타라타] 아버지와 딸(Father and Daughter)
이미지중앙

그림책 <아버지와 딸>의 표지.


# 서정적 애니메이션의 대가, 미카엘 뒤독 더 빗(64, 네덜란드)의 대표작은 <아버지와 딸(Father and Daughter)>이다. 대사는 한 마디도 없고, 심지어 등장인물의 클로우즈업도 없는 이 단편 애니메이션은 2000년에 만들어져 안시, 자그레브, 히로시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대상을 차지했고,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았다. 갈색 모노톤의 그림은 요제프 이바노비치의 ’다뉴브 강의 잔물결‘을 배경음악으로 삼아, 아버지와 딸을 통해 담담하면서도 애틋하게 인생을 말한다. 8분 30초만 투자하면 되니, 안 보신 분들 꼭 보시기를 권한다. 이왕이면 조용한 곳에서 혼자 보는 것이 좋다. 참고로 같은 제목의 그림책도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 이정호 씨(52)는 장애인 탁구선수다. 휠체어 부분에서 제법 알아주는 고수다. 트럭을 몰다 11년 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불운에 굴하지 않고 원래 좋아했던 탁구로 인생의 활력을 찾았다. 운동신경이 좋아 전국장애인체전 등에서 호성적을 냈다. 체전에서는 2012년 남자복식 우승과 단식 준우승을 차지했고, 2013년에는 남자복식 2연패를 달성했다. 2014년 단식 준우승을 차지한 이 씨는 2015년과 2016년에는 사실상 탁구를 중단했다. 이유는 딸의 골프 때문이다.

이미지중앙

탁구 훈련 중인 이정호 씨.


# 이정은(21)은 초등학교 2학년 때 골프를 시작했다. 자신이 4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아버지를 닮아 운동신경이 좋았기 때문이다. 넉넉지 못한 집안환경에 실력도 신통치 않아 5학년 때 골프를 접었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 다시 골프채를 잡았다. 철이 들었을까, 이때부터 골프가 잘 됐다.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발탁됐고, 고2 때는 베어크리크아마추어골프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체육대학에 진학했고, 2015년 광주 U대회 2관왕에 이어, 프로로 전향한 후에도 2016년 KLPGA 신인왕, 2017 롯데렌터카여자오픈 우승, 그리고 지난 주 US여자오픈 5위까지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다.

# 2017년 4월 딸이 프로 첫 우승을 차지하자, 이정호 씨는 다시 탁구라켓을 잡았다. 이제는 프로로 충분히 홀로서기가 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2년의 공백이 있었지만, 운이 좋았는지 2017 장애인체전(9월 15~19일)의 전남대표로 선발됐다. 7월 딸이 US여자오픈에 출전하기 위해 미국으로 갈 때 자신은 용인집을 떠나 순천으로 향했다. 장애인체전을 앞두고 고향에서 집중훈련을 하기 위해서였다. 공백기간이 있어 좋은 성적을 장담하기 어렵지만, 복식 우승과 단식 입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정은이에게 선수는 어때야 한다며 많은 얘기를 했는데, 사실 저도 선수입니다. 정은이가 프로로 우승도 하고 계속 커나가는 만큼 저도 탁구선수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네요.”

이미지중앙

2017 US여자오픈 기간 중 현지언론과 인터뷰 중인 이정은.


# 아버지와 딸은 비슷한 점이 많다. 이정은은 주변에서 ‘애늙은이’로 통한다. 어린 나이에도 속이 깊다는 평을 들어왔다. 여기에 겸손하고 성실하니 좋아할 수밖에 없다. “이상하게 이정은한테는 잘해주고 싶어요. 투어생활을 하느라 수업에 나오기가 힘들 텐데 출석 및 리포트 등 학교생활을 하려고 많이 노력해요.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가 없는 타입이죠.” 한체대에서 이정은을 가르친 한 교수의 말이다. 이정호 씨도 비슷하다. 프로 데뷔와 함께 여러 곳에서 매니지먼트 계약을 제의해 왔지만, 조건 대신 사람 하나만 보고 결정했다. “골프도 골프지만 먼저 사람이 돼야죠. 정은이가 성적보다는 오랫동안 즐겁게 골프를 할 수 있는 좋은 골퍼가 됐으면 합니다.” 이정호 씨는 딸과 관련해 인터뷰를 하지 않을 정도로 여느 골프대디들과는 다르다.

# 유전적으로 딸은 엄마보다는 아버지를 더 많이 닮는다고 했다. 아버지를 닮은 이정은은 초등학교 때부터 골프노트를 써오고 있다. 자신의 보물 1호란다. 이쯤이면 멘탈스포츠인 골프에서 이정은이 강한 이유를 알 수 있다. US여자오픈 마지막 날, 까칠하기로 소문난 크리스티 커와 동반플레이를 했고 늑장플레이 등으로 자기 페이스를 잃을 수 있었지만 이정은은 5위의 호성적을 냈다. 영화 <아버지와 딸>은 평생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딸이 마지막 순간 아버지와 포웅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정호-정은 부녀의 ‘아버지와 딸’은 현재진행형인 까닭에 앞으로 더 많은 얘기가 나올 듯싶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 영화 <아버지와 딸>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