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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수정의 장체야 놀자] 성남시 조정선수단의 도민체전 도전기

“감독님, 우리 학생이 5월 도민체전에 성남시 대표로 참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학교 수학여행 일정과 대회가 겹치고, 선수가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서 팔에 깁스를 했어요. 열심히 지도해주셨지만 참가할 수 없어 전화드려요.” 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진 것처럼 대회를 한 달 앞두고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한 선수가 빠지면 대회를 준비했던 3명의 선수가 단체전에 참가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3월과 4월은 도대회를 준비하기 위한 중요한 시기이다. 이런 시기에 개인적으로 엄청난 ‘선물’이 왔다. 그것은 바로 임신이었다. 임신초기로 입덧과 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황에서 9명의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것은 지금까지의 지도경험 중 힘든 시간이었다. 입덧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음식 섭취를 하면 변기로 직행하고, 수시로 헛구역질을 하며 기력이 떨어졌다. 지도를 하면서도 입덧은 수시로 올라와서 얼음물을 마시며 훈련에 임했다. 소리를 질러야 하는 상황에서 배에 무리가 가고 배뭉침으로 아이에게 무리가 가는 것이 느껴졌다.

‘울고 싶어라, 울고 싶어라 이마음.’ 이런 노래가사가 떠올랐다. 하지만 울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지도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바로 시체가 돼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남편에게 푸념하는 것으로 힘든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을 벗어나기엔 걸리는 것이 많았다. 힘든 훈련에 임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떠오르며 번뇌의 시간은 깊어졌다. 나만 참고 견디면 되겠지라는 무지한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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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조정대표 9명의 선수들이 제7회 경기도장애인체육대회에 참가해 경기 전 몸을 풀고 있다.


감독으로서의 선택

무기력해진 지도자에게 선수들은 무거운 책임감을 안겨주었다. 힘든 조정을 하면서 손바닥에 물집이 생겨도 묵묵히 참아내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개인적인 임신의 고충은 감당해야 할 일이 되고 말았다. 감독이라는 직책은 모든 것을 다 맡아야 했다. 장애인지도사로서 짧은 근무시간(임신초기 단축근무) 속에서 휴식보다는 시간을 알차게 지도하는 것에 올인 해야 했다. 2대의 장비로 9명의 선수를 훈련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법.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선수들에게 조정의 기본기와 실력 향상을 위한 훈련 방법을 실행해야 했다.

글머리에서 언급했듯이 대회는 2주 앞으로 다가오고 선수를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래도 포기는 없는 법. 3일 간의 수소문 끝에 성남시 지적장애 여자선수를 확보했다. 단체전에서 몇 위를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고, 선수 모두가 단체전에 출전할 기회를 마련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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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경기도장애인체육대회 지적장애 혼성 닫체전에 참가한 선수들이 경기를 펼치고 있다.


성남시 조정 대표는 아무나 하나

시각 선수들은 성인으로 구성되어 각자의 일을 하고 있다. 로윙머신 한 대를 가지고 선수들이 훈련할 수 있도록 스케줄을 조절해 지장이 없도록 했다. 지적장애 선수들은 4명의 학생과 직장이 있는 1명의 선수로 구성되었다. 학교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고, 기관과의 협조가 잘 이루어져야 했다. 1대의 로윙머신으로 5명의 선수가 훈련을 했다. 학교도 다르고 선수들의 훈련 시간도 다 달랐다.

강화훈련은 10번 이상 이루어져야 했다. 선수들에게 훈련비와 훈련용품 등이 지급된다. 장애인체육회 관계자의 격려도 있었다. 하지만 9명의 선수가 한데 모여 훈련을 할 시간과 공간적 상황이 마련되지 않았다. 장애 유형별 선수들이 모여서 각자의 상황을 파악하고, 노력할 뿐이었다. 하지만 조정은 정직한 운동으로 몇 번의 훈련으로 기량이 향상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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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경기도장애인체육대회 시각장애 혼성단체전에 참가한 선수들의 모습.


지적장애 선수들은 학교 선생님들의 협조를 받아 스케줄을 조정한다. 선생님들은 선수를 함께 이끌어주는 까닭에 큰 도움이 된다. “성남시를 대표로 출전하는 자부심, 그리고 힘들지만 성취감을 느끼면서 훈련하는 모습을 보면 참 대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열정적으로 지도해주는 감독님(필자)이 있어 감사해요. 임신을 했는데도 정말이지 열심히 하시네요. 몸을 챙겨가면서 하세요.” 한 교사분의 말씀에 울컥했다.

성남금융고등학교의 남녀 학생 2명이 성남시 지적장애 조정 대표로 참여한다. 점심시간이나 오전 오후 스케줄에 여유가 있을 때 훈련장을 가면 지금까지 훈련했던 것을 자랑하느라 선수들의 수다가 마르지 않는다. 그리고 각자 작성하는 훈련일지를 내게 보여주고 확인을 받느라 바쁘다. “선생님 제가 3,000m을 열심히 탔어요.” 이런 말들이 이어진다.

선수들이 힘든 훈련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을 기특할 뿐이다. 보통 힘든 조정을 하면 도망가기 바쁜데 말이다. 한 학생선수는 훈련만 하면 손바닥에 물집이 잡힌다. 그런데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엉망이 돼 가는 그의 손을 보면 나도 모르게 숙연해진다. 기량을 떠나 참 멋진 선수들이다.

경기도장애인체육대회 참가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조정 대회의 날이 밝았다. 선수를 데리고 일찍 대회장으로 출발하기 위해 지방에 사는 시부모님에게 4살 아이의 육아를 부탁했다. “오늘은 오로지 선수에게 올인한다”는 마음이었다.

오전에 열린 경기는 12대의 로윙머신에서 각 시군을 대표하는 선수가 1,000m 기록을 위해 열전을 펼쳤다. 나는 뒤에서 배를 움켜쥐며 선수들이 잘 들을 수 있도록 크게 구령을 했다. 선수들이 힘든 지점에 달할 때는 정신이 들도록 더욱 큰 소리를 질렀다.

경기가 한창 진행되는 사이 성남시장애인체육회 상임부회장과 관계자들의 격려 방문이 있었다. “선수들의 기본기가 탄탄한 것이 느껴지네요. 열심히 했군요. 그리고 곽 감독은 무리하지 말고 안정을 취하길 바랍니다. 정말 모두의 열정이 느껴져요.” 이런 말 한 마디에 그동안의 모든 고충이 봄날 눈녹듯 사라지는 법이다.

오후 경기는 4인 혼성 단체전이었다. 먼저 지적장애 유형이 출전했다. 서로 믿고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강했던 것일까, 초보자인데도 불구하고 각자 기량의 최대치를 끌어올려 단체전 3위를 기록했다. 다음으로 열린 4인 혼성 시각장애 부분은 치열했다. 부천시는 주 3회 훈련을 집중적으로 한 까닭에 기량이 우수했다. 1위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단체전은 서로의 신뢰와 믿음이 중요하다. 선수와 감독이 하나 되어야 한다. 출발 신호가 울리고 우리 선수 4명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2초 차이로 우승을 차지했다.

“제7회 경기도장애인체육회 조정 부분 준우승(2위)은.....성남시입니다. 단체전 혼성 시각 금메달, 혼성 지적 동메달, 개인전 시각 여자 은메달, 시각 남자 동메달 등을 차지했습니다. 선수단은 단상으로 나와서 메달과 트로피를 수여하겠습니다. 모두 박수를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동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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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 선수들이 제7회 경기도장애인체육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시각장애 부분의 A선수는 “1,000m 경기를 하는데 500m부터 고비가 와서 포기하고 싶었어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옆에서 감독님의 구령 때문에 끝까지 했죠. 조정 참 재미있어요. 이번 대회만 참가하고 그만하려고 했는데 하다 보면 매력이 있어 포기가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상비군에서 활동하는 또 다른 시각장애 B선수는 “조정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맞이했어요. 성남시를 대표로 대회에 출전하고, 상비군에 발탁된 것은 꿈만 같아요. 정말 행복해요”라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성남시 조정감독인 나는 이번에 9명의 성남시 조정선수들을 보면서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 그래서 개인적인 내용이고, 좀 오그라들 수도 있지만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있는 그대로 글로 옮겼다. 이런 감동이야말로 장애인스포츠지도사로 10년 간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곽수정 객원기자 nicecandi@naver.com]

*'장체야 놀자'는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에게도 유익한 칼럼을 지향합니다. 곽수정 씨는 성남시장애인체육회에서 근무하고 있고, 한국체육대학에서 스포츠언론정보 석사학위를 받은 장애인스포츠 전문가입니다. 장애인스포츠와 관련된 제보를 기다립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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