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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구이슈] 토티 은퇴로 본 ‘충성과 의리의 사나이’ 원클럽맨

[헤럴드경제 스포츠팀=김현웅 기자] 로마의 살아있는 전설 프란체스코 토티가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는 발표를 했다. 토티는 1989년 AS 로마 유소년 팀에 합류한 이후로 30년 가까이 AS로마에서만 뛰고 있는 원클럽맨이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원클럽맨

원클럽맨은 혼자의 의지만으로 쉽게 달성할 수 있는 타이틀이 아니다. ‘변방 국가’나 작은 도시 출신이라면 그곳에서 나고 데뷔한 후 빅클럽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스타플레이어는 원천적으로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원클럽맨은 꿈도 꾸지 못한다.

이탈리아와 유벤투스의 전설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는 2012년 호주의 시드니FC로 이적하기 전까지 20년간 유벤투스에서 뛰었기에 원클럽맨이 ‘될 뻔 했다’고 아쉬워하는 축구팬이 많다. 그러나 사실 델 피에로는 유벤투스가 아닌 칼치오 파도바라는 작은 클럽에서 1991년 프로에 데뷔한 후 1993년에 유벤투스로 적을 옮긴 ‘과거’가 있다. 애초부터 원클럽맨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던 것이다.

또 선수생활 말미에는 선수 본인의 선택이 큰 영향을 끼친다. 특히 미국이나 중동 등 변방 리그에서 나이 든 스타 선수들에게 거액의 연봉이나 새로운 도전 기회를 제의하면서 갈수록 원클럽맨이 줄어가고 있다. 리버풀의 영원한 레전드이자 원클럽맨으로 남을 것 같았던 스티븐 제라드가 현역 마지막 시즌을 미국 MLS의 LA갤럭시에서 보낸 것이 대표적인 예다. 2015년 카타르 알 사드로 이적하며 20여년의 바르셀로나 ‘원 커리어’를 끝마친 사비 에르난데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들과 비슷한 시기를 두 팀의 센터백 대들보로 활약했던 제이미 캐러거와 카를레스 푸욜이 원클럽맨으로 커리어를 끝마쳤기에 당시 팬들의 아쉬움을 더했다.

이렇게 어려운, 본인의 실력뿐 아니라 행운도 따라줘야만 얻을 수 있는, 원클럽맨의 커리어를 완수한 대표적인 선수에는 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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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클럽맨으로 은퇴하는 '로마의 황제' 프란체스코 토티. [사진=AS로마 홈페이지]


‘로마의 황제’ 프란체스코 토티

지역 라이벌 라치오와의 계약을 뿌리치고 AS로마와 계약한 토티는 유스팀과 리저브에서 뛰어난 성장세를 보였다. 1993년 3월 프로 데뷔전을 치르며 세리에A에 나타난 그는 이듬해 9월 세리에A 개막전인 포지아와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기록하며 초특급 신예의 탄생을 알렸다.

원터치로 시도하는 스루 패스가 화려하고, 힐패스와 숏패스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또한 높은 탈압박 능력과 몸싸움 능력을 바탕으로 한 드리블돌파로 로마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였다.

팀의 공격자원의 부재로 스팔레티 감독에 의해 06-07시즌 제로톱으로 기용된 토티는 시즌 32골, 리그 26골을 기록하며 세리에A 득점왕과 유러피안 골든슈(골든 부츠)를 수상하며 유럽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토티에게도 노쇠화가 찾아온다. 젊고 창창한 경쟁자들이 합류하며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 와중에도 조커로 쏠쏠한 활약을 펼친다. 올 시즌에는 리그 15경기 2골 3도움을 기록하며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AS 로마는 그라운드를 떠나는 토티를 위해 그의 등번호 10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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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과 함께 뛰기도 했던 '맨유의 전설' 라이언 긱스. [사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페이스북]


‘맨유의 전설’ 라이언 긱스


(사진2) ‘왼발의 마법사’, ‘맨유의 전설’로 불리는 라이언 긱스. [사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페이스북]

왼발의 마법사로 유명한 라이언 긱스는 1991년 3월 2일 에버튼과의 경기에서 데뷔했다. 폴 스콜스, 개리 네빌, 니키 버트 등과 함께 ‘퍼기의 아이들’로 불리며 맨유의 부흥을 이끌었다.

빠른 스피드와 드리블을 통한 돌파와 정확한 왼발 크로스, 그리고 정확한 패스는 긱스의 강점이었다. 윙어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 긱스는 중앙 미드필더로도 좋은 능력을 보였다. 그는 맨유에 있는 동안 13번의 리그 우승, 4번의 FA컵 우승, 3번의 리그컵 우승, 두 번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 각각 한 번의 유럽 슈퍼컵과 인터콘테닌탈 컵, 클럽월드컵 우승, 그리고 9번의 커뮤니티 실드 우승으로 총 34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긱스는 맨유에서 24시즌을 뛰고 2014년부터 맨유에서 수석코치로 활동하다가, 무리뉴가 맨유 감독으로 부임하자, 29년 만에 팀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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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의 첫 원클럽맨이 된 '카탈루냐의 심장' 카를레스 푸욜. [사진=FC바르셀로나 홈페이지]


‘카탈루냐의 심장’ 카를레스 푸욜


(사진1) 카탈루냐의 심장 카를레스 푸욜(우). [사진= FC바르셀로나 홈페이지]

뼛속부터 카탈루냐 태생인 푸욜은 1995년 라 마시아에 입단했다. 1999년 루이 반 할 감독 아래에서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는 데뷔 시즌에만 30경기 이상을 소화하며 1군에 자리 잡았다. 본래 라이트백에서 뛰던 푸욜은 02-03시즌 센터백으로 보직을 변경하게 되는데 이것이 ‘신의 한 수’였다. 보직을 바꾼 이후 푸욜의 실력은 갈수록 늘어났다. 센터백치고는 작은 신장에도 불구하고 제공권에서 쉽게 밀리지 않았으며 태클 또한 뛰어났다.

2004년 팀의 주장 루이스 엔리케가 은퇴하자 푸욜은 그의 뒤를 이어 바르셀로나의 주장이 된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팀을 유럽 최정상으로 이끌었다. 그는 40살까지 현역으로 뛴다고 선언했지만 노쇠화와 부상으로 인해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다가 2014년 5월 16일 36살의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다. 15년 동안 바르셀로나만을 위해 뛰어온 푸욜은 바르셀로나 최초의 원클럽맨이라는 영예를 차지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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