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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수정의 장체야 놀자] 그녀에게 도전은 기쁨이다 - 스노보더 에이미 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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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보드 위의 댄스(On My Own Two Feet)' 표지.


어느 날 사무실 책상 위에 한권의 책이 놓여있었다. 제목은 <스노보드 위의 댄스(On My Own Two Feet)>였다. 필자는 ‘주문하지 않았는데? 무슨 책이지?’라며 호기심어린 눈으로 보낸이를 확인했다. 확인한 결과 장애인칼럼을 쓰고 있는 필자에게 소개하고픈 선수여서 출판사측이 직접 보냈다고 했다. 미국의 유명한 스노보더로 2014 소치 패럴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에이미 퍼디의 자서전이었다. 책을 만난 후 곧바로 한 장 한 장 책을 넘기며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었다.

19살 때 세균성 수막염을 앓아 죽음의 문턱까지 간 에이미는 기적처럼 살았다. 그리고 병마와 싸운 후 신장 기능과 왼쪽 귀의 청력을 잃었고 의사에게 “두 다리를 절단해야 합니다”라는 소식을 접했다. 급박한 상황에서 그녀의 부모는 스노보드를 좋아하는 에이미를 위해 취미로 운동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고,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두 다리를 절단했지만 휠체어보다는 의족을 통해 스노보드를 탈 수 있었으면 했다.

병원에 있던 에이미는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나 이제 장애인이에요?”라고 물었다. 병간호 하던 엄마는 컵을 내려놓고 에이미 옆으로 걸어와 소파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잘 들어, 아가야. 일부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면, 맞아 넌 장애인이야. 하지만 네가 장애인이 될 일은 영원히 없어. 너는 무슨 라벨이 아니야. 넌 내 딸이야. 그리고 난 네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고 믿어.” 엄마는 꿈 많은 에이미에게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진정어린 조언을 해주었다.

“사람들은 너에게 ‘핸디캡(handicap, 장애)’이 있다고 할거야. 하지만 말이 안 되는 게, 너는 여전히 양 손이 있잖아. 정확히 말하면 너는 ‘풋(foot)디캡’이지!” 언니 크리스털의 말에 서로 깔깔거리며 웃었다. 에이미는 장애를 받아들이며 이 상황을 극복하고 새로운 꿈을 향한 도전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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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이식 수술 다음날 아버지와 에이마가 병원 복도를 걷고 있는 모습. 왼쪽 에이미. [사진=에이미 페이스북]


라스베이거스 출신인 에이미는 어릴 적부터 눈을 좋아했다. 그리고 중학교 시절 첫 시승을 한 스노보드와 사랑에 빠졌다. 그녀의 꿈은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는 것과 매년 스노보드를 타는 것. 이 목표를 위해 마사지사 직업을 택해 돈을 모았다. 도전을 좋아했던 에이미는 새로운 지역에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며 일과 꿈을 키워나갔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희귀병으로 다리를 절단하고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처음 초보자 의족을 맞추며 몸에 익혔던 그녀는 절망이었다. 의족을 멀리 하려했지만 곧 열릴 언니 크리스털의 결혼식에 휠체어가 아닌 의족으로 당당하게 들러리를 하기 위해 남몰래 노력했다. 새로운 희망은 그녀를 움직이게 했고 새 다리를 얻은 지 겨우 며칠 만에 일어서서 아버지와 함께 춤을 추었다. 의족이 몸에 익숙해질 때, 신장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들었다.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신장을 이식 받고 더욱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병원에서 나오고 몇 달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 에이미는 165cm에 40kg도 채 나가지 않았다. 이때 운명처럼 다가온 작은 강아지 록시 키울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록시를 책임져야 했다. 매일 집 밖으로 도망가는 록시가 힘겹기도 했지만 강아지를 쫓아다니는 건 최고의 물리치료였다. 가장 힘든 시간에 록시를 통해 위로와 재활을 함께 했다.

에이미는 스노보드를 다시 타고 싶었다. 그리고 의족을 한 장애인스노보더를 찾아보았지만 주변에는 없었다. 친한 친구들과 스노보드를 타러 간 첫날 스키장에서 의족 2개는 몸과 분리됐고 3kg이 넘는 의족을 친구들이 옮겨주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포기란 없었다. 다시 스노보드에 도전했고, 우연히 TV에서 본 의족을 찬 스노보더에게 연락해 장애인스노보더로 첫 걸음을 내딛었다. 또한 인생의 벗 다니엘을 만나 인생을 설계하고 꿈을 키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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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는 두 의족을 당당하게 들어내놓으며 긍정에너지를 전파하고 있다. [사진=에이미 페이스북]


에이미는 “의족을 달고 액션 스포츠를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뭐가 필요하지? 그들이 써먹을 수 있는게 뭘까?”라고 다니엘에게 물었다. “조금도 없지. 하지만 우리가 뭔가를 만들어내면 어떨까. 장애에 적응해가는 운동선수들이 적어도 서로 알고나 지낼 방법 같은 거 말이야.” 진지한 답변이 나왔다. “온라인 포럼 같은 걸 만들어볼 수도 있겠다”는 그녀의 말에 다니엘은 “아니면 웹사이트를 하나 만들어도 좋고”라고 거들었다. “아니면 무슨 비즈니스 같은 걸 하면 어떨까?” 둘은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니엘이 옳았다. 인터넷을 이 잡듯이 뒤져도 단 한가지 자료도 찾아내지 못했다. 육체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전통적인 스포츠를 하는 방법에 관한 정보는 많았다. 많은 고민 끝에 비영리 단체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어댑티브 액션 스포츠(Adaptive Action Sports, AAS) 명칭으로 2005년 발족했다. 처음으로 후원한 프로젝트는 암벽등반 캠프였다. 처음부터 AAS를 전국적으로 키울 각오로 단체를 만들었다.

AAS를 통해 에이미와 다니엘이 이루고자 하는 큰 목표를 세웠다. 여건 상 원래 하던 일을 계속하며, 밤과 주말에 AAS 일을 함께 했다. ESPN(미국의 유명 스포츠방송)에서 매해 액션 스포츠 대회를 열었는데, 이는 당시 액션 스포츠의 올림픽 같은 대회였다. 이 대회에 장애인 스노보드를 익스트림 게임, 즉 엑스게임에 진입시키고 싶었다. 또 스노보드는 이미 동계 올림픽에 들어간 종목이었는데 패럴림픽이라고 들어가면 왜 안되겠는가? 패럴림픽에 정식종목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꿈을 키웠다. 마침내 꿈은 이루어지고 정식으로 2014 소치동계패럴림픽에 스노보드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에이미는 2014 소치 동계 패럴림픽에 스노보드 선수에 출전하기 위해 먼저 국가대표가 되기로 했다. 세계의 다양한 대회에 출전했고 결국 국가대표 선발이 되어 최상의 컨디션으로 몸을 만들었다. 그리고 2014 소치동계패럴림픽 동메달을 차지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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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정선 월드컬 스노보드대회에서 3위를 차지한 에이미(오른쪽). [사진=에이미 페이스북]


에이미는 지난 10일 강원도 정선 알파인 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패럴림픽 테스트이벤트 겸 2017 세계장애인스노보드월드컵 파이널 대회의 여자 크로스 경기에 출전해 3위에 올랐다. 아직 미국은 패럴림픽 대표선발전을 치르지 않아 확언할 수 없지만 현재 그녀의 목표는 내년 이곳에서 열리는 평창 패럴림픽 시상대에 오르는 것이다.

에이미가 원하는 것들을 적어놓으면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다. 생각을 바꾸고 원하는 것은 주저 없이 도전했다. 실패도 있었지만 성공을 위해 노력했고 지금도 그녀의 도전은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의족을 차고 ‘댄싱 위드 더 스타’ 결승전까지 참가하며 많은 대중에게 감동과 사랑을 받았고 영화배우에 도전하기도 했다. 또 TED에서 강의를 하면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있다. 잠시라도 그녀의 삶을 보고 싶다면 <스노보드 위의 댄서>를 읽어보길 추천한다. 절망적인 상황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이를 멋지게 극복하고 있는 그녀에게 박수를 보낸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곽수정 객원기자 nicecandi@naver.com]

*'장체야 놀자'는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에게도 유익한 칼럼을 지향합니다. 곽수정 씨는 성남시장애인체육회에서 근무하고 있고, 한국체육대학에서 스포츠언론정보 석사학위를 받은 장애인스포츠 전문가입니다. 장애인스포츠와 관련된 제보를 기다립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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