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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종훈의 빌드업] (1) ‘미생’ 임근영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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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현대고 시절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선 임근영. [사진=원지영]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정종훈 기자] 앞길이 창창할 것만 같았다. 연령별 대표는 물론이고, 주장 완장까지 찾으니 두려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랐다. 학교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곳은 전쟁터 같았다. 아픔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과거를 잊고 다시 우뚝 서려고 한다. 최근 태국 리그에 진출한 임근영(22)의 이야기다.

임근영의 10대는 탄탄대로였다. 수상내역만 살펴봐도 화려하다. U-14 아시아 선수권 최우수선수상(2009), 춘계중등축구연맹전 최우수선수상(2010), 도요타컵 MVP(2011), 청룡기 전국 고교 축구대회 최우수선수상(2013). 수상내역이 웅변하듯 그는 울산현대중-현대고(울산 현대 유소년 팀)를 거치며 최고의 주니어시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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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완장을 차고 대표팀에 나선 임근영(4번). [사진=선수 본인 제공]


임근영은 자연스럽게 청소년 연령별 대표팀 명단에도 꾸준히 이름을 올렸다. 활약도 좋았고, 대표팀에서도 줄곧 주장 완장을 찼다. ‘제2의 기성용’이라 불리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중원에서의 패스와 경기조율 능력이 기성용을 쏙 빼닮았다. 당시 U-14 대표팀 감독이었던 정정용 감독이 “현대축구에서 대형 수비수로 성장하려면 기본적인 수비능력 외에 볼 소유 능력과 패싱력을 갖춰야 하는데 그 부분이 굉장히 좋다. 센스도 있고 킥력도 좋다. 미래가 기대되는 수비수”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만큼 지도자의 신뢰도 깊었다.

2013년 12월, 신인을 뽑는 2014 K리그 드래프트가 열렸다. 이날 많은 팬은 임근영의 행방에 주목했다. 울산의 우선지명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고 드래프트 명단에 임근영의 이름이 올라왔다. 이는 울산이 아닌 타 구단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각 측구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울산이 임근영의 큰 부상 때문에 우선 지명권을 포기했다’, ‘임근영이 일본으로의 진출을 준비한다’ 등 여러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임근영은 “울산에 정말 가고 싶었는데 바로 받아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른 곳에서라도 뛸 수 있도록 우선지명을 풀어달라고 말했어요. 제 꿈은 대학에 진출하기보다는 프로 선수였거든요”라며 소문을 부인했다. 덧붙여서 그는 “제가 부상이 많다고 소문이 났는데 절대 아니에요. 고등학교 때 발목 다쳐서 쉰 것을 제외하면 부상이 없었어요. 좀 억울하네요(웃음)”라고 강조했다.

기대와는 달리 프로 입성이 순탄치 않았다. 드래프트 당일 각 구단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임근영은 당황했다. 그러던 중 한 스승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청소년 대표팀 감독으로 지내던 정정용 감독이었다. 정 감독이 대구FC의 수석코치로 자리를 옮기면서 임근영을 추천한 것. 그의 추천으로 임근영은 대구에 프로를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됐다.

프로 첫 무대도 쉽지 않았다. 대구에서 묵묵하게 훈련하며 기다렸지만, 그에게 출전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대구에서 단 한 경기도 피치를 밟지 못하며 쓸쓸히 팀을 떠나야 했다. 불운이 연이어 겹쳤다. 소속팀에서의 출전 문제가 대표팀까지 이어졌다. 이 때문에 미얀마에서 열렸던 2014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챔피언십 최종명단에 승선하지 못했다. 김건희(수원삼성), 황희찬(잘츠부르크), 서명원(울산현대) 등 내로라한 대형 유망주들이 출전한 대회였기 때문에 아쉬움은 더 컸다. 그의 큰 목표였던 2015 뉴질랜드 FIFA U-20 월드컵 출전은 챔피언십 예선 탈락으로 아쉽게 물거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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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코러스무스탕의 유니폼을 입고 성인 무대에 도전한 임근영(15번). [사진=대한축구협회]


더 큰 시련이 닥쳤다. 많은 프로팀의 문을 두들겼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연령별 대표팀을 거쳐 왔던 그였기 때문에 이런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자존심을 굽히고 낮은 무대로 눈을 돌렸다. K3리그 중랑코러스무스탕에 합류했다. 다소 어색한 노란 유니폼을 입고 묵묵하게 때를 기다렸다. 임근영은 “좋은 팀에서만 있다가 K3에 처음 합류했을 때 ‘이런 곳에서 해야 되나’ 생각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열심히 하는 동료들에게 간절함을 배웠어요.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다 잡을 수 있었어요”라고 털어놨다.

2015년 여름, 다시 한번 임근영은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KBS 2TV에서 방영한 ‘청춘FC 헝그리 일레븐'으로 전파를 탔다. 테스트를 통해 합격한 그는 중랑을 떠나 안정환(축구 해설위원), 이을용(FC서울 2군 코치) 공동 감독과 함께 벨기에 투비즈로 향했다. AFC 투비즈(벨기에), AS낭시(프랑스), 서울 이랜드 FC, FC서울, 성남FC 등 명문 프로팀들과의 부딪힘 속에서 깨닫고 느꼈다. 경기 때마다 찾아주는 많은 팬의 지지를 받으며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심고 다시 도전자의 마음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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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FC 헝그리 일레븐을 통해 많은 축구팬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린 임근영. [사진=선수 본인 제공]


청춘FC 종영 후 임근영은 다시 프로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좌절을 겪었다. 성남FC 최종 테스트에서 불합격한 것. 1, 2차 테스트에 합격한 뒤 연락이 오지 않아서 탈락이라고 생각한 그는 고향 통영으로 내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3차 테스트 당일 오전, 성남으로부터 3차 테스트에 합류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임근영은 “사실 3차 테스트에 가지 못한다고 말했어요. 성남 측에서 오라고 해서 간신히 현장으로 갔지만 10분도 뛰지 못했어요. 제 실력을 보여주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어요”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결과가 좋지 않자 다른 진로를 고민했다. 그러던 중 안정환 위원의 ‘한 번 더 도전해봐라’라는 말에 다시 힘을 얻어 재도전에 나섰다. K3 무대를 다시 선택했다. 서울UTD에서 잔디를 밟으며 감각을 유지했다. 하지만 성장은 정체됐다.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은 탓이었다. 정신적으로 방황도 많이 했다. 자신과 함께 뛰던 동료들이 중계 카메라에 잡히고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다. 그들과 자신의 위치를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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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UTD에서 한 시즌 동안 감각을 유지했다. [사진=한규빈]


마음을 고치고 이내 축구화 끈을 다시 조여 맸다. 이번에는 태국 무대에 도전한다. 지난 2일 서울UTD는 구단 SNS를 통해 "2016 시즌 입단해 활약한 임근영이 태국 파타야 FC로 이적한다"고 알렸다. 태국 4부 리그에 속한 할렐루야 파타야 FC에서 커리어를 이어갈 전망. 그는 “많은 고민 끝에 파타야에 왔어요. 이번 도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간절해요. 감사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아직까지 내가 포기하지 않았어요”라며 다부지게 말했다.

임근영은 수많은 좌절과 시련으로 20대 청춘 내내 아팠다. 하지만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그리고 또 한 번 속아본다. 그 자신에게도 밝은 날이 올 것이라고.

“밑바닥까지 왔기에 이제 올라갈 날만 남지 않았나 싶어요. 처음에는 환경 탓을 많이 했는데 축구는 환경이 아닌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배웠어요.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면 저도 빛을 보지 않을까요?”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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