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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2] (11) 베트남 전쟁 중의 축구 - 3 중대의 병사들
<헤럴드스포츠>가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2를 연재합니다. 앞서 연재된 시즌1이 기존에 출판된 단행본 '킥 더 무비'를 재구성한 것이라면 시즌2는 새로운 작품을 대상으로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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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에도 축구를 했던 사례는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1차 대전 당시, 참혹한 참호전을 벌이던 독일과 영국 병사들이 성탄절을 맞아 잠시 휴전을 하고 같이 축구를 했다는 너무나 유명하지요. 이 일은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영화로도 제작된 바 있습니다.

규칙이 간단하고, 공 하나만 있어도 할 수 있는 축구는 전쟁 중에 병사들이 잠시 즐기기에는 가장 좋은 스포츠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심지어 축구보다는 미식축구를 더 좋아하는 미군들조차도 전쟁 중에 축구를 했고, 이를 소재로 한 것이 이번에 소개할 영화 <3 중대의 병사들 (The Boys in Company C>입니다.

이 영화는 실화를 소재로 하였으며, 1960년대의 자유롭고 반항적인 문화를 즐기던 젊은이들이 징집되어 베트남전의 참혹한 현실을 깨닫는 내용을 줄거리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베트남 전쟁이 장기화되고 또 미디어의 발달로 전쟁의 참혹한 영상과 사진들이 여과 없이 보도 되면서 미국 내에서 반전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 역시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전선에서 실제 전쟁을 겪었던 병사들의 눈높이로 그들의 애환을 그리고 있습니다. 훈련소에서부터 전선에 이르는 병사들의 모습을 그렸다는 점에서 유명한 베트남전 영화, <풀 메탈 자켓(Full Metal Jacket>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대체 이들이 축구와 관련한 어떤 일을 겪었기에 영화로까지 제작이 된 걸까요?

베트남을 탈출하기 위해 축구를 선택한 병사들

1967년,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미국. 여러 사연을 가지고 평범한 미국 청년들이 해병대 훈련소에 입소합니다. 나팔 청바지를 입고 덥수룩한 머리와 구레나룻을 기른 청년들의 모습은 흡사 엘비스 프레슬리나 히피족을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그들은 훈련소에 입소하자마자 머리를 깎이고 한 명의 해병이 되기 위한 힘든 훈련을 받게 되죠. “베트남 전쟁 중 해병은 50%의 확률로 전사했다. 훈련을 열심히 받지 않으면 너희들도 시체 운반용 백(bag)에 실려 집에 돌아올 것이다.” 라는 무시무시한 교관의 말을 들으며 말이죠.

영화는 3 중대에 배속된 병사들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들은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죠. 베트남전에 대한 기사를 쓰고 싶어 입대한 친구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고향에 두고 온 병사도 있죠. 또 사면을 대가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죄수도 있습니다. 이 중 흑인인 워싱턴은 자존심이 강하고 지는 것을 못 참는 성격입니다. 그는 자연스럽게 중대의 리더가 됩니다.

훈련이 끝나고 한 명의 해병으로 탄생한 3 중대 병사들. 그들은 격전지인 베트남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베트남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그들은 황당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미군의 적인 베트콩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베트남 사람들이 즐기는 스포츠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스포츠가 바로 축구입니다. 여기서 3 중대 병사들은 난생 처음으로 축구를 연습하게 됩니다. 스스로도 과연 이게 필요한 일인지 반문하면서요. 마침내 베트남에 도착한 병사들. 그들은 그 곳에서 참혹한 전쟁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민간인과 베트콩의 구분이 되지 않는 상황, 밀림과 논밭에는 각종 부비트랩과 지뢰들이 숨어 있습니다. 적이 누군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3중대의 병사들은 하나 둘 죽어나갑니다. 그들이 훈련소에서 들었던 시체 운반용 백에 실려서 말이죠.

이런 상황에 회의를 느낀 워싱턴. 그는 베트남을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지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마침 기회가 생깁니다. 미국의 동맹인 남베트남 군과의 친목 도모를 위한 축구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된 워싱턴 이 대회에서 우승한 병사들은 남은 복무 기간 동안, 전투 임무에서 빼내어져 후방과 인근 필리핀, 일본, 호주 등의 국가를 돌며 순회 축구 경기를 펼치는 특전을 받게 되는 거죠. 워싱턴과 3 중대 병사들은 바로 팀을 결성하여 대회에 참가합니다. 그리고 결승에서 남베트남 군인들로 이루어진 팀인 “드래곤스(Dragons)”와 맞붙게 됩니다. 하필이면 드래곤스의 책임자는 3 중대 병사들이 평소에 싫어하던 남베트남군 중령 트랑(Trang)이죠.

베트남을 떠난다는 희망과, 트랑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3중대 병사들은 결승전에서 드래곤스를 압도적으로 밀어붙입니다. 리드를 잡은 채 전반전이 끝납니다. 하지만 트랑 중령은 미군 측에 강한 항의를 하게 되죠. 수 많은 베트남 관중 앞에서 미군이 너무 압도적으로 이기면 두 나라의 우호 관계에 금이 갈 수 있다는 말을 하는 트랑. 결국 미군 수뇌부는 3 중대 병사들에게 일부러 져 줄 것을 명령합니다. 져도 후방으로 빼 주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만일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최전방으로 보내겠다는 으름장을 놓죠.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 3 중대 병사들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자존심 강한 워싱턴은 일부러 질 수 있을까요?

남베트남과 북베트남 대표팀 이야기

영화를 보다 보면, 축구 경기에 열광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사실 지금도 베트남의 축구 열기는 대단합니다. 이미 1980년에 세미 프로 리그를 탄생시켰고, 2008년에는 동남 아시아의 월드컵이라 불리는 스즈키 컵(Suzuki Cup) 챔피언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비록 월드컵 무대에 등장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2006년 월드컵 지역 예선전 때 우리 대표팀에게 선제골을 넣으며 만만치 않은 저력을 과시하기도 했죠. 그렇다면 이 영화의 배경이기도 한 베트남 전쟁 중에는 어땠을까요?

베트남에 축구가 처음 들어온 것은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던 1896년의 일이었습니다. 1954년프랑스와의 1차 베트남 전쟁이 끝난 이후 베트남은 공산 진영의 북베트남과 자유 진영의 남베트남으로 나뉘게 되죠. 이 과정에서 베트남 축구도 남북으로 나뉘게 됩니다. 하지만 활발한 활동을 펼친 것은 남베트남의 축구 대표팀이었습니다. 그들은 1956년과 60년 아시안컵 본선에 진출하여 4위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게 됩니다. 1974년 서독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도 참가했죠. 하지만 1975년 베트남이 공산화되면서 그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공산 진영의 북베트남 축구는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에는 활발한 활동이 없었습니다. 다만 같은 공산권 국가들과의 경기에 집중했죠. 그들은 중국과 A매치를 갖거나, 신흥국 경기 대회(GANEFO)에 참가하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그리고 베트남 축구는 1975년 공산화 이후 다시 합쳐져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제는 개방화와 자본주의화가 진행되면서 “V리그”라 불리는 베트남 축구 리그는 종종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 얼굴을 비추기도 하면서 성장해 나가고 있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3 중대의 병사들>에는 관중석을 가득 메운 베트남 사람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비록 영화적 연출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이런 대회가 열린 걸 보면 베트남 축구의 뜨거운 열기는 그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니스트이며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헤럴드스포츠>에서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1(2014년 08월 ~ 2015년 08월)을 연재했고 이어서 시즌2를 연재 중이다. 시즌1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를 재구성했고, 시즌2는 책에 수록되지 않은 새로운 작품들을 담았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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