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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고난 재능에 겸손을 얹다 - '축구신동' 이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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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한국축구는 또 하나의 쾌거를 달성했다.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18년 만에 결승진출에 성공한 것이다. 이탈리아, 우루과이, 브라질 등 우승후보로 접쳐졌던 상대들을 차례대로 꺾으면서 한국의 유망주들이 세계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결승에서는 아쉽게도 한 번 승리를 거뒀었던 이탈리아에게 패하며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지만 충분히 자랑할 만한 성과다.

이번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본 사람이라면 피치 위에서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있는 드리블과 패스를 구사하는 선수를 목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로 정원진(21 영남대)과 함께 대표팀의 공격을 이끌었던 ‘축구신동’ 이정빈(20 인천대)이다. 정원진이 위력적인 골폭풍을 일으키면서 다소 가려진 감이 있긴 하지만 이정빈의 활약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최대 장기인 드리블과 더불어 공격적인 패싱작업, 킥력 등 공격형 미드필더가 지녀야할 덕목을 모두 갖췄다는 평가다. 조별리그 3차전이었던 캐나다 전과 8강 우루과이 전에서 모두 결승골을 성공하며 한국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정빈의 활약 속에 소속팀 인천대도 승승장구를 이어가고 있다. 축구 강팀이 아니었던 인천대는 이정빈이 합류한 지난해부터 전국추계대학축구연맹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단숨에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올해 U리그 3권역에서는 ‘최강’ 고려대를 따돌리고 9전 전승으로 선두를 달리는 중이다. '이정빈 효과'를 제대로 보고 있는 셈이다. 어린 나이에도 에이스로서 팀을 이끌고 있는 이정빈. 앞으로 더욱 핫(Hot)해질 그를 27일 인천대학교에서 만났다.

■ 그 누구보다 화려했던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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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스 U-15 광성중 시절의 이정빈. 사진=이정빈 선수 제공

현재 대학선수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정빈 역시 2002 월드컵 키즈다. 어려서부터 인천에서 자랐던 이정빈은 한일월드컵 포르투갈 전을 직접 관전했고 그 날의 희열을 몸소 느끼며 축구선수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됐다. 박지성이 완벽한 가슴 트래핑 이후 터트린 결승골은 이정빈이 축구의 세계로 발을 딛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부모님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중학교 때까지 축구선수였던 아버지가 부상으로 인해 꿈을 접어야 했던 전례가 발목을 잡았다. 아버지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어머니의 반대가 특히 심했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듯 이정빈의 끝없는 설득을 못 이긴 어머니는 결국 학교 축구부가 아닌 이회택축구교실이라는 조건 하에 허락을 하게 된다. 학업을 병행시키기 위한 결단이었다.

이회택축구교실은 이정빈의 축구인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기본기부터 차근히 밟아가는 커리큘럼 덕에 이정빈은 금새 수준급 선수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정빈도 “내가 지금까지 축구선수로서 클 수 있었던 데에는 이회택축구교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만약 내가 클럽이 아닌 일반 학교 축구부로 들어갔다면 지금까지 축구를 할 수도 지금처럼 인터뷰를 할 수도 없었을 것 같다”며 최고의 선택이라고 자평했다.

이정빈의 성장세는 눈부셨다. 이미 초등학교 시절부터 각종 대회 득점왕은 모두 휩쓸고 다녔다.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그의 드리블 영상은 누리꾼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프리미어리그의 토트넘 핫스퍼가 일찌감치 그를 영입하려고 시도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비록 비자 등 여러 가지 문제가 겹치면서 좌절되기는 했지만 이정빈의 가치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뜻하지 않게 찾아온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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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빈의 활약 속에 인천대도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다. 사진=이정빈 선수 제공

최고의 유망주에게도 시련은 찾아온다. 진로를 고민하던 고3시절 프로로 바로 입문할 것으로 보였으나 좌절되고 말았다. 이정빈은 “마지막 면담 때 프로로 못가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학에서 오라는 팀도 없다는 소식도 접했다. 부모님께 이 사실을 전하면서 나 자신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심리적인 타격을 입었다”고 당시의 고통을 회고했다.

자칫하다가 선수생활을 접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를 구원해준 것은 다름 아닌 김시석 감독이었다. 때마침 인천대 감독으로 부임했던 그는 인천 유나이티드 유소년 감독 시절부터 지켜봐온 이정빈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정빈의 실력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감독이었다. 이정빈을 인천대에 영입함과 동시에 에이스의 상징인 등번호 7번을 배정하며 자신의 기대감을 드러냈다.

애제자는 스승의 믿음에 완벽히 보답했다. 지난해 열렸던 제45회 전국추계대학축구연맹전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인천대를 준우승에 올려놨다. 신입생 선수 하나로 인해 중위권으로 분류됐던 인천대가 단숨에 대학축구의 판도를 쥐락펴락하는 강팀이 된 것이다. 이 때의 활약으로 이정빈은 동 나이대 최고선수들이 모인다는 U19대표팀에 선발됐다.

그러나 U19팀은 이정빈에게는 지우고 싶은 기억이 되고 만다. AFC U19 챔피언쉽 첫 경기 베트남 전(6-0승) 이후 이정빈은 장염을 앓게 된다. 중국과의 2차전을 앞두고 있었기에 이정빈은 김상호 감독에게 출전의사를 강력히 어필하고 결국 경기에 출전한다. 장염으로 인한 컨디션 난조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이정빈은 특유의 날카로움을 살리지 못했고 결정적인 골 찬스까지 놓치고 말았다.

이정빈은 “고개를 못들 정도로 축구를 하면서 가장 후회되는 경기다. 나 하나 때문에 팀 전체가 망가진 느낌이었다”며 한숨을 푹 내쉬었고 “그때 댓글로 정말 욕 많이 먹었다. 나 때문에 선수들과 감독님들이 모두 욕먹는 것 같아 너무나 죄송했다”고 미안함을 전했다. 아직도 김건희(20 고려대)와 그 때의 얘기를 한다고 하니 그 고통의 잔상이 어린 선수의 마음속에 크게 각인되어 있는 듯했다.

■ 상처가 꽃이 되어가고 있는 이정빈, 이제는 더 큰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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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 대만 전에서 이정빈이 수비진들 사이로 드리블을 하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AFC U19 챔피언쉽 이후 마음을 다 잡은 이정빈은 U리그에서 다시 한 번 뛰어난 능력을 과시한다. 매 경기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치며 6경기 동안 4골을 몰아넣었다. 이정빈의 활약 속에 인천대는 9전 전승을 달리며 3권역에서 압도적인 선두를 달리고 있다. 국제대회에서의 경험으로 한 층 더 성숙해졌다는 평가다. 이후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의 활약은 앞서 설명했으니 언급하지 않겠다.

뛰어난 활약 속에 일각에서는 한국축구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한 이재성(23 전북)과 비교하고 있다. 중앙과 양쪽 측면을 오가는 멀티플레이어인 데다가 왜소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는 것까지 공통점이 꽤나 많다. 이러한 평가에 대해 이정빈은 과찬이라는 반응이다. 이정빈은 “아직 이재성 선수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 실력이다. 그렇게 언급이 되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 더욱 열심히 노력해서 한국축구를 대표하고 싶다”라며 어린 나이에도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계속해서 주목을 받아 왔고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통해 더욱 화제를 모은 만큼 내년에 있을 올림픽이나 3년 뒤의 아시안게임 출전에 대해서도 욕심이 생길 만하다. 이정빈도 “출전하고자 하는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라며 관심을 인정했지만 신중한 반응이다. 이정빈은 “아직 나는 프로 선수도 아니고 일단은 내가 프로가 되는 것이 먼저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기 보다는 한 단계씩 목표를 이루는 게 맞다고 본다. 그래서 지금은 프로로 진입하기 위한, 프로에 가서도 밀리지 않을 만한 기량을 갖추는 것이 먼저다”라며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뜻을 전했다.

시종일관 만 20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침착하게 대답하는 이정빈의 모습에서 한국축구의 미래가 엿보였다. 차근차근 목표를 이루고 싶다는 이정빈의 대답에 그의 최종 목표를 노골적으로 물었다. 이정빈은 꿈에 부푼 표정을 짓더니 “A대표팀에 꼭 가고싶어요”라고 수줍게 말한 뒤 “그 뒤에 해외진출을 할 수 있으면 좋겠죠? 해외진출해서 한국축구가 강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라고 말을 이었다. 박지성 키드 답게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꿈이다. 오히려 이를 신중하게 말하는 태도에서 신뢰감이 들었다.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며 초등학교 때부터 많은 관심을 받은 이정빈. 다른 사람들을 잘 알지 못하는 시련도 겪었지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며 그의 말처럼 한 단계씩 성장하는 중이다. 축구팬이라면 이정빈 이름 석 자를 기억해 두면 좋을 듯싶다. [헤럴드스포츠(인천)=임재원 기자 @jaewon7280]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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