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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숙자들도 나라를 대표한다 - 이준석의 킥 더 무비<킥킹 잇>
노숙자 월드컵?

노숙자 월드컵(Homeless World Cup)을 아시나요? ‘아니, 연고도 없이 길거리에 사는 노숙자들이 어떻게 월드컵에 출전하지?’ 저도 처음엔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곤층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고 경기 불황이 이어지고 있는 요즘은 나라를 가리지 않고 노숙자 문제가 커지고 있죠. 열심히 일했으나 모든 것을 잃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마약이나 범죄 같은 본인 스스로의 잘못으로 그런 처지에 빠진 사람도 있겠죠. 사회의 잘못된 구조와 정책 때문에 그런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아무튼 세상 사람들은 노숙자들에 대해 한편으로는 동정과 연민을 보내기도 하지만 또한 경멸의 시선과 비아냥거림을 보내기도 합니다. 노숙자를 보는 시선이 어떻든 간에 그들이 다시 자기 삶을 찾는 것이 본인과 사회 모두에게 이익이 되겠지요. 물론 사회적인 문제 해결도 중요하지만 노숙자 본인 스스로의 노력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노숙자 월드컵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축구 대회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요즘 노숙자들의 자활을 돕기 위한 잡지들이 많이 발간되고 있습니다. 노숙자 월드컵은 영국의 유명한 노숙인 잡지인 ‘빅 이슈(Big Issue)’와 오스트리아의 비슷한 잡지인 ‘메가폰’이 주도하여 만들어진 대회입니다. 2003년 오스트리아에서 처음 시작된 이 대회는 많은 관심과 이슈를 낳으며 2011년 프랑스 대회에는 54개국이 참가할 정도로 큰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축구팬으로서 노숙자들의 월드컵 대회에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습니다. 2006년 남아공에서 열렸던 제 4회 노숙자 월드컵을 소재로 만든 영화 <킥킹 잇(Kicking It)>입니다. 한번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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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변하기 위해 축구를 선택한 노숙자들

영화는 세계 각국에서 노숙자 월드컵에 참여하기 위해 연습하는 사람들에 주목합니다. 아일랜드에서는 과거 축구선수였다가 마약에 중독되어 길거리에 나앉은 청년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아프리카 케냐에서는 매일매일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언젠가는 유럽 프로축구리그에서 뛰는 꿈을 가진 사람이 나오죠. 미국에서는 야산에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면서도 길거리 축구의 꿈을 키워가는 흑인 청년이 나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이 물러가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이곳에도 노숙자 월드컵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습니다. 또한 엉망진창의 생활에 빠져 팀의 규율이나 길거리 축구의 규칙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팀원들과 그리고 감독들과 불화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들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꿈이지요. 그리고 그들은 축구를 통해 이를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왜 노숙자는 나라를 대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이 가슴 뭉클한 말 한마디에 이들의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노숙자 월드컵에 출전하는 아일랜드 선수들. 그들은 노숙자가 아닌 진짜(?) 월드컵에 참가하는 대표팀 경기가 열리는 날, 하프타임 행사 때 특별히 초대됩니다. 노숙자라는 낙인을 가지고 살아왔던 그들은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머뭇머뭇 경기장 중앙에 서죠. 하지만 경기장의 관중은 그들을 향해 기립박수를 칩니다. 그리고 아일랜드를 연호합니다. 비록 노숙인이지만 그들은 조국을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선수들이니까요.

그리고 마침내 개막한 제4회 남아공 노숙자 월드컵. 각 팀들은 무기력한 노숙인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게 적극적인 경기를 펼치며 관중들의 환호를 받습니다. 경기장 곳곳에서 그들의 국기가 휘날립니다. 과연 이 감동적인 무대의 우승은 누가 차지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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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들의 박스텐트.


축구를 통해 스스로 삶을 바꾼 사람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이벤트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반문하기도 할 겁니다. 축구 경기 하나가 과연 그들의 삶을 바꿔 놓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노숙자 월드컵에 참여한 사람들의 많은 수가 이후에도 적극적인 자활 의지를 보였다고 합니다. 직업을 갖고, 주택을 마련하고,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

일본 영화 <가슴 배구단(おっぱいバレ)>에는 매사에 의욕이 없는 중학생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배구를 시작하고 지역 대회에 출전하면서 노력하는 기쁨을 알게 되죠. 비록 결승전에서 형편없이 패배하지만 그들은 패배의 분함조차도 노력하는 이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임을 깨닫습니다.

물론 노숙자 월드컵은 우승을 향해 경쟁하는 대회입니다. 하지만 축구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승리가 아닌 행복이라고 말하는 이 대회의 슬로건처럼,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개인의 삶을 되찾는 노숙인들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노숙인이지만 스스로 변하고자 축구를 시작했고, 결국 나라를 대표하게 된 그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니스트이며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이 글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감상평으로 축구팬들로부터 스포츠의 새로운 면을 일깨우는 수작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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