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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베스타 스텔론, 축구로 나치와 한판 뜨다 -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승리의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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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베스터 스텔론과 펠레


1981년 개봉 당시 이 영화는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록키(Rocky)>로 할리우드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배우인 실베스터 스텔론과 축구황제 펠레가 같이 출연했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펠레는 당시 미국에서 인기를 끌던 북미 프로축구 리그(NASL)에서 뛰면서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가 리메이크될 예정이라는 점입니다. <그들만의 월드컵>에 출연했던 비니 존스와 현재 미국 프로축구 메이저리그 사커(MLS) LA 갤럭시에서 뛰고 있는 세계적 스타 데이비드 베컴이 출연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몰락했던 미국의 프로축구가 MLS로 화려하게 부활했듯이, 1981년의 고전 영화 <승리의 탈출>도 새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왜 이 영화는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리메이크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일까요? 이번에는 이 고전 축구 영화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2차 대전, 연합국과 독일 간의 축구 경기

2차 대전이 한창이던 프랑스의 어느 포로수용소.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역은 이미 독일군의 수중에 떨어진 지 오래입니다.

수용소에 수감된 영국군 포로들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축구 시합을 합니다. 이 장면을 지나가던 독일군 장교가 유심히 봅니다. 그 독일군 장교는 전직 독일 대표팀 선수였지요. 축구를 하던 영국 포로 중에는 과거 잉글랜드 대표로 활약하던 콜비(John Colby)가 있습니다. 둘은 옛날에 대표팀 경기 때 마주친 적이 있었죠. 쉽게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 그리고 이내 독일군에서 축구 시합을 제안합니다.

사실 독일이 축구 시합을 제안한 데는 정치적 이유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연합국 포로들을 상대로 독일팀이 승리할 경우, 전쟁에서의 독일의 승리를 사람들에게 암시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였죠. 하지만 연합국 포로들은 거꾸로 그 경기에서 탈출을 함으로써 독일을 바보로 만들 계획을 준비합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인 골키퍼 해치(실베스터 스텔론 분)와 천부적인 축구선수 루이스(펠레 분)가 팀에 합류합니다.

경기는 파리의 콜롱베(Colombe) 경기장에서 열립니다. 이곳은 1938년 프랑스 월드컵의 결승전이 열렸던 곳이지요. 심판의 편파 판정에 힘입어 4:0으로 앞서나가는 독일팀. 하지만 관중석을 채운 피점령국 프랑스인들은 독일의 골에 침묵합니다. 오히려 연합국이 공격을 할 때마다 프랑스인들은 환호를 합니다.

하프타임이 되자 라커룸에 잠입한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들은 선수들을 데리고 탈출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연합국 포로 선수들은 뜨거운 관중들의 환희를 져버릴 수 없어 탈출을 포기하고 다시 후반전에 나섭니다. 그리고 루이스와 해치의 활약에 힘입어 4:4로 극적인 동점을 만듭니다. 관중석의 프랑스인들은 극적인 승부에 환호하며, 어디에선가는 금지된 프랑스의 삼색기가 휘날립니다. 결국 경기가 끝나고, 관중들은 그라운드로 난입합니다. 그리고 선수들은 이 소동의 와중에 탈출을 하게 되죠.

독일은 이 경기를 통해 독일의 궁극적인 승리를 암시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따라붙는 연합국 포로들을 보면서 언젠가는 찾아올 연합국 승리의 날을 떠올리게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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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과 축구


이 영화의 무대가 되는 프랑스 파리의 콜롱베 경기장은 1938년 프랑스 월드컵의 주경기장이었습니다. 사실 2차 세계 대전은 유럽 축구사에 있어서도 치명적인 공백기를 초래했습니다.

요즘 잘 나가고 있는 잉글랜드 프로축구 리그도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1939년부터 리그가 중단되었고, 1946년에야 재개되었다고 합니다. 전설적인 선수 스탠리 매튜스(Sir Stanley Matthews)는 전쟁 동안 공군 소속으로 뛰었다고 하네요.

이탈리아의 세리에 A는 전쟁으로 1944년과 1945년에 중단되었다고 하네요. 왜 전쟁 후반부에 가서야 리그가 중단되었나 궁금해서 알아보니, 1943년부터 시칠리아 침공을 시작으로 연합국의 이탈리아 진격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 이후로는 리그가 중단된 것 같습니다.

이 영화와 가장 비슷한 사건을 꼽으라면 1942년에 벌어졌던 독일 공군과 소련군 포로 간의 경기를 들 수 있겠네요. 당시 경기의 심판은 악명 높은 나치의 무장 친위대(SS)였으니 경기의 편파성은 말할 것도 없었겠지요. 하지만 놀랍게도 소련군 포로들은 독일 공군을 5:3으로 물리칩니다. 그리고는 전원 총살되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축구의 본고장 유럽에서 열렸던 전쟁은 이처럼 축구에 많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축구를 워낙 좋아하는 유럽 사람들이 축구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삼았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마치 이 영화에 나오는 프랑스 관중처럼요. 영화의 마지막 페널티킥 장면에서 프랑스 사람들이 부르는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는 그래서 더욱 절실하게 들리는지도 모릅니다.

축구 A매치 전에 울려 퍼지는 여러 나라의 국가들 중에서 프랑스 국가는 특히 비장한 느낌을 주면서 축구 경기의 긴장감을 끌어올리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 나오는 프랑스 국가의 가사가 더더욱 영화의 감동을 깊게 해 주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각종 세계 대회에서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맞붙기라도 하면 잉글랜드의 극렬 서포터들은 프랑스 국가가 울려 퍼질 때 각종 야유와 휘파람 소리를 퍼붓습니다. 하지만 두 나라가 독일에 대항해 어쩔 수 없이 손을 잡았던 때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 속에선 수많은 파리 시민들이 영국 선수들을 위해 프랑스 국가를 불러주네요.

이처럼 2차 대전은 영화를 비롯한 문화 전반에 많은 소재를 제공하곤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2차 대전 영화들은 꽤 많이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이제 2차 대전은 서서히 기억 저편으로 잊히는 느낌입니다. 더불어 당시의 영화들도 점점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이 듭니다. 그래도 실베스터 스텔론과 펠레가 축구공 하나를 두고 독일군과 싸우던 장면만큼은 축구 영화사에서 길이 기억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리메이크작이 빨리 나왔으면 합니다.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니스트이며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이 글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감상평으로 축구팬들로부터 스포츠의 새로운 면을 일깨우는 수작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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