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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은 대륙, 에이즈 그리고 축구 -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아프리카 연합>

2009년 남아공에서는 대륙간컵 축구가 열렸습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1년 전에 준비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열렸던 대륙간컵. 그 개막식은 마냥 화려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경기장 중앙에 갈대와 지푸라기로 만든 움막이 세워졌습니다. 움막에서 나온 아이들은 나뭇가지로 만든 골대에서 축구를 했죠. 가난한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축구를 즐기는 평범한 모습에 스타디움은 일순 숙연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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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가난한 아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축구는 얼마 안 되는 성공의 기회 중 하나죠. 예전에 유럽에서 성공한 어느 아프리카 축구선수가 고급 승용차를 끌고 고향 마을을 방문한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고급차와 어울리지 않는 형편없는 진흙길에 차를 세워두자 수많은 헐벗은 소년들이 몰려와 신기한 듯 차를 만집니다. 그러자 성공한 축구 스타는 차가 망가질까봐 짜증을 내며 아이들을 내쫓습니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것일까요? 아프리카의 모순이 만들어 낸 장면입니다.

아이들의 눈으로, 그리고 축구를 주제로 아프리카의 상황을 바라본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아프리카 연합(Africa United)>입니다.

꼬마들의 아프리카 종단

르완다의 어느 시골 마을, 파브리스(Fabrice)와 두두(Dudu)는 축구를 좋아하는 소년들입니다. 그러나 공이 없어서 UN에서 에이즈 퇴치를 위해 나눠주는 콘돔을 풍선처럼 부풀려 차고 놉니다.

축구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파브리스는 어느 날 뜻밖의 제의를 받습니다. 2010남아공 월드컵 개막식에 참여하는 아프리카 유나이티드라는 팀에 들어오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입단 테스트를 받기 위해서는 르완다의 수도인 키갈리(Kigali)에 가야 합니다. 아프리카의 불안한 치안 상황과 형편없는 교통망을 생각하면 마을 밖으로 꼬마들이 나서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파브리스와 두두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 열리는 월드컵을 꿈꾸며 길을 나섭니다. 그러나 비교적 부유한 파브리스의 부모님은 파브리스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미국으로 이민가기를 바랍니다. 부모님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프리카엔 꿈이 필요한 게 아니야. 꿈에서 깰 필요가 있지.(Africa doesn’t need dreams. It needs to wake up.)”

어른들 몰래 길을 나선 두두와 파브리스. 두두의 여동생인 베아트리스(Beatrice)도 함께 합니다.

그러나 버스를 잘못 타서 그들은 이웃나라인 콩고로 가게 됩니다. 여권도 없는 꼬마들은 난민센터에 수용됩니다. 그 곳에서 포먼 조지(Foreman George)라는 매서운 눈빛의 소년을 만나죠. 포먼 조지는 자유를 얻게 해 주겠다면서 탈출을 꼬드깁니다. 거기에 넘어간 파브리스와 두두는 차를 훔쳐 달아나게 되죠.

하지만 그들이 훔친 차는 무장 반군의 트럭이었고, 곧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알고 보니 포먼 조지는 반군 조직에 몸담았던 소년병이었고, 우두머리의 돈을 훔친 도망자 신세였죠.

총을 쏘며 쫓아오는 반군들을 피해 부룬디로 도망간 꼬마들. 그들은 그 곳의 휴양지에서 백인들을 위해 시중을 드는 셀레스(Celeste)를 만납니다. 부룬디 왕족의 혈통을 이어받았지만 소 여섯 마리에 팔려온 셀레스. 셀레스 역시 자유를 꿈꾸며 파브리스 일행에 합류합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평화 운동가가 되고 싶다는 파브리스, 아프리카의 실상을 고발하는 기자가 되고 싶어 하는 셀레스, 그리고 의사가 되어 에이즈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치료하고 싶은 베아트리스까지.

하지만 미래에 대한 꿈을 꾸기에는 아프리카의 현실은 너무 가혹합니다. 잠비아를 거쳐 짐바브웨로 넘어가면서 그들은 가난과 질병, 전쟁으로 신음하는 아프리카의 참상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UN의 에이즈 검사소에서 피검사를 받은 아이들. 그 곳에서 두두가 에이즈 양성임을 알게 됩니다.

마침내 월드컵이 열리는 남아공 국경에 도착한 아이들. 월드컵 개막식에 참여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달려온 이들은 과연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월드컵이 과연 아프리카의 해결책일까?

에이즈 예방을 위해 나눠준 콘돔을 부풀려 비닐봉지로 쌉니다. 거기에 노끈을 감으면 기가 막힌 축구공이 탄생하죠.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가난과 에이즈는 일상입니다. 영화는 그런 씁쓸한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영화의 주 무대가 되는 나라들을 살펴보죠. 르완다의 아이들은 콩고와 부룬디 등을 거쳐 남아프리카로 향합니다. 그 곳에서 두두와 파브리스는 소년병 포먼 조지를 만납니다.

이 지역의 소년병들은 르완다 내전의 산물입니다. 르완다는 20세기부터 지금까지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겪고 있는 나라입니다. 르완다 국민을 이루는 투치족과 후투족이 서로 정권을 잡기 위해 충돌해 왔죠. 한 쪽 부족이 정권을 잡으면 반대쪽 부족의 군인들은 반군이 되어 콩고나 부룬디 같은 인접국으로 도망쳤고, 이 과정에서 많은 양민들이 단순히 다른 부족이라는 이유로 살육 당했습니다.

『나는 세계일주로 경제를 배웠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회사를 박차고 나와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를 돌며 세계 경제를 직접 체험한 아일랜드 사람 코너 우드먼(Conor Woodman)의 이야기이죠. 여기에는 콩고 정글에 숨어 있는 르완다 반군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르완다 반군들은 활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콩고에 매장되어 있는 주석 광물을 캐기 시작합니다. 휴대폰 제조에 필수적인 주석은 상품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이 주석을 캐는데 아이들이 동원됩니다. 제대로 된 안전시설조차 없는 탄광에서 콩고의 아이들은 돈도 벌고 르완다 반군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걸고 주석을 캡니다. 이렇게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채굴된 주석 거래를 UN은 금지합니다. 하지만 워낙 주석 수요가 높기 때문에 아이들이 캔 주석은 암암리에 밀수됩니다.

이 영화 <아프리카 유나이티드>에서도 어른들의 잘못된 싸움에 희생되는 아이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르완다 반군에 소속되어 양민들에게 총을 쏘던 조지 포먼은 콩고 주석 광산의 아이들을 연상시킵니다. 내전 중에 폐위된 부룬디 왕실의 후손 셀레스는 소 여섯 마리에 바겐세일 하듯이 팔려갑니다. 전쟁으로 인해 질병은 창궐하고, 축구를 좋아하는 꿈 많은 소년들이 콘돔이나 에이즈를 아무렇지 않게 입에 올리게 되죠.

해결책을 생각하는 것조차 사치일 정도로 살아남는 게 우선인 상황. 영화는 길을 떠난 아이들이 산전수전 다 겪은 뒤, 남아공 월드컵 개막식에 참석하는 것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월드컵에 눈물을 흘리는 두두를 보면 약간 불편한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전 인류가 즐기는 축구와 월드컵. 아무리 축구가 각 나라에 잘 정착했다고는 하지만 에이즈 합병증으로 결핵에 걸린 두두가 개막식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그에겐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꿈을 이루었다는 일시적 만족감은 있겠지만 두두는 결국 죽을 테고, 아프리카는 변하는 게 없으니까요. 월드컵에 대한 꿈만으로 현실의 고난을 이겨낸다는 것은 아프리카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선진국의 좁은 시각을 반영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차라리 개막식을 포기하고, 무료 학교에 등록해 의사의 길을 꿈꾸는 동생 베아트리스가 더 현명해 보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나는 세계일주로 경제를 배웠다』에는 ‘공정 무역’, ‘윤리적 소비’라는 이름으로 아프리카 농부들로부터 더 높은 가격으로 커피를 사들이고 그 돈을 소비자들에게 부담시키는 건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이득을 얻는 것은 ‘공정 무역’을 외치는 선진국 기업들과 아프리카 농민들에게서 커피를 대량 구입하는 현지의 도매상들뿐이라는 겁니다.

오히려 현지 농민들과 지속적으로 직거래하면서 그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더 좋은 품질의 커피를 심도록 유도하여 농민들이 계속 이익을 내고 부자가 되도록 만들어주는 게 아프리카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각으로 비싼 트랙터를 원조할 게 아니라 아프리카 농사에 적합한 황소를 살 자금을 융자해 주라는 이야기입니다. ‘물고기’가 아닌 ‘낚시법’을 가르쳐주고, ‘일방적 원조’가 아닌 ‘지속적인 거래’를 하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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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유나이티드>도 많은 선진국 기업들의 실수와 비슷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합니다. 물론 아프리카의 아이들에게도 월드컵의 꿈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월드컵 개막식 때문에 에이즈 치료를 거부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게 진정 두두를 위한 일일까요? 이것은 ‘지속적인 거래’가 아닌 ‘일방적 원조’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영화 초반, 아프리카에서는 보기 드물게 경제적으로 성공한 파브리스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프리카엔 꿈이 필요한 게 아니라, 꿈에서 깨어나는 게 필요하다.” 영화에서 파브리스는 어머니의 말을 비웃으며 결국 월드컵이라는 꿈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두두의 꿈을 찬양하며 끝나지요.

하지만 이들이 이 여행을 통해 진정 성취한 것은 월드컵 개막식이 아닙니다. 소년병이 총을 내려놓을 수 있는 깨어남, 착취를 하는 어른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깨어남, 그리고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할 수 있는 깨어남이 진정한 결과물입니다. 물론 월드컵이라는 꿈이 있었기에 현실의 부조리에서 깨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꿈 때문에 에이즈 치료를 포기한 두두가 더욱 안타깝습니다. 월드컵은 동기부여는 할 수 있어도 아프리카의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서구의 시각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우리들은 영화의 주제 의식을 두두가 아닌 다른 아이들로부터 찾아야 합니다.

코너 우드먼이 말했듯, 그리고 파브리스의 어머니가 말했듯 아프리카에게 필요한 건 꿈의 원조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니까요.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니스트이며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이 글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감상평으로 축구팬들로부터 스포츠의 새로운 면을 일깨우는 수작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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