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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현철의 링딩동] 준비된 세계챔피언 김재호
#예습
지난 3월 8일 횡성에서 한국 슈퍼페더급 타이틀에 도전한 김재호(프라임)는 2라운드가 시작되자마자 레프트 훅 원펀치로 챔피언 한익수(동부신도)를 실신시키고 챔피언에 등극했다. 작년 9월 선명수(동두천스타)와의 슈퍼라이트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박빙의 판정패로 타이틀 획득에 실패한 후 2체급을 낮춰 두 번째 도전 만에 한국타이틀을 거머쥔 것이다. 지난 12월의 한일 대항전에서 일본의 후지야마 겐지를 불과 75초 만에 KO시킨 여세를 몰아 복싱팬들에게 두 경기 연속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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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세계챔피언 김재호.


복싱에 파묻혀 지낸 청춘
고등학교 1학년 때 오스카 델 라 호야(미국)와 리카르도 마요르가(니카라과)의 경기를 보고 복싱에 흠뻑 매료된 김재호는 당장에라도 복서가 되고 싶었다. 체육관에 입관하고 싶어 부모님께 허락을 구했더니 조건이 붙었다. 그 조건은 대학 진학이었다. 이왕 대학을 간다면 체육 쪽을 선택하고 싶어 별 관심이 없던 공부도 나름 열심히 했다. 그만큼 복싱이 하고 싶었다. 그렇게 경희대 체육학과에 입학하자 합격자 발표 날 부친께서 조용히 부르셨다. 아버지도 복싱으로 인천체대에 입학했다는 이야기는 그 때 처음 듣게 되었다. 복서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김재호는 복싱 동아리에 가입했고 대학 생활 4년 동안 출전이 가능한 모든 생활체육대회에 참가, 복싱에 대한 갈증을 마음껏 풀면서 쉽지 않은 ROTC 일정과 훈련도 모두 견뎌냈다. 생활체육으로의 복싱을 연마하면서 처음 2년 동안은 지는 경우가 많았고, 3년째 수원시청 시합에서 처음 우승을 맛봤다. 망상해수욕장 동아리대회에는 4년 내내 참가했는데 마지막 해가 되어서야 우승할 수 있었다. 복싱을 연마하고 자신을 수련하는 데 중점을 두었을 뿐 승부 자체에는 큰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프로복서로의 열정이 심장 깊은 곳에서 꿈틀대기 시작했다. 결국 프로데뷔 한 달 전 정식 아마추어 대회인 전국 우승권대회에 출전하게 되었고 1승 1패로 탈락한 뒤 곧바로 프로테스트에 통과, 프로데뷔전을 갖게 된다.

장교의 꿈은 사라졌지만 복싱이 남아 있다
김재호는 2012년 12월 23일 이종국에게 4회 판정승을 거두고 프로복서로 입문했다. 경희대 체육학과 졸업과 ROTC 임관을 3개월 앞두고 출전한 프로데뷔전, 비록 승리는 했지만 데뷔 무대는 그의 젊은 날들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말았다. 첫 라운드에서 스텝을 밟다가 오른쪽 무릎에 이상이 감지되었다. 갑자기 엄청난 통증이 엄습했으나 경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발을 딛기가 힘든 상황에서도 간신히 4라운드를 마치고 병원을 찾았다. 부상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된 것이다. 장교로 임관은커녕 사병으로도 입대할 수가 없는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장교 복서라는 꿈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4년간의 대학 시절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좌절된 장교 복서의 꿈,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 전화위복으로 생각하자는 박철 관장의 진심어린 위로의 말은 김재호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 그렇게 병역은 면제가 되었고 꼬박 1년 가까이 재활에 매달렸다. 미래에 대한 설계가 수포로 돌아가자 한동안 혼란스러웠지만 복싱이 있어 곧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지금도 날씨가 좋지 않으면 부상 부위에 뻣뻣한 느낌이 있지만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 가끔은 왕복달리기 같은 훈련 도중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느껴지기도 한다. 만일 그 부위가 또 다시 파열된다면 선수생활에 지장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하고 있다.

#인터뷰
단숨에 유망주로 떠오른 한국 슈퍼페더급 챔피언 김재호 선수와 매니저인 박철 관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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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초 만에 상대를 녹아웃시킨 한일전. 왼쪽이 김재호(2014.12.21. 서울).


- 한국챔피언이 되고 한 달 정도 지났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는가?
▲조금 쉬고 바로 훈련에 돌입했다. 지금 내 생활의 모든 것은 오로지 복싱에 맞춰져 있다. 복싱에 모든 것을 걸었고 지금 상황에 만족한다. 매일 수원태풍체육관 선수들(원우민 이준용 박찬희 등)과 합동으로 훈련하는데 분위기가 좋고 서로 배우는 점도 많다. 열심히 할 맛이 난다.

- 작년 9월 선명수에게 판정패한 후 2연속 KO승인데?(이 경기는 초반에 선명수가 포인트에서 리드했으나 9라운드에 김재호가 다운을 빼앗고 KO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결과는 김재호의 0-2 판정패)
▲첫 타이틀매치다 보니 긴장도 했고 6라운드가 되어서야 뭔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9라운드에 다운을 빼앗고 경기를 끝낼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나도 지쳐있었고 경험이 없었다. 최근까지도 주변에서는 이긴 경기라는 말을 해주지만 패배는 솔직히 인정한다. 다만 경기에서는 졌고, 싸움은 이겼다고 생각한다. 졌을 때는 충격이 커서 쉬고 싶었다. 또 질까봐 걱정도 되었고, 힘들 때마다 이걸 하지 않으면 또 진다는 생각으로 분발했으니 차라리 진 것이 약이 되었다. 또한 데뷔전에서 10라운드를 소화한 선명수 선수도 대단하다.

- 작년 12월 한일전에서 첫 KO승을 거뒀다.
▲평상시 72Kg 정도 나가는데 슈퍼페더급 체중까지는 처음 뺀 것이다. 61Kg(라이트급) 정도가 내 몸의 적정 체중인줄 알았기 때문에 걱정도 많았는데 막상 감량을 해보니 몸이 더 가볍고 힘이 났다. 컨디션 조절도 잘 되고 뭔가 내 몸에 맞는 느낌이었다. 후지야마 선수가 계속 직선으로 들어오는 공격이 많아서 마음먹고 레프트훅을 쳤는데 넘어갔다. 제대로 맞긴 했지만 KO될 정도의 느낌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상대 선수가 일어나지 못했다.

[동영상] 김재호 vs 후지야마 겐지(슈퍼페더급 한일전)

- 이번 한국타이틀매치도 초반에 레프트훅 일발로 한익수를 KO시켰는데?
▲한익수 선수가 사우스포인데 왼손잡이와 스파링을 별로 하지 못했다. 컨디션도 좋고 감량도 잘 되었지만 사우스포와 상대한 적이 없어서 불안감은 있었다. 나름대로 한익수 선수의 경기를 보면서 분석을 많이 했다. 밀고 들어오는 스타일이라 대비하고 연습했던 대로 기회가 일찍 왔다. 깔끔하게 맞았다는 느낌을 받았고 맞는 순간 머리가 돌아가는 게 보여서 못 일어나겠다고 생각했다.

[동영상] 김재호 vs 한익수(한국 슈퍼페더급 타이틀매치)
- 데뷔 후 KO승이 없다가 갑자기 연속 KO승을 거두는 비결은 뭔가?
▲(박철 관장)사실 데뷔 5전까지 KO승은 없었지만 3경기에서 다운은 빼앗아냈다. 잠재된 펀치력이 있고 초기에는 라이트스트레이트가 주무기였는데 힘든 훈련을 극복하면서 레프트훅의 파괴력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작년에 선명수 전을 준비하면서부터 (김)재호와 스파링을 하는 선수들이 자꾸 부상을 당하고 있다. 타이밍을 맞추는 능력이 성장하면서 복싱에 눈을 뜬 것 같다(한국 페더급 챔피언 이인규 선수는 작년 12월 방어전을 앞두고 김재호와 스파링을 하다가 안와골절상을 당해 방어전이 취소되었고 현재 회복중이다).

- 김재호는 어떤 복서인가?
▲(박철 관장)뭔가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키는 스타일이다. 선수와 관장의 관계를 떠나서도 인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선수다. 재학 중에 항상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운동을 열심히 하던 모습을 쭉 지켜봤다. 타고난 재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고 복싱을 대하는 자세가 진지하다. 열심히 하는 선수가 잘 된다고 믿고 있다. 재호는 분명히 잘 될 것이다. 좋아하는 술만 좀 자제한다면(웃음).
▲(최락환 수원태풍체육관장)어느 정도 레벨에 오르니 기술적으로도 향상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정말 잘하고 있다. 함께 운동하는 선수들 모두 발전하고 있어서 뿌듯하다.

-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국내는 박종팔의 스타일을 좋아하고 해외 복서로는 단연 로베르토 두란(파나마)이다.

- 가족관계와 여자친구는?
▲부모님, 3살 터울의 누나와 수원에 거주한다. 사귄 지 300일 정도 된 여자친구도 있다.

- 국내 복싱계가 혼란스러운 상황인데 바라는 점은?
▲욕심이 다른 데 있는 선수라면 모를까 순수한 목표를 가진 나 같은 선수들은 선배님들께서는 열심히 하는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주시면 좋겠다. 또한 선수가 많지 않으니 이왕이면 기구에 상관없이 서로 시합할 수 있으면 좋겠다. 권혁, 김태일, 육동훈, 김우신 등 라이벌로서 거슬리는 선수들이 있어서 내심 붙어보고 싶었는데 나뉘어져 버리니까 맞붙을 기회도 없고 해서 아쉽다.

- 앞으로의 각오는?
▲당연히 세계챔피언이다. 하지만 그냥 세계챔피언이 아니라 정말 영향력 있는 챔피언이 되고 싶다. 로베르토 두란이 레너드를 이겼을 때 파나마에서 그 날을 국경일로 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도 그런 복서가 되고 싶다. 지켜봐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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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연속 KO승으로 한국타이틀을 획득한 김재호(2015.3.7. 횡성).


#전망
현재 슈퍼페더급은 우치야마 다카시(일본 와타나베짐)가 WBA 세계챔피언이고, 미우라 다카시(일본 테이켄짐)가 WBC 세계챔피언이다. 9차 방어에 성공한 뒤 WBA 슈퍼챔피언으로 승격한 우치야마는 오는 5월 6일 좀통 추와타나(태국)와 10차 방어전이 예정되어 있다. 2012년 5월 김동혁에게 OPBF(동양태평양복싱연맹) 타이틀을 빼앗아간 추와타나가 세계타이틀에 도전하면서 현재 동양챔피언은 공석이 된 상태라 조만간 일본 선수 간의 결정전이 예정되어 있다.

김재호는 이번 승리로 OPBF 슈퍼페더급 12위에 랭크되었다. 두세 차례 경기를 치른 후 빠르면 금년 내에 동양타이틀에 도전을 계획하고 있다. 만일 김재호가 동양타이틀을 획득하게 된다면 흥행을 위해 국내 복서를 선호하는 일본에서 세계타이틀에 도전할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리게 된다. 지금의 페이스대로 꾸준히 노력한다면 김재호의 세계 도전은 조만간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 장교의 꿈은 비록 좌절되었지만 세계 제패의 꿈은 여전히 유효하다. [헤럴드스포츠 복싱전문위원]

■ 김재호 프로필
- 출생 : 1990.09.24
- 소속 : 프라임복싱클럽
- 신장 : 173Cm
- 매니저 : 박 철
- 스탠스 : 오소독스
- 타이틀
한국 슈퍼페더급 챔피언(2015~현재)
- 총전적 : 7전 6승(2KO) 1패

■ 전적
2012.12.23. 이종국 4회판정승 (김포) 프로데뷔
2013.10.20. 볼트 박 4회판정승 (김포)
2013.11.17. 김도연 4회판정승 (김포)
2014.03.23. 김도연 6회판정승 (김포)
2014.09.28. 선명수 10회판정패 (여주)
<한국 슈퍼라이트급 챔피언 결정전> 도전실패
2014.12.21. 후지야마.겐지 1회KO승 (서울)
2015.03.08. 한익수 2회TKO승 (횡성)
<한국 슈퍼페더급 타이틀매치> 타이틀획득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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