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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티모르라는 나라도 있어? - 이준석의 킥 더 무비<맨발의 꿈>

동티모르 유소년 팀의 실화

동티모르? 어디서 많이는 들어본 것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다고요? 저도 그랬습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요. 제 머릿속의 동티모르는 21세기 최초의 독립국, 인도네시아와 갈등을 빚은 나라, 그리고 우리 평화유지군의 파견 정도로만 생각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우연히 이 영화 <맨발의 꿈>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동티모르를 무대로 한 이 영화를 보면서 이 나라의 아픈 역사를 알게 되었네요.

하지만 이 나라에 슬픔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그들에겐 ‘꿈’이 있습니다. 그것도 우리 한국인이 그들에게 심어준 꿈 말입니다.

2002년 독립한 동티모르. 아무런 산업기반도 없고 국민들이 가난에 찌들어 살던 이 나라에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동티모르의 유소년 선수들은 2004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리베리노컵 국제 유소년 축구 대회에서 6전 전승으로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국인 김신환 감독이 있었습니다. 대체 아무 것도 없는 가난한 나라의 축구팀이 어떻게 체계적인 훈련과 지원으로 무장된 선진국의 축구팀들을 모조리 격파했을까요? 그 이야기가 이 영화에서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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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밑바닥을 걷던 전직 축구선수, 동티모르에 이르다


이 영화는 앞서 말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때 실업 축구선수로 잘 나가던 주인공 김원광(극중 이름. 실제 모델은 김신환 감독)은 이제는 사업에 모조리 실패하고 쫓기는 처지입니다. 악어가죽을 얻기 위해 인도네시아로 갔던 그는 새로 독립한 동티모르라는 나라에 일거리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곳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그 곳은 수많은 전쟁과 내전이 끝나고 폐허만 남은 곳이죠. 돈 나올 데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그 곳의 현실에 절망한 원광.

하지만 그의 눈에 축구를 좋아하는 동티모르인들의 모습이 비칩니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누구나 공 하나를 가지고 맨 땅에서 공을 차는 그들의 모습을 봅니다. 그는 축구가 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동티모르에 최초의 축구 용품점을 엽니다.

하지만 가난한 동티모르인들이 비싼 축구 용품을 살 리가 없습니다. 결국 원광은 동네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에게 축구화를 빌려주면서 하루에 1달러를 내게 하는 일종의 ‘할부 계약’을 체결합니다. 그렇게 원광은 동티모르의 아이들과 인연을 맺습니다. 축구화를 빌려주고 축구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던 원광은 이 아이들에게서 묘한 열정을 느낍니다. 그리고 동티모르의 아픔을 느끼게 되지요. 왠지 모르게 팀으로 화합하지 못하는 아이들. 내전으로 인해 서로의 가족끼리 총구를 겨눴던 아픈 역사가 그 원인이었지요.

그러나 원광은 이 아이들이 과거의 원한을 잊고 미래의 꿈을 향해 전진하도록 목표를 제시합니다. 바로 일본에서 열리는 국제 축구대회 참석이지요. 천신만고 끝에 일본에 도착한 이들은 결국 6전 전승으로 우승컵을 따냅니다. 아무 것도 없는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은 라디오 중계로 전해지는 우승 소식에 마치 월드컵에라도 나간 것처럼 열광합니다.

동티모르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한 점이 있었습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들 동티모르인들은 서로 죽이고 죽었던 걸까요?

티모르(Timor) 섬은 인도네시아와 호주 사이에 있는 아름다운 섬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되어 왔죠. 17세기 이후로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던 티모르 섬의 동부 지역은 1974년 포르투갈 국내 쿠데타를 기회로 독립을 선언합니다. 하지만 티모르 섬의 서부를 지배하고 있던 인도네시아는 바로 다음해인 1975년에 동티모르를 무력으로 합병합니다. 인도네시아의 진압으로 약 20만 명의 동티모르인이 죽는 참사가 벌어집니다. 이로 인해 국제 사회의 비난이 끊이지 않자 인도네시아는 1999년 동티모르의 독립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허용합니다. 압도적인 동티모르인들이 독립을 찬성하죠. 하지만 인도네시아를 지지하는 민병대는 투표 결과를 거부하며 계속 폭동을 일으킵니다. 결국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나라의 군대가 UN 평화 유지군으로 동티모르에 파견되어 사태를 진정시킵니다. 그리고 2002년 동티모르는 마침내 독립을 선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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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면 이루어진다

2002년 월드컵 이후, 우리나라엔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저에게 물어보더군요. 왜 ‘꿈’이라는 글자 뒤에 별(★)이 들어가냐고요. 축구에서 별은 ‘우승’을 의미합니다

이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인 김신환 감독은 1980년대, 현대자동차 축구팀에서 활약했습니다. 그러나 은퇴 후 연이은 사업 실패를 경험하고 친구를 찾아 간 동티모르에서 이 아이들을 만났다고 하네요.

뜻하던 바가 이루어지지 않아 좌절할 때면 저는 이 말을 항상 생각하곤 합니다.

‘꿈꾸면 이루어진다.’

네, 맞습니다. 김신환 감독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는 꿈을 꿨기에 그대로 이루어냈고, 동티모르의 아이들 역시 꿈을 가졌기에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물론 단순히 허황되게 꿈만 꾼다고 그것이 현실화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꿈을 갖고 무엇이라도 해 보려고 진지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은 분명 성과를 내는 게 또 이 세상입니다.

2011년 5월 20일 김신환 감독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동티모르 독립 기념일에 공로 훈장을 받았습니다. 동티모르의 독립 영웅인 사나나 구스마오(Xanana Gusmao) 전 대통령의 감사 인사로 이 글의 끝을 대신할까 합니다.

“우리는 가난합니다.

그에게 너무나 감사하고 있지만, 줄 수 있는 것이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까지라도 김신환 감독의 사랑과 헌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희망’이라는 말을 가르쳐 준 김신환 감독과 한국 국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니스트이며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이 글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감상평으로 축구팬들로부터 스포츠의 새로운 면을 일깨우는 수작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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