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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허재 감독이 인터뷰를 안 하는 이유
#얼마 전 김유택 전 중앙대 감독과 같은 차로 이동 중 심심하던 차에 생뚱맞은 질문을 쑥 던졌다. “감독님도 농구를 잘했으니 물어보는 건데 역대 한국 최고의 농구선수는 누구라고 생각해요?” 생각해 보면 충분히 물어볼 만한 질문인데 답은 의외로 공격적이었다. 농구기자를 10년 넘게 했다는 사람이 답이 빤한 질문을 던지면 어떻게 하냐는 식의 타박조였다. “당연히 허재지. 가끔 다른 기자들이 허재랑 강동희, 혹은 허재랑 이상민 중 누가 낫냐고 물어들 보는데 그건 질문 자체가 안 돼. 급이 다른 걸 어떻게 비교해. 강동희랑 이상민은 비교할 수 있지만 허재는 차원이 달라. 그리고 개인적으로 허재 다음은 서장훈이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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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부연설명은 장황하기까지 했다. “(허재는)탄력 좋지, 슛 좋지, 시야도 넓지, 패스도 끝내주지, 여기에 머리도 좋고 승부근성도 따라갈 사람이 없어. 특히 승부처에서 아주 강하지. 이런 모든 걸 갖춘 선수는 한국에서 다시 나오기 힘들 거야(계속 어쩌구저쩌구).” 요즘 별로 그닥 친하게 지내지도 않는다고 하는데 혹시 김유택 감독이 예전에 후배(허재)한테 술 좀 많이 얻어먹었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극찬이었다. 끝으로 생생한 증언까지 덧붙여졌다. “함께 뛰던 시절인데 한 번은 살짝 서로 감정이 상한 일이 있었어. 그래서인지 경기 중 당연히 나한테 패스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볼을 다른 쪽으로 빼는 거야. 그래서 하프타임 때 성질이 나서 따졌지. 왜 패스 안 했냐고. 허재의 답은 간단해. ‘못 봤다’는 거야. 그런데 이거 100% 거짓말이야. 다른 선수는 몰라도 허재는 그 상황에서 나를 못 볼 수가 없어. 몇 년을 함께 뛰었는데 그걸 모르겠어. 그거 따져봤자 소용없으니 그냥 참고 말았지. 허재는 그 정도야. 뒷통수에도 눈이 있는 것 같았어.” 농구 보는 눈이 야무지기로 소문난 김유택 감독인 까닭에 괜한 립서비스로 들리지만은 않았다.

#기자의 직업병(?) 중 하나는 정보를 들으면 되새김하는 습관이다. 그날 저녁 새삼 허재의 현역시절 자료를 서핑했다. 직접 봤지만 잊어버렸던 기억, 그리고 직접 취재하지 못했던 눈부신 과거의 기록에 새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허재의 선수생활은 ‘요즘 한국농구는 참 퇴보했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몇 가지만 보자. 94년 세계농구선수권(지금은 농구월드컵)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한 허재를 눈여겨본 NBA 신생팀, 밴쿠버 그리즐리스는 계약금 300만 달러, 연봉 80만 달러에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 한국 최초의 NBA선수는 하승진보다 10년 먼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또 허재는 1990년 세계선수권에서 이집트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 62득점을 올렸다. 이는 이 대회 사상 한 경기 최다득점으로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앞서 언급한 94년 대회에서는 스틸 1위를 포함해 득점 어시스트에서 모두 5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나중에 NBA 시카고 불스에서 ‘하얀 조던’으로 불렸던 토니 쿠코치(크로아티아)는 "한국 팀의 9번 선수(허재)가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 중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조금 더 과거로 가면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허재는 선수선서를 했다. 농구뿐 아니라 한국 스포츠를 통틀어 당시 최고의 운동선수였던 것이다.

#'직진 허재'는 잘 알려지지 않은 허 감독의 별명 중 하나다. 허감독은 실제 보행스타일도 그리고 화법이나 성격 자체가 모두 '직진'이다. 말을 안 하면 안 했지 뭐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다. 또 인낸심에 한계에 달하는 부당함에는 거침없이 반발한다. '직진'은 의리 있는 그의 성격이 잘 반영된 생활 스타일이다. 예컨대 국제대회 인터뷰에서 중국기자들의 황당한 질문에 욕과 함께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은 유명한 일화다. 공식석상인지라 자칫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잘못된 상황이었고, 또 허재였기에 국내 여론은 오히려 이 에피소드를 반겼다. 여기에 유머감각도 좋다. 술자리를 한 번이라도 같이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허재+알콜’이 얼마나 유쾌한지 말이다. 사람 좋아하고 술사고 밥사기를 좋아해 그는 특히 후배들에게는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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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택 감독으로부터 허재 찬사를 들은 지 이틀 후 허재 감독과 저녁식사를 했다. 그의 지인들과 함께 하는 사적인 자리였고, 허재 감독 특유의 유쾌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다들 농구계 이슈는 언급하지 않으려 했다. 노골적으로 일(농구) 얘기를 하면 분위기가 다운된다는 뜻이었다. 그저 잠깐 프로농구 감독교체에 대한 얘기가 화제가 됐을 때 허 감독이 살짝 관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내 “에이, 몰라 아무나 하라고 해!”라는 말로 정리됐다. 또 대화 도중 '사퇴 후 왜 한 번도 인터뷰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허 감독은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말이야, KCC는 내게 특별한 팀이야. 내가 스스로 나왔으면 그만이지 이걸 가지고 자꾸 이러쿵저러쿵 하면 뭐 좋지 않은 말이 나올 수도 있어. 사람이 그런 건 하면 안 돼.” 지극히 허재스러웠다. 남들은 현역에서 물러나 야인이 되면 위축돼 보이는데 신기하게도 허재 감독은 더 커 보였다. [헤럴드스포츠=유병철 기자 @ilnamhan]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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