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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역사에서 국가대표로’ 카바디 우희준, 제 이야기 들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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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카바디 국가대표가 된 이야기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안녕하세요. 카바디 국가대표 우희준입니다. 카바디 문외한이었던 제가 카바디에 흠뻑 빠지게 된 이야기를 하러 나왔습니다. 여러분이 제 이야기를 듣고 카바디의 매력을 느껴보셨으면 해요

먼저 질문 하나만 드릴게요. 여러분은 카바디를 들어보신 적 있나요? 아마 처음 들어보시거나 스포츠 종목인지도 모르는 분들이 많으실 거예요. 아! 지난 인천 아시안게임을 통해 카바디를 아시는 분도 계시겠네요. 당시 남자대표팀이 사상 첫 동메달을 따면서 잠시 주목받았거든요.

카바디는 우리나라의 태권도처럼 인도의 국기로 술래잡기, 피구, 격투기를 혼합한 형태의 스포츠입니다. 레이더(공격수) 한 명이 상대 진영으로 넘어가 온몸을 이용해 상대를 터치한 후 돌아오면 터치한 선수 수만큼 점수를 줍니다. 터치 당한 선수는 바깥에서 대기하다가 자기편이 득점한 수만큼 다시 돌아오고요. 만약 레이더가 안티(수비수)에게 잡히면 수비팀에게 1점을 주고 레이더가 아웃 됩니다. 경기장 밖으로 벗어나도 아웃되고요. 아무런 도구 없이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누구나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속도감이 높은 게임이라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쳐요!

카바디를 처음 만난 곳은 종주국 인도였습니다. 20살에 인도에 여행 갈 기회가 있었어요. 어느 날 인도 친구와 길을 걷고 있는데 풀밭에서 흰 선으로 그린 칸 안에서 뛰어노는 사람들을 봤어요. 처음엔 ‘술래잡기 하는구나’ 하고 지나쳤는데 한참 후 돌아오니 그 자리에서 사람만 바뀐 채 같은 놀이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제야 그 놀이가 카바디라는 걸 알았어요. 알고 보니 인도의 국민 스포츠더라고요. 우리나라 야구에 버금가는 인기였죠. 호기심도 가고 해보라는 권유도 많이 받아서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해오던 운동을 잠시 끊어서 몸이 근질근질하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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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턴트 치어리딩 국가대표(제일 왼쪽)를 지내며 참 많은 것을 배웠답니다.


여기서 잠깐 제 이야기를 해볼게요. 저는 어릴 때부터 한시도 가만있지 않았던 아이였습니다. 태권도장을 운영하시는 아버지와 꾸준히 운동장에서 뛰어놀았고 틈틈이 호신술도 배웠어요. 중학교 3학년 때 우연히 스턴트 치어리딩을 접했는데 제대로 해보고 싶어 응원부가 있는 동일여상으로 진학했습니다. 1학년 때 국내대회에서 우승하고 일본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나갔어요. 그런데 그 대회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경기 끝나고 각 나라 선수들이 영어로 대화하는데 우리나라 선수들은 단 한 마디도 못하는 겁니다. 영어의 중요성을 크게 느꼈어요. 영어강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평소 영어에 관심도 많았고요. 그래서 돌아오자마자 자퇴서를 내고 미네소타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1년 6개월 동안 유학생활을 하며 영어도 많이 배웠고 방과 후 클럽활동으로 스턴트 치어리딩과 트랙운동(허들)을 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동일여상에 재입학한 뒤에도 계속 스턴트 치어리딩을 했어요. 3학년에는 홍콩 세계 치어리딩 대회에 나가 세계 4위에 오르기도 했죠. 국가대표를 지내며 새로운 꿈이 생겼어요. 어릴 때는 형사 생활을 하셨던 아버지처럼 여경이 되고 싶었지만, 한국을 홍보하는 인터뷰를 많이 하다 보니 이와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스카우트’라는 고등학생 공개채용 프로그램에서 학교로 외국어 능통자를 찾는다는 공문을 보내왔어요. 제가 다른 과목은 못했지만, 영어만큼은 학교에서 1등이었거든요. 선생님의 추천으로 프로그램에 나가서 한국관광공사 최초 고졸 신입사원으로 뽑혔습니다. 꿈꿔왔던 일을 할 수 있어 너무 행복했어요. 또래에 비해 많은 돈을 벌어 집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사실도 기뻤고요.

하지만 6개월이 될 무렵 적성에 대한 고민을 했어요. 성격 자체가 굉장히 활동적인데 가만히 앉아서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는 통역 일을 하려니 힘들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내가 해보고 싶은 걸 해보자. 다양한 경험을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퇴사했어요. 처음엔 아쉬움도 있었지만 새로 생긴 시간으로 다양한 나라에 여행을 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경험을 했어요. 제가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 구체적인 생각도 할 수 있었고요. 특히 인도에서 카바디를 만났기에 퇴사에 대해서는 절대 후회 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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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하루종일 카바디 생각만 하고 있어요. 카바디를 위해 머리카락도 잘랐답니다.


인도에서 카바디에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귀국했지만, 서울에는 카바디를 배울 곳이 없었어요. 카바디를 아는 사람조차 찾기도 힘들었죠. 그래서 직접 협회에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카바디를 배우고 싶다 했습니다. 전화를 받은 사무국장님이 동기와 관련된 몇 가지 질문을 던지신 후 부산에 있는 협회로 한 번 오라고 하셨어요. 작은 짐가방 하나만 들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왔습니다. 한 달 정도 카바디를 배우다가 제대로 하자고 마음먹고 설에 집에 가서 모든 짐을 챙겨 내려왔죠. 처음 내려올 때는 제가 뭘 하든 밀어주시는 아버지께만 말하고 내려왔는데 그때 어머니께도 모두 말씀 드리고 허락을 받았습니다. 허락까지 받고 나자 진짜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 만난 카바디는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냥 적진으로 달려가 터치하고 재빨리 돌아오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쉬워 보이는 동작 속에도 고유의 스텝이나 수많은 터치 기술이 있었어요. 너무 많아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어요. 내가 저런 기술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함마저 느껴졌죠. 체력·근력 훈련도 힘들었고요. 옛날에 했던 훈련과 차원이 달랐습니다. 하지만 치어리딩 경험이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어요. 치어리딩 할 때 슬럼프가 있었는데 멈추지 않고 꾸준히 하다 보니 결국 늘더라고요. 그때부터 잘하건 못하건 꼴지가 되더라도 끝까지 해보자는 끈기가 생겼습니다. 그게 아니었으면 어려움을 느끼자마자 ‘여기까지만 하자...’라고 포기했을 거예요. 언니들도 옆에서 정말 많이 도와줘서 고마웠고요.

카바디팀 분위기는 정말 좋아요. 막내라고 해서 시키는 것도 없고 텃세 같은 것도 전혀 없었어요. 남녀 대표팀 모두 가족처럼 사이좋게 지내고 있습니다. 특히 룸메이트이자 여자팀 주장인 (이)현정 언니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합숙 생활 하는 법도 알려주고 카바디에 대해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바로바로 답해줬어요. 찾기 힘든 귀한 영상도 보여주면서 도와줬구요. 현정 언니에게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전 주장인 (조)현아 언니는 2, 3년간 대표팀에 젊은 피가 없었는데 어린 제가 불쑥 나타나면서 새로운 자극도 되고 저를 챙기려 팀 분위기도 더욱 좋아졌다고 하더라고요. 조금이나마 팀에 보탬이 된 것 같아 기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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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경기장보다 작은 이 훈련장에서 언니들과 매일 구슬땀 흘리고 있어요. 2018 아시안게임에서 꼭 좋은 소식 알려드리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요즘 카바디에 완전히 빠져 살아요. 오전·오후에는 대표팀 훈련을 하고 비는 시간에는 부족한 근력이나 유연성을 길러요. 숙소에서 동영상을 찾아보며 카바디 기술도 공부하고요. 동영상은 저처럼 마르고 키가 큰 한 인도선수 걸 자주 봐요. 현정 언니가 저와 비슷한 유형의 선수를 따라 하다 보면 금세 늘 거라고 조언해줬거든요. 그리고 카바디를 위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머리카락을 싹둑 잘랐습니다. 운동하러 부산까지 내려왔는데 머리카락이 자꾸 방해되더라고요. 잘 보일 사람도 없고 운동에 집중하려고 지난주에 잘랐습니다. 어색하긴 한데 되게 좋더라고요. 머리도 빨리 감을 수 있고 운동 중에 얼굴에 머리카락이 붙지 않아 집중력도 높아졌어요.

카바디 선수가 되면서 두 가지 목표가 생겼습니다. 하나는 저만의 기술을 만드는 거예요. 카바디는 내 몸이 공격도구이자 무기에요. 사람들의 몸은 다 다르잖아요? 그래서 다들 자신의 신체적 장점을 살린 공격기술을 가지고 있어요.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꼭 저만의 무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다른 하나는 팀에서 꼭 필요로 하는 선수가 되는 거예요. 아직은 많이 부족해 팀을 이루면 제가 항상 도움받는 입장이에요. 레이더로 나설 때도 점수를 내기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제 무기를 개발하라고 자주 보내줘요. 진짜 열심히 해서 언니들이 저를 필요로 할 정도까지 실력을 키우고 싶어요.

제 이야기를 들으면서 카바디에 대해 관심이 생기셨나요? 제 이름은 몰라도 카바디라는 종목에 땀 흘리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있다는 사실이라도 알아주셨으면 참 좋겠어요. 저와 언니들은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첫 메달을 딸 수 있도록 이 자리에서 묵묵히 노력하겠습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리고 제 이야기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헤럴드스포츠(부산)=차원석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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