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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늘집에서]구렁이 몇 마리를 품고 있다는 리디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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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전 LPGA 개막전인 코츠 골프 챔피언십이 끝난 후 리디아 고가 17세 9개월 9일의 나이로 최연소 세계랭킹 1위에 올랐을 때 말들이 많았다. 세계랭킹 시스템에 대한 불합리를 이유로 어린 소녀가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1위 자리를 내준 박인비 조차 “현재의 세계랭킹 시스템상 리디아를 쫒아 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다”고 에둘러 표현했다.

하지만 리디아는 22일 끝난 ISPS 한다 호주여자오픈에서 자신이 왜 세계랭킹 1위 인지를 스스로 증명했다. 남자선수들도 힘들다고 말하는 로열 멜버른 골프클럽에서 출전선수중 가장 성숙한 플레이를 펼쳤다. 리디아는 나흘간 이글 3개와 버디 10개, 보기 7개로 우승 스코어를 만들었다. 더블보기 이상의 ‘빅 넘버’가 없다는 게 그의 게임능력을 보여준다.

리디아는 또한 나이로 골프를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는 리디아가 나흘간 40세의 베테랑 캐리 웹 보다 10타를 덜 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웹은 호주선수로 누구보다 대회코스를 잘 알고 있었으며 지난 해 우승을 포함해 호주여자오픈을 5차례나 제패한 선수이기도 했다.

리디아의 전략은 단순명료했다. 2라운드에 공동선두에 올랐던 장하나가 인터뷰 때 말했던 것처럼 플레이했다. 철저하게 페어웨이를 지키려 했고 레귤러 온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린에선 원칙적으로 2퍼트를 고수했으며 기회가 오면 버디를 잡는 패턴이었다. 이 대목에서 우승을 이끈 빛나는 두 번의 퍼트가 있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가 수많은 승부처에서 보여줬던 클러치 퍼트 능력이다.

리디아는 8번홀(파4)에서 최대 위기를 맞았다. 두 번째 샷이 딱딱한 그린을 맞고 튕겨 나갔고 세 번째 플롭 샷은 짧아 볼은 경사를 타고 내려왔다. 4온후 남은 거리는 2m. 쉽지 않은 보기 퍼트였으나 리디아는 이 퍼트를 집어 넣었다. 더블보기를 했다면 심리적인 저하는 남은 경기를 지배했을 것이다. 두 번째 클러치 퍼트는 12번홀(파4)이었다. 리디아는 6m 거리의 내리막 버디 퍼트를 집어 넣었다. 볼은 미세하게 브레이크를 타다가 홀 앞에서 잠시 멈췄다 사라졌다. 우승에 쐐기를 박는 결정적인 한방이었다.

리디아의 클러치 퍼트 능력은 게임 흐름을 읽는 눈에서 나오는 듯하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촉’이 좋은 리디아는 경기 도중 꼭 넣어야 할 퍼트를 동물적으로 아는 듯 했다. 아마추어무대에서 리디아 고와 경쟁했던 한 한국 선수의 부친이 한 말이 떠오른다. 그는 “리디아 마음 속에는 구렁이 몇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을 겁니다”라고 표현했다. 감정의 기복이 없고 판을 읽는 능력이 뛰어나며 영리하게 플레이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리디아는 이번 주 태국에 가지 않고 뉴질랜드에서 경기한다. 유럽여자투어 뉴질랜드여자오픈이다. 세계랭킹 2,3위인 박인비와 스테이시 루이스(미국)가 태국에서 열리는 혼다 LPGA 타일랜드에 출전해 세계랭킹 포인트를 좁힐 기회를 얻는 셈이다. 하지만 추격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메이저 대회에 버금가는 코스세팅으로 선수들의 능력을 검증한 이번 ISPS 한다 호주여자오픈에서 보여준 리디아 고의 게임능력과 운(運)이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헤럴드스포츠=이강래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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